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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미대오빠’ 배우 박기웅의 재발견, 흑백으로 그려낸 빌런의 삶 [이코노 인터뷰]

배우 박기웅, 작가로서의 3번째 전시 ‘48빌런스’
배우로서의 경험을 모아, 한 폭의 그림으로

미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인 영화배우/작가 박기웅이 '48빌런스' 전시장 엔딩 크레딧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헐크, 고블린, 조커, 크로마키. 이 생뚱맞은 조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초록색’을 가득 머금고 있다는 점이다.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녹색으로 점철된 공간. 이제 막 작가로서 세 번째 발걸음을 뗀 배우 박기웅의 개인전, ‘48빌런스’ 전시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시각 디자인을 전공해 ‘미대 오빠’로 불린 그는 ‘네이버 컬처라이브’를 1년 9개월 동안 진행하며 전시 티켓 완판을 기록하는 등 대중과 예술 사이 간극을 한층 좁혔다고 평가받는다. 작가 박기웅이 세기의 악역들과 함께 만들어낸 그림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봤다. 

배우와 작가 그 사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다

배우이자 작가 박기웅이 자신이 그린 영화와 드라마 속 악당 인물 앞에 서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흑백 모노톤의 유화 작품이다. 갖가지 색채를 모두 빼고 흑과 백만을 선택한 영문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가 추구한 배우의 삶과 연관성이 있다. 

“원래는 색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모두 배제했어요. 단순히 악역이라고 해서 어둡게 연출한 건 아니에요. 색깔이 들어가면 색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반면 시선이 분산되는 느낌도 들거든요. 하나하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수효과가 잔뜩 들어가는 드라마와 달리 소극장에서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연기가 더 생생하게 와닿는 것처럼요.”

48빌런스는 배우이자 작가인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전시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박 작가는 이번 전시를 배우와 작가를 묶어서 구성한 첫 번째 전시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만큼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남달라서일테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솔직한 전시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욱 후련하죠. 저는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솔직하게 제 생각을 드러내고 나니 예술인으로서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도 들어요.”

 ‘48빌런스’의 전시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 특별전시관에 마련됐다. 사진은 박기웅X김재준 미디어 콜라보 작품 앞에 서 있는 박기웅. [사진 신인섭 기자]

48빌런스의 전시장은 잠실에 위치한 롯데타워 서울스카이 전망대와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 조성돼 있다. 해당 공간을 전시 장소로 낙점한 이유도 앞서 말한 박 작가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한다.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전문 갤러리와 달리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리려면 층고가 높은 구조의 갤러리를 선택했어야 해요. 하지만 저는 ‘작가’ 박기웅으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아트테이너로서의 박기웅이 봤을 때 그동안 꾸준히 해왔던 대중적인 예술의 결을 살리고 싶었어요. 전망대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가는 길에 제 전시를 둘러보기도 하고, 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전망대를 구경가기도 하고. 이런 특징이 추구했던 바와 잘 맞아떨어졌죠.”

전시장 말미에 등장하는 엔딩 크레딧은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다. 미디어아트로 구성된 전시 타이틀에 전시에서 조명한 48명의 배우, 캐릭터의 이름이 약 3분 동안 주루룩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은 그에게 또 다른 작품이다.
 
“배우이자 작가인 ‘우리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연기는 공동예술이고, 그와 비교했을 때 회화는 개인의 작업물이잖아요. 그 지점을 연결해보고 싶었어요. 하나하나의 구성원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모습 말이에요. 그래서 작품 옆에 으레 붙어있기 마련인 캡션도 모두 뺐죠.” 

그림은 일상의 ‘환기구’...“서로 다른 영역 오가는 과정”

작가로서의 3번째 도약에 나선 박기웅이 이코노미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 신인섭 기자]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어딘가 여유로운 표정의 빌런들 사이에 존재감을 뽐내는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악당, 랏소의 모습이 눈에 띈다. 각 잡힌 인물 사이에 자리한 이 귀여운 캐릭터를 박 작가는 일종의 ‘환기구’라고 칭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박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마냥 행복한 꽃밭으로 비유하기보다, 연기와 그 사이를 오가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환기시켜주는 매개체라고 봤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기 현장, 혼자 캔버스 앞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실 풍경이 극과 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몰두를 하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사실 치유의 과정은 아니에요. 몇 시간을 내리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무척 고되거든요. 다만 공동작업을 하다가 그림을 그리면 ‘서로 다른 영역’을 오가면서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이 정말 큰 것 같아요. 연기가 상대로부터 에너지를 뺏고 빼앗기는 작업이라면, 그림을 그릴 때는 건물 전체에 저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거든요. 웃긴 게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아있다 보면 가끔 외롭기도 해요.”

‘아트테이너’로서의 삶은 환영과 비판을 동시에 받기 마련이다. 박 작가는 대중이 자신의 작품을 자유롭게 대하길 바랐다.

“예술은 절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중예술을 해온 탓인지 모르겠는데, 판단은 반드시 관람객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에겐 예술이 그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말로 생각을 표현하고, 글로 느낌을 전하듯이요. 제가 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 제작에만 몸담은 건 아니다. ‘미대오빠’라는 캐릭터와 작가로서의 이미지를 잘 살려 전시 소개 콘텐츠 ‘네이버 컬처라이브를 1년 9개월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박 작가가 진행한 방송의 티켓 판매율이 각 전시장의 얼리버드 기간 판매율을 앞질렀다고 하니 성과는 말할 것도 없이 대성공이다. 박 작가는 앞으로도 대중과 예술을 잇는 역할을 지속해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대중의 관심을 외면하고 미술계에만 갇혀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오게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1조원 규모를 바라본다는 미술시장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000억원대였거든요. 예술에 몸담은 사람이야말로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네이버 컬처라이브와 같은 형태의 콘텐츠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그 주체가 제가 된다면 더 좋고요.”

배우이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지만, 그에게도 꿈은 남아있다. 박 작가는 앞으로 작가로서의 발걸음을 한 발짝 두 발짝 더 내디딜 계획이다. “배우는 수많은 구성원과 함께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온전히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제 고유의 정체성은 지켜나가되, 온전한 창작자로서의 면모도 발휘해보고 싶어요. 더 관심 가지고 싶고, 다음이 기다려지는 예술가로 거듭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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