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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를 보며 생각한다, 군대 속 그들만의 '상식' [장근영 팝콘 심리학]

변화하는 상식 속 유일하게 예전 상식 유지하는 집단, 군대
군대의 상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현 상황은 심각한 문제

 
 
넷플릭스 드라마인 'D.P.'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끔 ‘상식’이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사흘이 왜 3일이냐, 사로 시작하니까 4일이 아니냐' '아날로그 시계 자판을 읽는 것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이냐' '한자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글자인 줄을 몰랐다고 무식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질문들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상식에 관한 논쟁은 가끔 커뮤니티 밖으로 번지기도 한다. 한 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에 대해 사용한 ‘명징하게 직조했다’는 문장이 그 중 하나다. 이 문장에 대해 대중을 상대로 글 쓰는 사람이 그런 어려운 단어를 쓰면 안 된다는 비난과 그런 단어는 상식이라는 반응이 충돌했다.  
 
상식은 말 그대로 공유하는 생각이다. 그 사회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무도 의문을 가지거나 새로 배울 필요가 없는,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가치관·지식·이해력·판단력·사리 분별의 기준이다. 상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같은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비슷한 느낌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상식은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한 기초다. 언어만 같다고 해서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식은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상식은 국가가 만든 교육제도인 공교육을 통해서 전달된다. 공교육 제도의 목적이 그 국가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기초 상식을 모두에게 공유시키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상식은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없고 당연히 소통이나 공감이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상식이 부족한 사람은 ‘어느 별에서 왔느냐’ ‘혹시 이북에서 왔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가본 곳이 거의 없고, 동시대 중고생들이 당연히 접했던 음식이나 문화도 별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종종 아내에게 듣는 말이다.
 

예전 상식을 유지하는 집단, 군대  

그런데 이 상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한다. 이전 시대에 상식이었던 것이 다른 시대에는 몰상식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십여년 간 한국 사회는 여러 면에서 한 두 단계 발전했다. 그래서 상식의 기준도 그만큼 많이 바뀐다. 아마 앞서 언급한 상식 논쟁도 그런 변화의 여파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예전의 상식을 유지하는 집단도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 군대다.
 
한때 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 중 하나였다. 포항제철 같은 국책사업이 저비용 고효율의 성과를 거둔 데에는 군 출신 리더들이 심어놓은 군대식 운영 체계의 역할도 어느 정도 존재했다. 그러나 2021년 한국에서 군은 가장 뒤떨어진 집단이다. 물론 모든 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군이라는 조직만큼 내적인 불균형이 심한 곳도 드물다. 제3세계 수준의 병영시설과 선진국 수준의 장교용 골프장이 공존하며, 최첨단 무기와 한국전쟁 시절의 개인장구가 함께 운용되는 곳이 한국군이다. 
 
우리 방산장비들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지금 한국 방산업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자주포와 장갑차, 미사일이나 전투함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심지어 3.5세대급 신형 전투기까지 개발 중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조원을 투입하고서도 여전히 9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병사들의 숙소, 기껏해야 80년대 수준에 멈춰 있는 개인장구들이 있다. 
 
병사들이 생활하는 병영의 환경도 후진국 상태다. 2010년대 중반까지 일반 병사들의 급여는 교도소 재소자 보다 적었다. 이번 정부에서 급격하게 인상했음에도 병사들의 급여는 여전히 최대 월 7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개인 자유의 침해 수준도 기가 막힐 정도다. 병사들이 휴대폰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지난해부터다.  
 
군대 속의 가장 큰 불균형은 상급지휘부와 일반 병사들의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생활환경을 잘못 알고 있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D.P.'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D.P.’다. 육군 헌병대에서 운영하는 탈영병 체포조가 소재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의 주제는 탈영병의 체포가 아니라 그 병사들이 탈영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다.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는 멀쩡한 병사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한국 군대의 병폐가 실감나게 다루어진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실제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군대에 대한 상식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군 지휘부의 상식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신문기사에 인용된 군 관계자의 논평을 인용해보자. 그는 드라마에 묘사된 가혹행위들이 2014년이 아니라 2000년대 중반 정도의 병영에서나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드라마가 묘사하는 장면들이 “10년에서 15년 전에 군기가 문란한 부대에서나 일어날 만한 극단적인 상황을 모은 것”이라 썼다. 그들은 2014년에 일어났던 임병장 사건과 윤일병 사건을 전혀 기억 못하는 모양이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은 그런 반응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군 수뇌부에 대한 한국 군필자들의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게 어디냐는 반응도 나온다.
 
군대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들만의 상식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대의 상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현 상황은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군은 이 나라의 안보를 담당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군대의 상식이 뒤틀려 있다는 건 그만큼 군대의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고 누구나 동의하는 말이다. 한국군은 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휘관이 자신의 병사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면, 실제 병사들이 생활하는 환경의 분위기가 얼마나 열악한 지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과연 그 부대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지휘관이 병사들의 사기와 전투력 향상 보다는 자기 골프 타수를 줄이는데 골몰하고만 있다면 그 부대에게 첨단 장비가 주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장근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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