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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대책, 작정한 사기꾼 못 막는다…‘이 내용’ 특약 넣어야

집주인 체납액, 전세계약 후 세입자 열람 가능해
계약 체결할 때 체납액 있으면 배액배상 ‘특약’ 걸어야
계약일 선순위 근저당 또는 압류하면 손해배상 조항도 넣어야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022년 12월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뒤 숨진 일명 ‘빌라왕’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에야 임대인의 체납 세액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엔 현실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을 통해 오는 4월 1일부터 집주인 동의를 받지 않아도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가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 때문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임대차 계약 이전에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세입자가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집주인이 계약 이전에 세입자가 체납 세액 여부를 열람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많았다.
 
 

연이은 ‘빌라왕’ 사망사건…국세징수법 개정

최근 수도권에서 1139채의 빌라와 오피스텔을 무자본 갭투자로 매입한 김모씨가 지난해 갑자기 사망하면서 약 200명에 달하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이 부동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모씨가 보유한 빌라·오피스텔 1139채 가운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건수는 절반 정도인 614건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174건은 김씨 사망 이전에 HUG가 대위변제를 했거나 현재 대위변제 절차를 밟고 있다. 나머지 440건은 아직 전세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다.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524명은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최근 경매 시장도 얼어붙어 온전히 보증금을 반환받는 데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지역 연립·다세대주택(빌라)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 비율)은 평균 79.8%를 기록하며 80%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2019년 12월(79.3%)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세입자들이 법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할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을 보증 기관에서 대위 변제 받기 위해서는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보증기관에 이행 청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임대인이 숨질 경우 해지 통보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행 청구 절차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향후 법원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지정하면 이행 청구가 가능하지만,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이 밖에도 또 다른 ‘빌라왕’으로 불리는 서울 강서구 일대 주택 240여채를 매입해 세를 놓은 정모씨가 지난해 7월 사망하고, 인천 미추홀구 빌라와 오피스텔 60여채를 보유한 송모씨가 지난 12월 사망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전세 사기 단속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전세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전세 사기 피해 지원 센터를 통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 상담과 임시 거처를 제공할 예정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는 가구당 최대 1억6000만원을 연 1%의 낮은 금리로 주택도시기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국세징수법 개정안을 통해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없이 세입자가 임대인이 세금을 체납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또 경매나 공매로 주택이 넘어갈 경우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고 나서 발생한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체납액보다 먼저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세 계약 체결 이후에야 집주인의 체납액을 세입자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로 바뀐 국세징수법 개정안에 따르면 집주인 체납 세액 확인 가능 기간은 계약일로부터 임차 개시일까지다. 전세 임대차 계약 이전에는 집주인 세금 체납 정보 열람이 불가능하다. 체납한 세금이 없다는 임대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세계약 체결 전에 집주인 동의 없이 세급 체납액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면 개인자산 및 신용정보보호법과 충돌한다. 임대차 계약을 미끼로 임대인의 체납 세액 여부 등 개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납 세액이 있다고 해서 모든 집주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전세 사기 막기 위해서는 계약 시 ‘특약’ 신경 써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이 근본적인 전세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계약을 체결할 때 특약을 통해 보증금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상영 법무법인 테오 변호사는 “전세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난 뒤에 연체 세액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는 당시에 ‘계약 체결 후 체납 세액이 있을 경우 위약금 없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문구를 넣는 것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당부했다.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먼저 체결하고 이 보증금을 바탕으로 동시에 매매를 진행하는 동시매매 방식 전세 사기도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계약 당일 대항력이 없는 점을 악용해 선순위로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소유자를 변경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특약을 넣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이태윤 법무사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체결할 때는 대항력 효력이 발생하기 이전인 전입 신고한 당일에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압류, 가압류가 들어올 경우 보증금에 상당하는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 의무를 임대인이 진다는 문구를 특약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을 받고 바로 소유권자를 변경해버리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 이같은 특약을 계약 조항에 넣으면 소유자가 바뀌어도 최초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법무사는 “특약을 넣지 못했다면 해당 부동산에 대한 등기 신청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인터넷 등기소에서 등기신청처리 현황을 이사한 날 자정까지 살펴보는 것이 안전하다”며 “정부24 민원서비스를 통해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초본, 주민등록증의 진위 여부도 꼼꼼히 확인해야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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