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원금 파티? “공짜는 없다”…美, 기업 기밀까지 공개 요구
예상보다 기업 이익 많으면 보조금 최대 75% 환수
대규모 미 현지 투자 계획한 기업들 딜레마
삼성전자, 텍사스에 21조 규모 파운드리 공장 건설 중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blank check)는 없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최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과학법(반도체 지원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며 예상보다 많은 수익을 올린 기업에는 보조금의 상당액을 환수할 계획을 밝혔다. 미국 반도체 시설에 조 단위 투자를 결정한 우리 기업에도 사실상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러몬도 상무장관은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코트라(KOTRA) 주최 한미투자협력포럼 연설에서 ‘한국은 미국의 좋은 파트너’라며 추켜세웠지만, 자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 앞에선 누구도 ‘특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셈이다.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이른바 ‘반도체 지원법’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면서 우리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생산 및 연구시설을 미 정부에 공개하면 보조금을 우선 지원하고 일정 기준 이상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선 반납하게 하는 등 과도한 경영 개입 가능성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반도체과학법(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을 공개했다. 이 법안에는 보조금을 신청한 미국 투자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원)를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우리 기업들도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보조금을 확보하고 수출 시장을 넓히기 위해 미국으로 직접 진출을 추진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미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인데 향후 20년간 11곳의 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도 미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대수도 기밀인데 정보 공개 요구
문제는 기업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 정부가 내세운 조건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경제, 국가안보, 투자 계획의 상업적 타당성 등 6가지 보조금 지급 조건을 제시했다. 특히 ‘국가안보 프로그램에 집약, 실험·전환·생산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고 한 점이 논란거리로 지목된다. 반도체 생산‧연구시설을 미 정부에 공개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자칫 반도체 기밀이 누설될 경우 기업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 공장에 주요 장비가 몇 대 들어가는지, 어떻게 배치되는지도 중요한 기밀에 속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이 세부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 일부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미 정부는 기업이 보조금을 신청할 때 예상 해당 연도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는 수익 규모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보다 일정 기준 이상 수익을 올릴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이익을 환수하겠다고 했다.
미‧중 갈등과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줄타기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일본‧대만이 손을 잡고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는 칩4 동맹이 추진돼 미국 투자를 중단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보조금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인 기업 입장에서 보조금을 포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향후 수익이 늘어나면 수혜 규모가 줄고 기밀 유출 우려까지 떠안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반도체 업계와 대응 방안을 논의해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세부 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미국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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