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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 꿈꾸는 러시아...우크라이나는 생존 가능할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러시아, 과거사 내세워 동유럽 영향력 확대
대규모 병력과 최신 무기로 우크라이나 압도
나토 동진 저지 명분에 감춰진 푸틴 속내 주목

 
 
우크라이나 동남부와 접경한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인근에서 러시아군 자동차화 소총부대 소속 군인들이 120㎜ 박격포의 실탄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진영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전 세계가 조마조마하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증권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가 12만7000명(우크라이나 주장)의 병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국경을 3면에서 포위하고 있어서다.
 

푸틴, 친나치 반공 게릴라 역사로 우크라이나 압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6주년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너지와 곡물 시장도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스태이티스타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0년 기준 2375㎥의 가스(파이프라인 1971억㎥, 액화천연가스(LNG) 404억㎥)를 수출한 가스 수출 1위 국가다.
 
핵심 식량자원인 밀도 2020년 기준 러시아는 물량과 금액에서 세계 1위인 79억 달러어치를 수출해 세계 밀 수출 시장의 17.7%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도 세계시장의 8%인 36억 달러를 수출해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는 전쟁 위기의 고조와 미래의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번 사태의 특징은 비가역성이다. 위기가 계속 확대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사태로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나토 동맹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다. 국경이 맞닿았다는 이유로 더는 가까운 나라로 남을 수가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은 오랫동안 역사와 종교‧문화를 공유했고 언어적으로도 가까운 우크라이나의 민심을 완전히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4130만 인구의 77.8%가 우크라이나인, 17.3%가 러시아인으로 자신의 종족을 규정한다.
 
종교적으로 국민의 67.3%가 동방정교(소속 교회는 다양함)를 믿고 있다. 러시아 인구 1억4500만 명 중 1.4%가 우크라이나인이며, 러시아 국민의 70%가 동방정교(소속 교회는 다양함)를 믿을 정도로 양국은 오랫동안 가까운 공동체였다. 언어도 우크라이나어는 벨라루스어와 더불어 러시아어와 부분적으로 상호이해 가능(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일부 통하는 언어)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대해 적개심‧증오심을 품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체념일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유럽연합(EU)에 개입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틀 안에서 안보를 보장받는 ‘서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염원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소련 시절 모스크바의 박해를 받은 기억이 상당하다. 소련 건국 초기 볼가 강 홍수 등으로 러시아에 흉년이 들거나 산업화 자본을 위한 외환이 필요하자 소련 공산당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식량을 대거 징발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대기근을 두 차례나 겪어야 했다. 1921~22년 굶주림과 관련 질병으로 곡창인 우크라이나 등 소련 전역에서 500만여 명이 숨졌다. 심지어 1932~33년에는 우크라이나에서만 250만~3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는 ‘기근을 통한 민족 절멸’이라는 뜻의 ‘홀로도모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특히 이오시프 스탈린이 산업 대도약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곡물을 대거 징발해 외국에 수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공산당에 대해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비극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우크라이나에선 제2차 세계대전 중 민족주의자들을 주축으로 친나치 반공 게릴라가 활동했다. 이들은 심지어 종전 뒤에도 우크라이나 서부를 중심으로 1950년대 초까지 공산체제에 저항하는 무장투쟁을 벌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역사적 기억을 잊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비난해왔다.
 
폴란드 남부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가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에 해방된 지 75주년을 맞은 2015년 1월 푸틴 대통령은 추모 연설에서 과거사와 관련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폈다.
 
푸틴은 “우리는 유대인 600만 명이 포함된 모든 희생자를 애도한다”면서 “죽음의 수용소들은 나치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나치 충복들이 운영했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발언은 누가 봐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일부 민족주의자를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1월 27일은 유엔은 2005년 11월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한 날이다. 폴란드 정부는 1947년 수용소 자리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을 세워 역사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푸틴은 최근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을 묵인해 재앙을 초래했다고 주장해 폴란드의 반발을 불러왔다. 폴란드는 1938년 나치가 분할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영토를 병합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은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가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 프랑스의 에두아르델라디에 총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함께 1938년 9월 서명한 뮌헨협정에 따른 것이다. 2차 대전 발발은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에 사실상 넘겼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폴란드는 1939년 나치와 소련의 동서 협공을 받아 나라 전체가 점령되는 참극을 겪었던 전쟁의 피해자다. 나치와 함께 소련도 폴란드의 비극을 만든 주연이다. 푸틴의 발언은 과거 공산권이었다가 현재는 나토와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변신해 러시아 견제에 나서고 있는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의 발언에는 서방에 접근하면서 러시아와 사이가 벌어지고 분쟁까지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난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이를 통해 2차대전 발발에서 나치와 함께 전범의 책임이 있는 소련을 옹호하는 ‘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한 셈이다.
 
