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의 '자기 정치' 시동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아베 외교 정책에 도전…분배경제·협력외교 정책 펼칠지 주목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총리는 조기에 자기 색깔 정치의 시동을 걸 것인가. 기시다는 9월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총리의 적극적인 지지와 파벌 간의 밀실 합의를 바탕으로 27대 총재로 당선했다. 당시 1차 선거에서 예상을 뒤집고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곧이어 열린 경선 투표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郎·58) 전 외상을 257대 170으로 눌렀다. 1차 투표 1위와 결선 투표 압승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아베의 집념이 바탕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중의원 선거도 자민당 압승 이끌어
이번 총선은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시다는 임기 종료를 며칠 남긴 중의원을 관례대로 해산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번 중의원 해산과 선거의 의미를 ‘미래 선택 해산’ ‘미래 선택 선거’로 이름 붙였다. 해산과 선거에 의미를 붙이는 것은 일본 정치의 전통이다. 그러면서 기시다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경제의) V자 회복’을 위한 해산과 선거라는 설명을 붙였다.
기시다는 중의원 선거의 핵심 공약으로 대책과 격차 해소를 중심으로 한 경제 공약, 그리고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라는 외교·안보 강화를 내걸었다. 코로나19는 어느 정권이든 앞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외교·안보 강화 공약은 전전임 아베와 전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2) 전 총리의 정책이지만, 경제에선 분배를 강조하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성장에 중점을 두면서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강조했던 아베노믹스와 선을 긋고 차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맞선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은 ‘(자민당) 일강 정치의 종식’을 선거의 목표로 내세웠다. 2012년 12월 아베의 총리 이후 아베가 사실상 총리로 만들다시피 한 스가와기시다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계속된 자민당 연속 집권의 폐해를 부각한 것이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국민민주당·레이와신센구미·사민당 등 일본의 5개 야당은 선거연합을 이뤄 지역구 289개 가운데 200개 이상에서 후보를 단일화하며 자민당과 공명당으로 이뤄진 집권 연정에 대항하려고 했다. 이들은 선거연합은 이뤘지만 국민민주당이 다른 야당과 달리 평화 헌법 개정과 자위대 합법화 등에서 이견을 보여 정책 연합은 하지 못했다. 국민민주당은 원래 입헌민주당과 한 뿌리였지만, 과거 이 문제로 입헌민주당과 결별한 정당이다. 이렇게 분열을 누출한 야당은 소비세 인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이번에 당선한 중의원의 평균 연령이 일본 정당 중 유일하게 60세를 넘는 노쇠하고 반대파가 적지 않은 공산당과 손을 잡으면서 중도 유권자의 이탈을 불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국 일본 야권은 입헌민주당 96석, 공산당 10석, 국민민주당 11석, 레이와신센구미 3석, 사민당 1석 등 121석을 얻는 게 그쳤다. 자민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으로 과반수인 262석을 얻고 집권 연정 파트너인 공민당의 32석을 합하면 294석의 거대 세력을 확보한 것과 대조된다.
아마리 간사장 지역구 낙마…외무상 자리에 하야시 임명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6) 외무상이 후임 간사장을 맡으면서 외무상 자리가 비었다. 기시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시다는 후임으로 자신의 파벌 소속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0) 전 문부과학상을 임명했다.
하야시 신임 외무상은 기시다가 총리를 맡으면서 물러난 자민당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의 좌장이다. 일본 자민당의 파벌은 좌장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게 관례인 만큼 기시다파는 하야시파가 됐다. 이번 총선 전까지 기시다파는 소속 국회의원(중의원+참의원) 숫자에서 자민당 내 5위 파벌이었지만, 이번 총선으로 3위로 올라섰다.
총선 전에는 아베 전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細田派·중의원 61명+참의원 35명=96명), 아소파(麻生派·42+13=55), 다케시타파(竹下派·32+20=52), 니카이파(二階派·37+10=47), 기시다파(岸田派·34+12=46), 이시바파(石派派·15+1=16), 이시하라파(石原派·중의원만 10) 등의 분포였다. 이번 총선으로 기시다파는 50명(중의원 38+참의원 12)을 확보해 호소다파(55+34=89)와 아소파(38+13=51)에 이어 자민당에서 3위의 파벌이 됐다. 기시다는 자신의 파벌을 물려받은 야심만만한 정치인 하야시를 외무상에 임명해 내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기시다가 아마리 간사장의 낙마와 모테기의 승계로 외무상 자리가 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자신의 후계 파벌 수장인 하야시를 임명한 것은 정치적으로 도전이다. 거기에는 내각에서의 기시다파 세력 확대, 하야시라는 인물의 전면 부상, 그리고 아베가 추구해온 외교 정책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야시의 외무상 기용으로 기시다 내각의 구성은 기시다파 4명(총리 자신 제외), 호소다파 4명, 다케시다파 3명, 아소파 2명, 이나이파 2명, 무파벌 2명,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 1명의 비율이 됐다. 기시다파의 각료가 최대 파벌이자 킹 메이커인 아베가 소속한 호소다파와 같아진 것이다, 기시다파는 외무상과 총무상, 농림수산상, 그리고 올림픽·백신담당상 등 실질적인 힘을 가진 자리를 차지했다.
