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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업’이라더니…조용한 제약·바이오 육성 정책 [신성장 4.0 전략 동상이몽④]

바이오·헬스 산업 ‘핵심 전략’으로 키우겠다던 정부
파격적인 과제·사업 없어…“재정 여건 녹록잖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 참석에 앞서 바이오헬스 창업기업 아이엠지티 연구소를 방문해 나노 약물 입자 크기 측정을 시연했다.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수출을 통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 가능성을 돌파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먹을거리로 육성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산업을 키울 과감한 실행 방안은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정부에서도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정책이 ‘계획’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약 9분 동안 이어진 발표에는 정부의 올해 경제 정책 방향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제약·바이오 산업과 관련해서 윤 대통령은 “새로운 미래 전략기술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튼튼하게 할 것”이라며 우주항공, 인공지능과 함께 ‘첨단 바이오’를 핵심적인 기술로 언급했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는 더 자세한 산업 지원 계획이 포함돼 있다.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15개의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신성장 4.0 전략’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디지털 치료·재활기기 제품화와 감염병 대응 체계 및 바이오 인프라 구축, 보건의료 데이터 활성화, 전문 인력 양성 등 계획이 담겼다. 정부는 모빌리티와 에너지, 미디어 콘텐츠 등 다른 경제 분야와 함께 바이오·헬스 산업 내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한다고 했다.

업계는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에 계속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지원 정책에 관해 “새로운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거시적인 정책 방향 중 일부로 바이오·헬스가 언급되긴 했지만 기존에 부처에서 진행해온 사업을 모아둔 정도”라며 “기업들이 어려워진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감한 사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긴축 기조서 바이오·헬스 산업 탄력받을 수 있나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지난해 7월 열린 제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산업계의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K-바이오 백신 허브를 조성하는 등 금융 지원도 확대해 국내 기업들이 블록버스터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같은 날 바이오·헬스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하며 윤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정부가 당시 공개한 바이오·헬스 산업 활성화 방안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국책은행, 민간 기업이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약 개발 기업 중 재정적인 문제로 임상 3상을 추진하지 못한 기업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쳤다. 정부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임상 2상까지 지원하는 범부처 연구개발(R&D) 사업도 2조2000억원 규모로 203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의료기기를 시장에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국가 전략 기술 육성 방안에서도 드러났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핵심 산업 기술과 함께 첨단 바이오를 12개의 전략 기술 중 하나로 꼽으면서다. 정부는 당시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산업은 물론 첨단 바이오를 비롯한 미래 기술을 탄탄히 만들어야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전략 기술의 육성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첨단 바이오를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가 산업 육성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연말이 되면서 사그라졌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투자 혹한기를 지나는 가운데 산업을 살릴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부재했다. 산업의 근간인 R&D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올해 보건의료 R&D 예산은 1조469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고 전체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쪼그라들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신약 개발 사업 예산도 지난해 461억원에서 올해 371억원으로 20%가량 감소했다. 특히 바이오 의료 기술 개발(신약 개발) 사업은 올해 예산이 62억원으로 지난해 329억원과 비교해 80% 이상 삭감됐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과 원천 기술 개발 등 사업 예산이 지난해보다 3~4배 수준 늘었지만 두자릿수에 그쳤다. 보건복지부의 국가신약개발사업 예산도 지난해 420억원에서 올해 412억원으로 2%가량 줄었다. 부처 관계자는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예산의 효율적인 투자와 사업 추진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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