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방한 의미와 우리가 마주한 서글픈 세계 질서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경제와 보건은 함께 가야해”
자국우선주의에 밀린 약소국
코로나19 이후 세계인의 건강을 위한 보건 분야 R&D(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세계 공중 보건에는 경제적 건강이 당연히 포함된다. 세계 각국은 여러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감염 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발발 후 각국은 ‘보건의료 선진화’와 ‘경제 재개’가 분리할 수 없는 양대 국정 목표임을 깨닫게 되었다. 기후변화 대응에 몰입하며 인류를 재앙에서 구하고자 하는 빌 게이츠가 8월 16일 방한했다. 그는 감염병 국제 공조를 강조하며 한국이 더 확대된 역할을 해 주기를 희망했다. 그가 한 말을 귀 기울여 들어 보자.
"한국은 외국의 원조와 각고의 노력, 창의력으로 한 세대만에 전후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했다.“
경제와 보건이 함께 가야 하는 시기에 그의 한국 방문은 적절했다. 그는 한국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소아마비, 홍역과 같은 감염병 퇴치뿐 아니라 인류를 감염병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SK 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개발을 축하하며 한국의 감염병 대응능력과 국제공조 정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지난 2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또 다른 팬데믹이 닥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팬데믹은 코로나19와는 다른 병원체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고 극도의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게이츠는 코로나 19 사태에서 증명됐듯 인류는 6개월 이내에 백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인류의 팬데믹 대응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자국 우선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백신 민족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전염병 준비 이니셔티브 연합(CEPI)을 통해서 백신 혜택을 지구촌 모두에게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보건과 경제는 정의와 상관관계에 있다. 경제 성장은 건강을 향상하는 투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백신 프로그램은 계층 간 사회 이동성을 제고하는데도 필수적이다.
빌게이츠 보며 자국우선주의 종말 고대해
이러한 변화는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에게 더욱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 코로나19 사태의 책임론이 불거졌고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기후변화에 몰두하고 탄소중립을 외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다자주의를 외치면서도 자국 일자리를 우선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신은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심화된 가운데 우리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의 예비회담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묘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세계의 상호연결성과 의존성을 강조하는 빌 게이츠는 백신민족주의를 경계한다. 게이츠의 말처럼 인류는 바이러스의 도전과 응전을 거치며 발전을 지속할 것이다. 이번에 그랬듯,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류의 풍요로움은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과 치료가 전제되지 않고는 보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유럽연합(EU)은 동 법안에 포함된 전기차 세액공제와 지원 조항이 외국 제조업체에 차별적이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세액공제 수혜 요건으로 주요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발효 중인 국가에서 추출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되어야 하는 배터리 구성요소 가치비율을 최대 100%로 정하고 있는 점, 그리고 최종조립은 북미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명시하고 있는 점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정 광물 생산국과 북미 생산 배터리 및 자동차 조립에 특혜를 주고 EU의 대미 수출품에는 불이익을 주는 명백한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WTO 규정 위반 가능성이 있는데다 미국-EU 양측간 공동의 기후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빌 게이츠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동 법안이 백신민족주의처럼 경계할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코로나 19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한 수급 차질, 보건 인프라 부족, 핵심기업 불안, 국내 일자리 공급 부족 문제가 드러나면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대표적 형태로는 보호무역 강화, 식량안보강화, 핵심기업 통제(정부 지분투자, 국영화), 리쇼어링(복귀기업 보조금), 외국인 투자와 고용 제한, 백신 국수주의 등이다. 방한한 빌 게이츠를 보면서 인류애와 분열화된 세계화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지금의 세계 질서가 안타깝다.
그의 말처럼 또 다른 전염병이 오고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백신을 대량 생산해 집단 면역력을 갖추면 경제 회복을 몇 달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백신 개발은 달 착륙과 비견되는 인류 문명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그가 주장하는 탄소중립과 백신 민족주의 경계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제공조보다는 자국 우선주로 가고 있을까.
힘이 없는 나라들은 지금의 국제질서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중 대립 구도가 전 세계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양국의 정치를 넘어선 경제연대 노력으로 편들기 구도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보며 게이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팬데믹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게 있다고 했죠. 우리 모두가 깊이 연결돼 있다고 말이죠. 팬데믹이 불과 같다면서요. 국경 내에 멈추지 않고, 전 세계에 퍼진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세계의 평화를 상호의존성과 연결성이란 주제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가 인류애로 추구하는 백신 개발 및 보급과 기후변화 대응처럼 세상이 국제공조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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