여기에 맞춰 현재 서구와 손을 잡고 있거나 잡으려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림으로써 러시아의 이들 동유럽권에 대한 압박과 영향력 확대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러시아 중심의 옛 소련의 과오를 옹호하고 현재 친서방 동유럽 국가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역사 왜곡의 무기화로 풀이할 수 있다. 푸틴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의 먼 원인일 수 있다.
 

러시아 군사력 앞에 작아지는 우크라이나 안보

T-14 아르마타 탱크가 2021년 5월 7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6주년 전승절 군사 퍼레이드의 리허설 중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그렇다면 러시아는 나토가 주시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점령하거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매년 펴내는 밀리터리 밸런스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육군(28만)·해군(15만)·공군(16만5000)과 함께 전략미사일군(8만)·공수군(4만5000)까지 기본 5군 체제를 유지한다.
 
이와 함께 해상항공(3만1000)·해병대(3만5000)와 국경경비대 등을 합쳐 90만 병력을 유지한다. 거기에 러시아는 1만20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4650개를 실전 배치해 96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이 중 2468개를 실전 배치한 미국보다 더 많은 핵탄두를 배치한 핵보유국이다.
 
나아가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다양한 전략무기를 보유, 운용하고 있다. 거기에 세계적 수준의 s-300이나 s-400 등 방공미사일과 미그-29, 수호이 Su-27 등 최첨단 전투기도 다량 운용하고 있다.
 
육상에서는 전차·장갑차·자주포를 풍부하게 갖춘 강력한 기동군을 운용한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세 차례에 걸친 개혁으로 군을 현장 중심의 합리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러시아 군사력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육군 14만5000명, 해군 1만1000명, 공군 4500명, 공수군 3000명, 특수작전군 등 20만9000명의 현역 병력을 보유한다. 여기에 10만2000명의 민병대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뒤 일시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1994년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가 부다페스트 안보보장 각서에 서명하면서 핵탄두와 운반 수단을 포기하고 서방과 러시아로부터 안보를 보장 받았다.
 
핵무기는 해체되고 초음속 전략 폭격기인 Tu-160 같은 고가의 첨단 무기를 절단해 고철로 처리했다. 하지만 현재 푸틴의 강력한 압박 속에 우크라이나는 국제조약의 무의미함과 무가치함, 국제 정세의 가변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교훈을 얻으며 새롭게 각오를 다질 수 있다. 올해 들어 부쩍 잦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자극받아 미국과 한국을 향해 믿을 것은 핵과 미사일뿐이라며 무력시위를 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푸틴 의중 읽고 사태 해결 실마리 찾아야하는 바이든

러시아와 미국 국기 앞에 체스 말들이 놓여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우크라이나 압박 이유는 나토의 동진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EU 가입을 원한다. 러시아의 입김에서 벗어나 서구의 일원으로 보호받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하고 싶어 한다. 번영이라기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치로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은 1810억 달러로 세계 55위다. 1인당 GDP는 4384달러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절반 정도다. 항공기를 제작하고 다양한 무기를 만드는 국가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가 레드라인으로 잡고 있다. 나토는 냉전 시대 북미와 서유럽의 군사동맹으로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대항했다. 그런 나토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바르샤바 동맹이 사라졌음에도 조직을 유지했다. 민주주의‧시장경제 가치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왔다.
 
나토는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동유럽은 물론 소련에서 독립한 비러시아 국가를 향해 동진에 나섰다. 냉전 당시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던 체코·헝가리·폴란드가 1999년에 가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2004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인 불가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와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한 슬로베니아는 물론 1940년 옛 소련에 점령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이뤘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까지 가입했다.
 
러시아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나토 회원국과 바로 국경을 맞대게 됐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는 러시아의 역외영토(본토와 육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옛 독일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로 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이 합병)와 접경하게 됐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와는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됐다. 러시아 제2도시로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가까운 지역이다.
 
러시아의 공식 요구는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더는 동진하지 않는다는 문서 보장이다. 문제는 문서 보장이 힘 앞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러시아가 손수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던 1994년의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옛 소련이 1939년 8월 23일 나치 독일과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 침공 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하면서 휴지조각이 됐다.
 
독소전으로 소련은 국토 서부가 초토화한 것은 물론 200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피를 흘렸다. 이 과정에서 모스크바와 소련 서부 국경의 중간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독일 침공과 소련 반격에서 모두 피의 전쟁터가 됐다.
 
우크라이나가 현재 러시아로부터 등에 비수가 찔린 것이나, 옛 소련이 나치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은 문서 보장은 국제정치적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휴지가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러시아는 왜 문서 보장에 집착하는 것일까. 푸틴과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굴복이나 나토의 동진 저지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정확히 파악해 푸틴에게 거절할 수 없는 역제안을 하는 것이 미국과 서방 외교의 과제일 것이다.
 
문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방 동맹을 다독거려 러시아의 폭력을 저지할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바이든은 무기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런 바이든의 모습이야말로 푸틴이 가장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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