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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장비·스마트팜…기술벤처가 폐광촌으로 가는 이유

‘넥스트 유니콘’ 내건 강원도 민·관 프로젝트
운영비만 10억원, 부지·설비투자 50% 지원도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에코 잡 시티(ECO JOB CITY) 태백’ 사업 대상 부지. 스마트팜 기업 '넥스트온'이 이 일대로 이전한다. [사진 한국광해관리공단]
“스타트업은 초기투자사와 10㎞ 이상 떨어지면 안 됩니다.”
 
지난 5월 유명 초기투자사(액셀러레이터) 대표 A씨는 본사를 서울 강남지역에서 강북으로 옮기며 이렇게 말했다. 본사 이전이 자신에게도 큰 모험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었다. A씨는 “물리적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제대로 된 지원·관리가 어렵다”며 이유를 덧붙였다.
 
A씨 말처럼 서울만 벗어나도 스타트업이 투자받은 기회는 크게 줄어든다. 지난해 상반기 투자받은 스타트업 537곳 중 서울 밖에 있는 업체는 254곳으로, 절반에 못 미쳤다. 수도권 밖을 기준으로 하면 149곳에 그친다.  
 
이런 서울 집중현상을 막아보려는 법이 내일(2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지역중소기업 육성 및 혁신촉진 등에 관한 법률(지역중소기업법)’이 그것이다. 비수도권 중소기업에 재정지원을 늘리는 등 기업의 지방창업·이전을 유도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업체당 지원 규모다. 얼마나 지원해줘야 ‘10㎞ 룰’을 깨고 창업가들이 움직일까. 
 
이를 먼저 따져본 정책실험이 있다. 강원랜드·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광해관리공단 등이 강원도 폐광지역 4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201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넥스트 유니콘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서 현금 지원을 맡은 곳은 강원랜드다. 매해 3곳을 선정해 최대 10억원을 준다. 정부사업 가운데 단일 기업에 이만큼 많은 돈을 주는 것은 드물다. 또 각 공단에선 2% 미만 저금리 대출을 주선한다. 지자체에서도 부지매입·설비투자 등 보조금을 준다. 일례로 영월군은 부지매입금의 절반, 건축비의 30%를 지원한다.  
 
지원액이 크다 보니 2019년 첫 공모 당시 경쟁률은 41.6대 1에 달했다. 프로젝트에 선정된 한 업체 대표는 “지원받는 금액을 모두 합치면 30억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웬만한 스타트업의 시리즈A 투자 유치액과 맞먹는다.
 
첫 공모 때 뽑힌 업체 세 곳의 기술력도 만만찮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아티슨앤오션은다이빙컴퓨터 등 다이버 장비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통합한 업체다. 2위에 오른 넥스트온은 태양광이나 바깥 공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스마트팜 공장 시스템을 개발했다.  
 
마지막으로 3위였던 제우기술은 국내에 몇 안 되는 ‘리니어모터’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직진 운동을 하는 리니어모터는 회전운동을 바탕으로 한 기존 전동모터보다 정밀도가 높다. 덕분에 치아가공기나 반도체장비 등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산업에서 제우기술의 모터를 찾는다.
 

고급인력 현지 채용 어려워…새로운 일자리 대부분 생산인력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첨단기술을 아이템으로 한 업체들이 강원도 폐광지역에서도 원활하게 인재를 수급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세 업체 모두 연구개발 인력은 서울에 그대로 두고 있다. 강원랜드 등 프로젝트 주관기관은 기업의 본사나 연구소, 혹은 공장 세 가지 중 하나 이상을 이전하도록 조건을 내걸었다. 유일하게 대전 본사를 영월로 옮기는 김홍윤 제우기술 대표는 “본사 인력 여덟 명 중 두 명이 사의를 밝힌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밝혔다.
 
나머지 두 업체는 공장만 각각 영월(아티슨앤오션)과 태백(넥스트온)으로 옮긴다. 새로 만들어내는 일자리 대부분이 생산인력인 셈이다. 그나마 새 일자리 수가 적잖다는 게 지자체로선 위안거리다. 최재빈넥스트온 대표는 “필요한 인력 65명을 지역의 취약계층 위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주력한 아티슨앤오션은 올해까지 지역민 5명을 채용한다.
 
결국 막대한 재정지원에도 연구개발직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덴 한계가 있다. 새롭게 제정되는 법이 이런 한계를 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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