하야시 외무상, 중의원 당선…총리로 가는 첫 관문 통과
게다가 하야시는 평화와 동북아시아 선린을 추구하는 기시다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한·일 관계나 일·중 관계 개선을 주장해온 인물이다. 아베와 아소가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평화헌법 개정이나 재해석을 통한 전쟁할 수 있는 일본,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 등에는 별 관심이 적은 인물이다. 아베의 길과 기시다의 길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다.
하야시는 정치적인 야심이 큰 인물이다. 5선 경력의 참의원인 그는 총리가 되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숨기지 않아왔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진로를 확실히 잡았다. 지난 8월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남은 참의원을 사퇴하고, 10월 31일의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당히 지역구(일본 용어 소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중의원으로 말을 갈아탔다.
하야시는 2008년 후쿠다(福田) 내각에서 방위상을, 2009년 아소(麻生) 내각에선 경제재생정책상을,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에선 농림수산상과 문부과학상을 각각 지내면서 각료로서 풍부한 국정 경력을 쌓았다. 일본에서 총리가 되려면 현실적으로 중의원이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하야시는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뒤 미쓰이(三井)물산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다 1995년 참의원으로 첫 당선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중의원으로 11선을 한 하야시 요시로(林義郞·1927~2017)가 부친인 세습 정치인이다. 하야시 요시로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 내각에서 후생상으로 입각했다.
그런 하야시를 기시다가 외무상으로 중용하면서 아베 총리와는 관계가 냉랭해졌다. 우선 기시다는 하야시를 야마구치(山口) 3구에 공천했다. 원래 그 지역구를 맡았던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78) 전 관방장관은 은퇴했다.
주목할 점은 야마구치가 아베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사실이다. 아베는 야마구치 4구,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야마구치 2구다. 그런데 야마구치는 인구가 줄면서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4개의 지역구를 3개로 줄이기로 확정됐다. 아베의 지역구인 4구와 하야시의 지역구인 3구가 통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두 사람은 차기 선거에서 지역구 공천을 놓고 불편한 관계에 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마구치에서 아베의 부친과 하야시의 부친은 서로 경쟁하던 관계였다. 아베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1924~1991)과 하야시 외무상의 부친인 하야시 요시로(林義郞·1927~ 2017)는 과거 중선거구제 시절 야마구치 1구에 나란히 출마해 득표율 1위를 놓고 경쟁한 적이 있다. 그 뒤 일본 선거 제도가 소선거구제가 되면서 하야시의 요시로가 아베 신타로에게 지역구를 넘기고 비례 대표 의원이 됐다.
11월 10일 외무상에 취임한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야시는 “북한에 대한 대응을 비롯해 일·한, 일·미·한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기반해 한국의 대응을 요구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징용문제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가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국가간 관계의 기본”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한국에 요구하겠다”고 말해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시다는 외무상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를 성사시켰다. 그런 기시다의 의지가 실린 하야시 외무상이 앞으로 한‧일 관계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개선할 경우 기시다 내각은 아베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할 수 있다. 분배를 강조한 경제정책과 함께 이웃나라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외교까지 이룬다면 기시다는 아베의 입김에서 확실히 벗어나 자기 색깔의 정치를 본격화할 수 있다.
이는 강경 일변도의 아베 측 입김에서 벗어나 평화와 이웃나라들과의 선린을 중시한 기시다파의 전통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이 이를 이룰 수 있으면 기시다의 장기 집권과 하야시가 총리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한편, 2020년 9월 총리에서 물러나 막후 실력자로서 스가나 기시다 등을 총리로 올리는 데 일조한 아베 전 총리는 11일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의 회장에 취임했다. 이로써 호소다파는 아베파로 불리게 됐다. 호소다파의 좌장이던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파벌 회장이 10일 중의원 의장에 취임하면서 파벌을 떠나게 되자 아베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건강 문제를 이유로 총리에서 물러난 뒤 1년 2개월 동안 막후 정치만 하던 아베는 이로써 자민당의 공식 실력자의 한 명으로 등장하게 됐다. 아베가 향후 정국 운영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신호탄이다. 이로써 앞으로 일본에선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 간의 치열한 정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계와 자민당의 리더십과 영향력을 둘러싼 기사다-아베 대전이 한일 관계와 일본 정국에 상당한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전망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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