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말소”까지 언급된 HDC, 현행법에선 솜방망이 처벌 예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으로 경영진 처벌 가까스로 피해
현행법 적용하면 현장관리자, 하도급 업체만 책임 물을 듯
현산 잔여 수주금액 22조원 넘어…영업정지 타격 크지 않아
2대주주 국민연금 첫 주주대표소송 나서나...시민단체 적극 행동 촉구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시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7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비난 여론은 여전하다.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임시 기둥(일명 동바리)을 철거하는 등 부실시공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하지만 시공사인 유병규·하원기 현산 대표이사나 정몽규 회장 등 경영진의 처벌은 불가능하다.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에 대한 처벌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산이 지난해 6월 같은 광주 지역에서 17명의 사망자를 낸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의 원청사라는 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현산의 등록말소까지 거론하며 “가장 강한 페널티(제재)를 줘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지만 결국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학동 사고로 현산 과태료 1430만원…이번엔?
현재 경찰은 현산 현장소장 A씨를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이외에 현산 공사부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 5명과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1명은 인명 피해가 난 안전사고를 초래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 등)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 사고와 관련한 형사 입건자는 총 10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불법 하도급이나 부실공사의 경우 건산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수 있고, 설계나 감리, 안전관리 규정 등을 위반한 사안이라면 건설기술진흥법을 적용할 수 있다”며 “최종적인 수사 결과가 나와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산법 위반에 해당하는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졌다면 해당 하청업체 대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불법 재하도급을 원청이 알고 있거나 관여한 경우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다.
현산의 전국 건설 현장과 본사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에 착수한 고용노동부도 최종수사 결과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조만간 현산의 건설 현장 12곳에 근로감독관 100여 명을 투입해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여부를 전반적으로 훑어볼 것”이라며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추후 과태료 부과나 사법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산안법에 따르면 원청의 안전보건총괄책임자와 하청업체 대표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인 탓에 강도 높은 처벌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건물붕괴 참사와 비슷한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다.
학동 재개발 건물붕괴 사고는 모두 17명의 사상자(사망 9명, 부상 8명)를 낸 중대사고였지만, 현재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9명 중 원청인 현산 소속은 현장소장 1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하급업체 관리자나 재하도급업체 대표였다.
과태료 역시 솜방망이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특별감독 현황자료’에 따르면 현산은 지난해 6월 고용부의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 특별 감독에 따라 143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하청업체의 과태료 처분(1890만원)보다 낮은 금액이다.
등록말소 제외하곤 현산 타격 크지 않을 듯
노 장관이 밝힌 가장 강한 수준의 제재는 영업정지와 등록말소를 의미한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부실시공 업체는 건설업 등록 말소나 1년 이내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이런 처벌은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公衆)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에 내려질 수 있다.
이 같은 수준의 제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부실시공 등 사고 원인에 현산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야 가능하다. 공기를 단축시키기 위한 원청의 압박 등이 수사에서 밝혀져야 한다는 얘기다. 원청의 연루가 드러날 경우 본사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에서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리게 된다. 건산법 처벌규정에 따르면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부실시공을 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발생시켜 건설공사 참여자가 5명 이상 사망한 경우’ 최장 1년 이내 영업정지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공공사업 수주와 민간 공사의 신규 수주 등 모든 영업 활동은 금지된다.
이미 광주시는 광주 지역 내에서 현산이 진행 중인 모든 건축건설 공사를 중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상태다. 시는 또 광주 내에서 추진하는 공공사업에 일정 기간 현산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질 경우 현산과 HDC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C그룹 지주회사인 HDC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3조7762억원) 가운데 현산이 맡고 있는 건설 부문은 약 70.7%를 차지했다. 2020년에도 매출 대비 건설 부문 비중은 70.4%다. HDC를 이끌고 있는 현산의 매출이 없다면 HDC의 실적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그룹의 존폐를 거론할 정도는 아니다. HDC의 수주상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9월 기준 현산의 관급 공사 계약 잔액은 6030억원가량 남았고, 민간 공사가 마무리되면 받을 돈도 22조원에 가깝다.
하지만 등록말소 처분의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건산법에는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야기해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에 대해서는 임의적 ‘등록말소’가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등록말소가 되면 현산은 그간 시공능력 실적 수주 등 모든 기록이 삭제된다. 사실상 시장 퇴출을 의미한다.
국토부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 등록말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관련해 동아건설산업에 건설업 면허를 취소한 것이다. 다만 동아건설산업은 처분 이후 면허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2대 주주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1호로 현산 노리나
최근 국민연금은 유명무실했던 주주대표소송 절차를 정비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대표소송’의 개시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주대표소송 제도는 경영진의 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어긋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주주대표소송 제기의 근거는 폭락한 주가로 인한 국민연금의 손실이다.
지난해 7월 3만3000원대까지 기록했던 현산의 주가는 지난 11일 사고 이후 연일 신저가 행진을 펼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장중 한때 52주 신저가인 1만6000원까지 떨어졌다. 이에 HDC그룹의 지주사인 HDC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현산 보통주 100만3407주를 장내 매수했다. 정몽규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투자회사인 엠엔큐투자파트너스도 같은 기간 HDC 보통주 32만9008주를 사들였다. 그럼에도 주가 하락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경영진이 기업에 끼친 손해에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은 승소해도 배상액이 기업에 돌아간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에 나설 가능성은 크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위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수(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SNS에 올라온 댓글 하나에 주가가 휘청거리고, 건설 중인 건물이 무너지는 등의 사안도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해당 기업에 확인서를 보내 정보를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시민단체도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7일 참여연대는 “학동 참사 이후 제대로 열리지 않아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한 현산 이사회에 대한 주주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고 국민연금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대주주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들로 현산 이사회가 전면 개편되도록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공익이사 선임 등 주주제안 및 사고 연루 문제 이사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넷마블 ‘세븐나이츠 키우기’, 중국 외자판호 획득
230인 미만 사업장에 주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
3경기 여주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전국 16번째 사례
45조원 규모로 성장한 크리에이터 미디어 산업 매출
5산은 “3년간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100조원 규모 공급”
6SKT, SK커뮤니케이션즈 등 3개 자·손자사 삼구아이앤씨에 매각
7스마트폰 가격 내려갈까…‘단통법 폐지안’ 국회 통과
8이지스운용, 남산 힐튼 부지 ‘초대형 복합개발 사업’ 시동
910월 출생아 수 12년 만에 최대 증가…혼인도 5년 만에 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