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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은 따뜻하죠. 사랑이에요”…정은혜 작가 초대전 [E-전시]

곽재선 문화재단, 정은혜 작가 특별 초대전
정은혜의 ‘포옹’…회화 작품 65점 한 자리에
이달 29일까지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에서

정은혜 작가가 5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 아트스페이스 선에서 열린 정은혜 작가 초대전 ‘포옹’ 오프닝 리셉션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영훈 이데일리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설아 기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캔버스에 담아낼 수 있을까. 어떤 화가는 뭉뚱그려진 추상화로, 또 어떤 화가는 따뜻한 색감이나 빛의 형상화로 그 느낌을 표현해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감각이나 색의 섬세한 차이와 같은 추상적 과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따뜻함 자체를 캔버스에 표현했다고 보기 어렵다. 

발달장애인 화가이자 배우. 정은혜 작가는 묘사가 아닌 직관적인 표현으로 따뜻함을 그려낸다. 유난히 포옹을 좋아해서인지 작가의 작품엔 포옹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꽃들에 둘러싸인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며 꼭 껴안고 있는가 하면, 초록색을 배경으로 마치 나무가 된 듯한 작가가 누군가와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모습도 있다. 

전시장 내부. [사진 김설아 기자] 
“저는 저예요. 밝은 아이이고, 특별한 아이죠.”

서울시 중구 순화동 KG타워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에서 열리고 있는 정은혜 작가 초대전 ‘포옹’은 그 따뜻함을 모아놓은 전시다. 새롭게 출범한 곽재선 문화재단의 첫 번째 이야기기도 하다. 정 작가는 이번 초대전에서 ‘사람들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회화 65점(원화 20점, 애디션 15점, 인물드로잉 30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정은혜 작가가 처음으로 그린 ‘향수푸는 외국 모델’(2013). [사진 김설아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기둥에 설치된 작은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향수푸는 외국 모델’(2013). 그가 처음 그린 그림이다.

생후 3개월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고 어려운 학령기를 보낸 정 작가는 20살 무렵까지 스스로 만든 동굴에 갇혀 지냈다. 환각과 환청, 틱 장애에 시달리던 그녀는 2013년 엄마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잡지에 있던 광고 페이지를 쭉 찢어 갱지 위에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고개를 돌려 왼쪽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전시가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포옹’, 얼굴을 마주하는 일에 대한 에세이를 지나면 작가의 자화상 두 점이 벽에 붙어있다. 그 중 ‘니 얼굴 은혜씨’(2019)는 정 작가가 서울문화재단의 입주 작가로 들어가 처음 그린 작품이자, 인기작으로 꼽힌다. 첫 채색 작업을 시도한 작품이기도 하다. 

‘니 얼굴 은혜씨’(2019)와 ‘서른살 은혜’(2020). [사진 김설아 기자] 
도슨트 투어에서 정 작가는 “저는 저예요. 밝은 아이이고, 특별한 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 하얀 벽지 대신 줄무늬 옷의 연장으로 줄무늬 배경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서른살 은혜’(2020)는 정 작가의 다양한 얼굴을 한 데 모아 놓은 것이다. 같은 서른 살을 살고 있지만 다른 얼굴과 표정, 다양한 옷들을 입고 있는 순간 순간을 캔버스에 남겼다. 

인물을 주로 그리지만 전시장 한쪽에 걸린 고양이 료타(2021)와 까비(2022), 귀염둥이 지로(2021)와 아기 지로(2022) 작품은 동물이 주인공이다. 정 작가가 그리는 대상이 인물에서 주변의 동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양이 료타는 정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다. 공부를 가르쳐주기 위해 집에 자주 들르는 일명 선아 선생님의 고양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마룻바닥 배경을 정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낸 게 특징이다. 고양이 발자국을 패턴화해서 완성했다. 정 작가는 “료타가 이제 14살”이라며 “죽기전에 다시 한 번 만나러 가야된다”고 부연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고양이 로타와 까비. 귀염둥이 지로 작품들. [사진 김설아 기자]
지로는 비오는 날 정 작가의 동생이 길가에서 주워온 유기견이다. 정 작가는 지로에 대해 “지금은 많이 커서 9살이라 귀도 길어지고 꼬리도 길어졌다”면서 “저를 좋아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서워하는 겁쟁이”라고 소개했다. 

작품 하나 하나를 둘러보다 보면 그녀의 삶 속으로 점점 파고들게 된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정 작가가 친할머니를 그린 ‘이점달 할머니’(2020)와 외할머니를 그린 ‘김풍자 할머니’(2020) 작품도 있다. 이점달 할머니는 작품 속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작가의 인형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정 작가가 3명의 할머니 모습을 그린 작품. [사진 김설아 기자] 

정은혜 작가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김설아 기자] 
정 작가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시기의 작품도 있다. 지난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던 배우 한지민, 김우빈과 함께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정 작가는 “드라마 출연 이후 유명해져서 힘들지만 좋다”면서 “한지민과 김우빈과 톡(카카오톡)을 주고 받는 사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이렇듯 자신의 삶을, 그리고 직관화 된 따뜻함을 캔버스에 담는다. 주로 가족, 부부, 친구, 동료, 반려견 등 주변 관계 속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 속에는 어떠한 편견도, 정형화된 문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표정은 다채롭고,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채색은 선명하면서도 조화롭다. 그렇게 작가는 어느 덧 4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냈고 앞으로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번 전시에선 만화가이자 동양화가인 정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이 어린 시절 정 작가를 그린 ‘나의 딸 은혜’(2000)와 18년 뒤 정 작가가 그린 ‘엄마 장차현실’(2018)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은혜 작가 어머니인 장차현실이 어린 정 작가를 그린 모습. [사진 김설아 기자]
 ‘노머니 노아트’에 출품했던 작품 ‘은혜씨가 사랑하는 것들’(2023).
또 정 작가가 출연해 활약한 신개념 아트 버라이어티쇼 ‘노머니 노아트’에 출품했던 작품 ‘은혜씨가 사랑하는 것들’(2023)도 이곳에 전시된다. 무료 전시로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된 작품 중 에디션 작품 15점은 구매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4월29일까지.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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