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추락하고 조세 회피 힘들어져...'위기의 억만장자들' [채인택 칼럼]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목표 15% 합의...다국적 기업, 조세회피 힘들어질까
몇대를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의 재산, 자신이 추구한 사업의 성공에 따른 성취감, 전 세계 최초의 창의적 비즈니스를 세상에 도입한 보람, 발언 하나하나는 물론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명성.
남다른 창의력과 필생의 노력, 그리고 의지와 신념으로 세계적인 부호에 오른 사람들이 받는 보상이다. 일부는 유산을 물려받아 이 자리에 오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세계적인 대부호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나 경제 매체 블룸버그가 집계하고 발표하는 전 세계 부호 명단에 오른 인물들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다. 성취감, 보람, 재물, 명성은 그 하나하나가 숱한 사람들이 갈망하는 대상이다. 하나도 벅찬데, 이를 모두 한손에 쥐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문제는 ‘호사(好事)에 다마(多魔)’라고 하듯이 이 모든 것을 한손에 쥐고 있다 보면 탈도 많이 날 수밖에 없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수많은 사람이 타격을 입으면서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부자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극에 이르고 있다.
G7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목표 15%” 합의
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업과 전 세계 수퍼리치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은 6월 4∼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나왔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G7 재무장관들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목표를 15%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G7 회원국들이 글로벌 법인세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나왔다. 그만큼 논란이 많고 합의가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불안이 이번 합의의 동력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각국은 코로나 충격으로 인한 경제회복을 위해 거대한 재원 투입을 준비 중인데 이를 위해선 세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와 필요성 때문에 G7이 이번에 합의에 성공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자국의 거대 IT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글로벌 세금 개발 조치에 부정적이던 미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신뉴딜’ 정책의 추진을 위한 재원 마련의 필요성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선 감도 있다.
이 합의안은 6월 11~13일 영국 남서부 콘월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7월로 예정된 G20 재무장관회의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15%가 되면 변화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우선 케이맨제도·바하마·버뮤다 등 조세회피처에 본사나 지주회사를 두고 세금을 아끼거나 자국의 규제를 피하는 길이 막히게 된다. 유럽의 헝가리(9%)·아일랜드(12.5%)·지브롤터(10%)나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0%)·카타르(10%) 등 법인세율이 현저히 낮은 나라에 본사나 지주회사를 두고 세금을 줄이거나 피할 수도 없다.
이는 자국에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여온 여러 나라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끝내기 위해 중요하고 전례가 없는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다국적 기업, 돈 번 나라에 세금 내야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논의된 또 다른 내용은 다국적 기업이 사업을 하는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글·아마존·애플·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에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글로벌 시대와 인터넷 시대를 맞아 본사 소재지와 무관하게 전 세계를 상대로 기업 활동을 하며 이익을 내왔다. 글로벌IT 메가 기업들은 지금까지 매출을 올린 곳에서 세금을 내지 않아 국가 간, 국가와 기업 간 갈등을 일으켜왔다. 특히 유럽연합(EU)은 몇 년 전부터 IT 글로벌 기업과 과세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사실 절세는 수퍼리치들의 주요 축재 기법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을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퍼리치들은 두 번째 강펀치를 맞았다. 미국 탐사보도전문 비영리 인터넷 매체인 프로퍼블리카가 미 연방국세청(IRS)의 미공개 자료를 입수한 6월 8일 밝힌 자료는 부자들의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자료 분석 결과 미국의 수퍼리치 25명의 재산은 지난 2014~2018년의 5년 동안 모두 4010억 달러가 늘었다. 문제는 같은 기간 이들에게 부과된 연방소득세는 136억 달러였다. 미국 25대 부자들에게 적용된 실제 세율을 역산하면 3.4%였다.
미국 슈퍼리치, 실제 세율 3.4%…부유층과도 10배 차이나 이에 따르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회장은 2014∼2018년 재산이 990억 달러가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에 낸 연방소득세는 9억7300만 달러였다. 재산은 늘었지만, 이 중 과세할 수 있는 소득은 42억2000만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같은 기간 재산이 139억 달러 늘었지만 연방소득세는 늘어난 재산의 3.27%에 해당하는 4억5500만 달러였다. 버크셔해서웨이 워런 버핏 회장은 그 기간에 재산이 243억 달러 늘었지만, 연방소득세는 2370만 달러로 늘어난 재산의 0.1%였다.
