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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미사일 사거리, 제2 사드 사태 일으킬까

한·미 정상회담사 “미사일 지침 종료” 선언
중국 직접 항의 없지만 불편한 심기 드러내
국내는 6년전 중국의 경제 보복 사건 떠올려
주한 중국대사 “중국 국익 상하면 좌시 안 해”

한국과 미국이 지난 21일(미국 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발표한 미사일 지침 종료 선언이 향후 한국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미사일 지침 종료에 대해 한국에게 항공우주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보약이 될 수 있다는 전망과, 중국을 위시한 주변국들과의 군비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한·미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미사일 최대 사거리를 제한했던 미사일 지침을 완전 해제하는데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번 지침 종료를 두고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재계에선 6년 전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를 국내에 배치할 당시 중국이 경제 보복을 벌였던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이번에도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중국이 이번에도 경제 보복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1979년 9월 박정희 정부 때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국내 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은 180㎞, 탄두 중량은 500㎏로 제한됐다. 180㎞는 서해5도에서 발사하면 북한 평양까지 닿는 거리다. 이 제한은 그 동안 네 차례 개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완화돼 왔다. 2001년 1월에는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300㎞로, 2012년 10월에는 800㎞로 증가했다. 이어 2017년 9월엔 탄두 중량이 사라지고 지난해 7월엔 민간용 우주 발사체에 고체연료 로켓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지침의 종료로 한국은 미사일과 관련한 사거리와 고체연료 사용에 대한 제약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지침 종료가 사드 배치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사드처럼 중국을 노골적이며 자극하진 않겠지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또한 이 조치로 인해 앞으로 미사일 개발과 운용비용은 한국이 전적으로 짊어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이를 통해 미사일 주권을 갖게 됐지만 이는 미국 입장에선 경제적 지원 부담을 더는 동시에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효과까지 얻는 일거양득이 된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연합뉴스]

중국 매체들, 한·미 정상회담 전엔 역정, 후엔 완화

 
일본 지지통신은 23일 이번 한·미 정상회담과 미사일 지침 종료를 두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포위망으로부터 그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한국이 한•미 동맹 재건에 나서, 중국의 반발이 강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한·미가 미사일 지침을 철폐하며 한국이 사거리 800㎞를 넘는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점도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미사일 지침 종료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공식적인 항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국방부의 입장 표명이나 반발이 있었는지 묻는 질의에 “중국 측으로부터 어떤 항의나 혹은 이런 것(과 비슷한 것도)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같은 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로 한국이 개발하는 미사일의 사정거리 제한이 풀린 것을 중국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만약에 불편했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특히 미사일 개발에 관련해서는 불편했어야 한다”며 “중국을 고려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한·미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만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직접적인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지는 않았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한·미 공동성명 내용에 우려를 표한다”며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해야 하며 불장난하지 말아야 한다”며 “한·미 관계 발전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돼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되며, 중국을 포함한 제3자의 이익을 해쳐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이 선을 넘지는 않은 것으로 봤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22일 “중국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냈고 한국의 원칙과 입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봤다”고 평가했다.
 
이는 전날 정상회담 전 논평한 ‘미국이 한국을 함정에 빠트릴 준비를 했다’는 사설과 비교하면 한결 부드러워진 대응이다. 이 사설에선 ‘대만 문제와 같은 중국의 핵심 이익을 놓고 미국의 북을 두드리는 것은 한국의 국익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워싱턴의 독이 든 성배를 마시도록 강요당하는 것과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었다.  
 
류차오 랴오닝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성명 내 이 같은 발언(대만 언급)은 예상됐으며 미국과 한국이 중국 문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합의였다”고 말했다.
 
저우융성 중국 외교대학교 교수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을 포기한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안보회담)에 참여할 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며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1위 무역 파트너로 남아 있으며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7년 중국 측이 최근 한국 정부가 요청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철회 요구를 거부하면서 관광 규제를 계속 진행하자 2017년 7월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였던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모습. [연합뉴스]
 

중국, 한·미 경제 밀월관계 약속에 불만 드러내

 
중국이 이번 미사일 지침 종료를 두고 사드 배치 당시 한한령 등 경제보복에 나선 것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진 않으리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은 그보다는 한국과 미국이 경제 분야에서 5세대 이동통신(5G)이나 반도체 등 경제 분야에서 연대를 강화한 모습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삼은 미·중 무역갈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중국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는 해외 시장 점유율이 급감하는 등 타격을 받았다. ‘중국군 통제기업’으로 분류된 차이나모바일·차이나텔레콤·차이나유니콤 등 중국 3대 통신사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퇴출에 반발했지만 지난 7일 재심에서 패배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SK·LG 등 한국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직접 언급하고,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한국 기업인들의 이름을 부르고 박수를 치며 “생큐”를 연호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을 옥죄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과는 밀월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글로벌타임스는 22일 뉴스를 통해 “한•미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은 5G·6G 기술과 반도체·공급망 복원을 포함한 신흥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중국과 한국 간의 기술 유대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패할 운명”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자오 대변인은 미사일 지침 폐지에 대해 “현 형세에서 각국이 함께 노력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힘쓰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며 “중국은 건설적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와 함께 국내 기업의 미국 반도체 투자 계획과 관련해선 “각국이 시장 규칙을 존중하고 국제 산업망과 공급망 수호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24일 “한·미 관계는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가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중국 국익을 상하게 하거나 이에 대해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밝혀 향후 중국의 태도 변화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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