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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수순? ‘45년 유제품 기업’은 왜 몰락했나 [위기의 ‘푸르밀’②]

저출산·수입산 경쟁·PB상품 지배 ‘삼중고’
“리포지셔닝 통해 경쟁력 강화…혁신 필요”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푸르밀 본사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45년 업력의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내막에는 오너 일가를 둘러싼 경영 자질 논란뿐 아니라 저출산에 따른 ‘감소하는 우유 소비’가 자리했다. 여기에 수입산 경쟁, ‘저마진 고비용’ PB상품 지배구조 등 삼중고가 겹친 형태다. 유업계 전반에 자리고 있는 이러한 내리막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푸르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대형마트 매대에 위치한 우유. [사진 연합뉴스]
 
유업계는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로 이전부터 소비량 감소의 아픔을 맞닥뜨려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우유 소비량은 지난 2001년 36.6kg에서 지난해 32.0kg으로 감소했다. 급감한 출산율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8월 한 달간 국내 출생아 수는 2만1758명으로, 지난 2016년4월부터 77개월 연속으로 동월 기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수입산이 판치는 경쟁 구도가 형성된 점 역시 국내산 우유 판매 부진에 악영향을 줬다. 일명 ‘수입산 반값우유’가 국내산 우유가 설 자리를 빼앗게 된 셈이다. 국내 수입량이 가장 많은 폴란드산 우유 1리터(L) 제품의 가격대는 1330원 수준으로, 1L당 2700원(서울유유)에 달하는 국내산 우유의 절반에 불과하다. 현재 수입산 우유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4.3%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입 원유량은 지난해 241만4000톤으로 2012년(124만8000톤)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2026년이면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과 EU 등에서 들여오는 유제품 관세가 0%가 된다. 국내산 우유의 부족한 가격 경쟁력이 지금보다도 더 밀리게 될 전망이다.
 

‘저마진 고비용’ PB상품 늪에 빠진 유업체

 
국내 산업 내에서도 사정이 빡빡한 건 마찬가지다. 높은 비용에 낮은 마진으로 사실상 손해인 ‘자체브랜드(PB)상품’에 주력하는 판매구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 유업체의 경우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유제품을 대신 생산해주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푸르밀 역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OEM 사업으로부터 비롯됐다.
 
더 큰 문제는 중소업체뿐 아니라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대형업체도 PB상품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업계 1위 명성을 자랑하는 서울우유도 지난해부터 창고형 할인매장에 들어가는 2.4L짜리 PB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감소하는 우유 소비량에 비해 원유 공급량은 고정돼 있어, 잉여 원유를 소진하기 위해 활용됐다. 또 각 기업 브랜드의 경쟁력 약화로 유통업체의 입김이 세진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우유 소비량은 점점 줄고 원유의 보관 기간은 짧기 때문에 어떻게든 폐기하지 않기 위해서 OEM사업에 뛰어들었다”면서 “OEM 사업이 자체 브랜드보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폐기율을 낮추는 반면 실적은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유 회사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생존법을 찾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분유, 건강기능식품, 밀키트 등 다른 형태의 사업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쟁력 약화가 기업 적자로 연결되고, 특별한 대책 없이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낙농업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의 푸르밀 막으려면 ‘시장 혁신’ 필요

 
이런 내리막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푸르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몰락하는 유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 전략을 모색하는 ‘리포지셔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소비시장이 서양화되면서 우유 제조업이 유통 시장의 ‘노예’처럼 변모해버렸다”며 “급격히 온도가 상승하는 지구온난화를 막듯, 시장이 몰락하는 시간을 유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유가공 시장 상황상 공적 자원을 투입하기 까다로운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산업 등 ‘성장하는 시장’과의 연결성을 확대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과거에는 유통 기간이 짧은 유가공 시장의 안전성이 소비자의 주요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기업 간) 상품의 수준이 비슷해져서 브랜드 파워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라며 “가격으로 승부를 보게 됐다는 점에서 PB상품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의 수요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업계 차원에서 건강과 연결해 신제품을 내놓는 등,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혁신 과정에서 부딪힐 규제를 줄여주는 정도”라고 부연했다.

김서현 기자 ssn359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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