특히 베이조스는 2007년과 2011년, 머스크는 2018년 연방소득세 납부액이 ‘0’로 나타났다. 연방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미국의 세금 체계 때문이다. 연방소득세는 개인의 재산이 아닌 소득에 부과하기 때문에 재산이 늘었다고 세금을 매길 수는 없다. 하지만 임금 등으로 많지 않은 소득을 올린 납세자들이 수퍼리치들의 납세 내용을 보며 기분이 좋을 순 없다.
예로 미국 소득법 체계상 중위에 해당하는 연 7만 달러를 벌어들인 가정이 연방 정부에 내는 세율이 14%인 것과 비교하면 수퍼리치들에게 실제로 부과된 세율은 그 4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부의 연 수입이 62만8300달러로 최고 소득세율인 37%를 적용받는 부유층과 비교하면 수퍼리치들이 실제로 납부한 소득세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급여소득자이거나 중소 상공업자로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이에 따른 소득세를 꼬박꼬박 내온 중산층·부유층의 입장에서 ‘평등’을 외칠 근거가 충분하다.
프로퍼블리카는 “수퍼리치들은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세금 회피 전략’을 통해 혜택을 본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소득은 급여가 아닌 대부분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팔아서 양도 차익을 보지 않는 이상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론 문제가 없지만 수퍼리치들이 세금을 회피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부호들에 대한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지적은 ‘공평’의 문제다.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 1770억 달러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8309달러인 미국인이 259만1000년을 모아야 만들 수 있는 거액이다. 그 숫자의 미국인이 한 해 생산한 가치이기도 하다.
전 세계 수퍼리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재산 늘었다
게다가 지난 3월 발표된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는 코로나19로 상처 입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수퍼리치 거의 전부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재산이 늘었기 때문이다. 200위 내에서 지난해 상속 등으로 처음 순위에 들어온 사람을 제외하고 지난해 재산이 줄어든 사람은 오로지 네 사람뿐이다.
127위인 미국 월마트 창업주의 손자 루카스 월튼(34)이 지난해 184억 달러에서 올해 156억 달러로 줄었다. 132위인 미국 부동산업자 도널드 브로이(88)가 155억 달러에서 153억 달러로, 155위인 홍콩의 부동산업자 조셉 라우(69)가 164억 달러에서 136억 달러로, 182위인 중국의 동물사료업체 대표인 류융하오(69)가 123억 달러에서 121억 달러로 각각 재산이 줄었을 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포브스는 1987년부터 전 세계 부호 순위를 조사해 보도해왔다. 올해가 35번째다.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 이 명단에 포함된다. 이 때문에 ‘억만장자(Billionaire) 명단’으로도 부른다. 왕족이나 독재자처럼 자신의 지위와 신분, 위치를 이용해서 보유한 재산이 아닌, 경제활동과 상속으로 인한 재산만 따진다.
올해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해 이 명단에 들어간 사람은 신규로 진입한 493명을 포함해 모두 2755명에 이른다. 이들이 보유한 전체 재산은 13조 1000억 달러에 이른다.
포브스 부호 명단에 들어간 부자들이 소유한 총 재산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일시 줄어든 것이 유일한 예외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1조 달러를 약간 넘었던 것이 2012년 5조 달러를, 2014년에는 6조 달러를, 2015년에는 7조 달러를 각각 넘었다.
올해 1위인 아마존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57) 회장의 재산은 1770억 달러에 이르렀다. 베이조스는 1994년 7월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을 창립한 뒤 영역을 확장해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업체로 키웠다.
하지만 2019년 전직 방송 앵커 로런 산체스와의 불륜으로 부인 매킨지 스캇과 이혼하며 이미지가 흔들렸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일에만 빠지거나 개인의 재산과 명성을 바탕으로 불륜을 저지른 거대 테크 기업 창업주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이혼 당시 베이조스는 위자료로 350억 달러에 해당하는 아마존 지분 4%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 역시 지난 5월 초 합의 이혼을 발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WSJ은 게이츠 회장이 2000년 회사의 여성 엔지니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뒤 20년 가까이 관계를 지속하다 2019년 하반기 여성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게이츠가 이사직에서도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게이츠의 외도가 가정 파탄을 부른 셈이다.
베조스에 이은 게이츠의 이혼은 수퍼리치의 개인 품성과 사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세상의 모든 도덕 기준을 충족하기를 기대할 순 없다. 그들은 성공한 기업인이지 도덕군자나 성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론 재판’에 따라 당분간 이미지 하락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세금 과세 방법 변경과 개인 이미지 하락이라는 악재를 뚫고 수퍼리치들이 얼마나 새롭고 창의적인 돌파구를 만들지 주목된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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