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②] 정관계 로비, 파면 팔수록 오리무중
이재명·이낙연 옵티머스 의혹 “로비 없다”, 이헌재·채동욱도 ‘무혐의’
‘라임 핵심’ 김봉현 보석 석방, 공수처 ‘검사 비리 고발’ 검찰에 이첩
장하성 관련 디스커버리 수사 속도낼까…사건 실체 없고 썰만 무성
2019년 터진 '사모펀드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비롯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대형 사모펀드 사고는 금융사기, 불완전판매, 탈법, 관리감독부실 등 집단적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리 종합선물세트’였다. 수조 원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제도를 개편했지만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이 거세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판매한 디스커버리 펀드의 문제, 사모펀드 사건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되짚어 반복되는 사고의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편집자 주]
[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
①“판매 책임을 왜 투자자에게 떠넘기나”
② 정관계 로비, 파면 팔수록 오리무중
③ “투자보호·업체견제·사기처벌 강화해야”
1조원대의 피해 사태를 일으킨 라임 펀드와 옵티머스 펀드, 2000억원대의 디스커버리 펀드. 이 사모펀드들의 공통점은 대규모로 환매가 중단된 것뿐만 아니라,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며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불씨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상품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또는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자산운용사가 정관계 인물을 내세우는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 사태가 발발한 뒤에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는 로비가 적지 않았을 것이란 의혹이 업계 관계자들의 입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이 지난해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내부 문건 ‘펀드 하자 치유’를 보면 전직 고위 공직자들의 인맥으로 사모펀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 대표 등이 투자자들에게 80~95%를 안전자산인 공공기관에 투자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부실채권 인수, 펀드자금 돌려막기 등으로 일어난 사기에서 비롯됐다.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약 3200명에 이르며,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한 피해 금액이 약 5542억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했지만 검찰은 최근 “정관계 로비는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1년 2개월여 동안 20여명의 검사를 투입시키고도 용두사미 꼴 빈손으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검찰은 3년 전 사건 초기에 수사가 부실했음을 사과하면서도 정작 정관계 인사들의 혐의는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
옵티머스, 여권 인사들 줄줄이 ‘증거 불충분 무혐의’
특히 옵티머스 내부에서 작성됐다는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에는 ‘이 전 경제부총리 등이 조력하고 있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해 있다’, ‘문제가 불거질 경우 권력형 비리로 호도될 우려가 있다’, ‘게이트 사건화 우려’ 등의 문구가 담겨 있어 정관계 로비 의혹이 커졌다.
문건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2018년 옵티머스가 투자한 성지건설의 매출채권 일부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 서울남부지검에 수사 의뢰되자 법무법인 서평의 채 전 총장을 소개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 ▶이 전 총리가 추천한 모 발전소 프로젝트에 옵티머스 2대 주주인 이동열씨가 투자를 진행 중이라는 내용과 ▶이 전 총리의 제안으로 인프라 펀드를 진행한다는 내용 등이 적시돼 있다. 양 전 은행장은 옵티머스가 2017년 12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적기 시정조치 적용 유예’ 결정을 받는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검찰은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과장한 내용”이라며 문건이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수사부(유경필 부장검사)·범죄수익환수부(유진승 부장검사)는 옵티머스 고문단으로 활동한 이 전 부총리, 채 전 검찰총장, 양 전 은행장, 김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등에게 지난 4일 무혐의 처분했다.
이는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부실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경기도 봉현물류단지 인허가 청탁 의혹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채 전 검찰총장,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등장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입건되지 않았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선거캠프 복합기 사용료를 지원받은 의혹이 제기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옵티머스 로비스트에게 현직 부장판사를 소개한 의혹을 받았지만 소환 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리됐다.
그럼에도 청와대 직원과 옵티머스 연루 의혹은 아직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진아(구속기소된 윤석호 옵티머스 이사의 부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옵티머스 지분 약 10%를 보유하고 옵티머스 관계사들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옵티머스 범행에 가담했다는 의혹으로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여러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무혐의 결론에도 옵티머스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 실체가 여전히 깜깜한 이유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곳들에 대한 검찰 추적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점도 정관계 로비 의혹이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라임, 김봉현 옥중 폭로에도 검사 비위 수사 지지부진
김 전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라임도 옵티머스와 마찬가지로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정관계 로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옥중 편지를 통해 “강기전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 “검사 출신 A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 3명을 상대로 술접대를 했다”는 등의 로비 사실을 공표했다. 그는 “접대한 3명의 검사 가운데 1명은 서울남부지검의 라임 수사팀에 합류했다”며 “특히 A변호사는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건 담당 주임 검사였고, 이른바 ‘우병우 사단’의 실세였고, 라임 사건이 A변호사 선임 후에 수사 진행이 더 안 됐다”고도 했다.
그는 또 “우리은행 행장과 부행장,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 변호사 등에게 라임펀드 판매 재개 관련 청탁으로 수억 원을 지급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손에는 금융감독원의 검사계획서를 쥐어 준 ‘금감원 검사역’, 청와대 행정관까지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라임 사건 은폐 의혹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부정처사 등 혐의로 고발된 전·현직 검사 12명을 대검찰청에 단순 이첩한 것이다. 고발 후 5개월여 만이다.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는 “라임사건 연루 검사들의 뇌물죄 고발사건을 검찰로 이첩하는 공수처장은 제정신인가”라며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청와대 직원과 옵티머스 연루 의혹은 아직도 검찰이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 같은 여러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무혐의 결론에도 옵티머스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 실체가 여전히 깜깜한 이유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곳들에 대한 검찰 추적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점도 정관계 로비 의혹이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디스커버리 수사, 금융권 압수수색 후 장하성 조준 전망
디스커버리 사모펀드의 운용사는 장하원(장하성 중국 주재 한국 대사의 친동생)씨가 2016년 설립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다. 이 운용사가 펀드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엔 장 대사의 영향이 있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디스커버리 펀드 판매 과정에서 장하성 대사의 입김이나 기업은행 경영진의 영향력이 없었는지 경찰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같은 정관계 의혹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모펀드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면 사법권이 ‘권력 앞에선 약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총장까지 나서 진행한 수사 결과에 ‘봐주기’, ‘수사 뭉개기’ 비판이 나왔기 때문에 검찰의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면서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당 의원들이 연이어 무혐의 처리를 받는 것은 여론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사모펀드 비리 방지 및 피해 구제 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옵티머스 사건을 파헤쳤던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 사건은 단순 사기가 아니라 청와대·금감원까지 연결된 거대한 게이트 수준의 사건”이라며 “캐면 캘수록 무엇이 나올지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증거 부족과 실체 부재로)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지적했다. 사모펀드 사태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안개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란 우려다. 그는 “무너진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해 아직 밝혀지지 않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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