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했을 때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익혀라”…위기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중꺾마’로 위기 극복…장신(長新) 기업을 찾아서]]⑧-태광산업
국내 최초 아크릴 합성공장 설립·스판덱스 생산
도전·혁신 통해 대형 화재·IMF 등 숱한 위기 극복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Data Lab)은 지난 2월 '111클럽' 기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데이터랩의 두 번째 기획은 국내 매출 상위 2000대 상장사 중 올해 기준으로 60년 전통을 가진 기업 177곳 중 (2021년 기준) 연 매출 50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상위 10%의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다. 총 46곳의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경제의 주역들이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은 이 기업을 '장수(長壽) 기업' 대신 '장신(長新)' 기업이라 이름 붙였다. [편집자]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대한민국 대표 섬유·석유화학 기업인 태광산업이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장신(長新) 기업에 포함됐다. 국내 매출 상위 2000대 상장사 중 올해 기준으로 6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회사는 170곳이다. 여기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000억원, 500억원(지난 2021년 기준)을 넘는 장신 기업은 50곳도 되질 않는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석유화학 기업은 한화, KCC, 태광산업뿐이다.
섬유 회사의 70년 장수 비결
태광산업은 올해 창립 73주년을 맞은 국내 대표 장수기업 중 하나다. 국내 섬유·석유화학의 미래를 이끌며 글로벌 초우량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태광산업은 국내 최초의 아크릴 합성공장 설립, 국내 최초 스판덱스 생산, 국내 유일 탄소섬유 생산 등 ‘최초’, ‘유일’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한민국 섬유·석유화학 산업의 도약을 이끌었다.
태광산업의 역사는 1954년 시작됐다. 고(故) 일주(一洲) 이임용 회장(1921~1996년)은 1950년 10월 모직물 생산 기업인 동양실업 지분을 인수하며 섬유사업에 발을 들였고, 1954년 7월 부산 문현동에 태광산업사를 세우며 독자경영에 나섰다. 지금의 사명인 태광산업으로 변경된 것은 1961년이다. 그해 9월 15일 법인을 설립하면서 사명이 변경됐다.
회사 설립 후 10여 년 동안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공장 설립과 기업 인수 등을 통한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 나섰다. 1962년 무역업을 시작한 태광산업은 이듬해 부산에 소모방을 생산하는 가야공장을 설립했다. 1967년에는 울산 아크릴공장, 1969년에는 부산 동래공장을 준공하며 생산시설을 점차 늘려갔다.
외형 확장에 성공한 이임용 회장은 1970년대부터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그는 산업을 통해 국가를 일으키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37년 이임용 회장이 16살의 나이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6년간 밤낮없이 일,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이다. 이는 태광이 향후 섬유, 석유화학, 방송, 금융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게 되는 밑거름이 됐다.
물론 기존 섬유사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집중했다. 1975년 태광이 대한화섬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해 태광산업은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부산 반여공장을 설립하며 설비확장에 집중했다. 이 같은 투자가 결실을 이룬 것은 1979년이다. 그 해 태광산업은 국내 최초로 스판덱스 생산에 성공했다. 단순히 국내 최초에 머문 것도 아니다. ‘최고의 품질’을 강조한 이임용 회장은 태광산업을 단기간에 스판덱스 글로벌 2위(점유율 17%)까지 끌어올렸다. 1989년에는 화섬직물 대구공장을 인수하며 설비확장도 지속했다.
1990년대에는 국내 최초로 섬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시기다. 태광산업은 1995년 울산에 PTA를 생산하는 석유화학 1공장을, 2년 뒤인 1997년에는 프로필렌, 아크릴로니틸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2·3공장까지 준공하며 섬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이 시기 태광산업은 울산공장 내 태광기술연구소, 대덕연구단지에 태광중앙연구소도 설립하며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집중했다. 국내 섬유산업이 급격한 하향세로 접어든 90년대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를 펼치며 위기를 극복하는 발판이 됐다.
도전과 혁신으로 위기 극복
“숲을 이루기 위해 멀리 보라”, “위기에 처했을 때 흔들리지 않는 법을 익혀라” 이임용 회장이 직원들에게 줄곧 강조해온 말이다. 태광산업은 70여 년의 역사 동안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임용 회장이 강조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위기 극복에 성공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1985년 발생한 부산 동래공장 화재 사고다. 태광산업은 공장 2만3000평이 불에 타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하지만 사고 1년 만에 모든 생산설비와 시스템을 원상태로 복구시켰다. 이임용 회장은 당시 동래공장 인근에 숙소를 마련하고, 현장 복구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사고 수습 후 모든 직원(2000명)이 현장에 복귀했다는 것이다. 이임용 회장은 ‘단 한 사람도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IMF, 글로벌 외환위기 등의 어려운 시기에도 내실경영을 통해 지속 성장세를 이어간 태광산업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혁신과 도전으로 위기를 극복한 태광산업은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린다. 최근 이 회사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약 12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수요 감소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게 태광산업 측 설명이다.
태광산업은 창업주 이임용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혁신과 도전으로 위기 탈출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2032년까지 석유화학사업에 6조원, 섬유사업에 4조원 등 총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태광산업 조진환(석유화학)·정철현(첨단소재, 구 섬유사업) 대표도 올해부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 조진환 대표는 신년사에서 “미래 먹거리 신사업에 대한 검증을 거쳐 이른 시일 내 성장 발판이 마련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친환경 섬유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성장성 높은 첨단소재 육성에 자원을 집중해 사업구조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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