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는 약과, 오수관 터져도 참고 살아요”…예견된 정자교 붕괴
[닻오른 1기 신도시 재정비] ② 성남 분당 정자교 붕괴로 사상자 2명 발생
1기 신도시 교량‧도로 등 기반시설 점검 필요성↑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지어진지 30년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인데 새로 이사만 들어왔다 하면 누수는 기본이에요.”
3월 29일 경기 고양 일산 서구 대화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일산 주민 A씨는 “일산 지역 아파트는 대부분 준공한지 20년을 훌쩍 넘어 2~3년 안에 30년의 재건축 연한을 채울 것”이라며 “1기 신도시 건설 붐이 일었던 1990년대에 대규모로 공급이 이어졌기 때문에 날림 공사가 의심되는 단지들이 그만큼 많다”고 말했다.
A씨는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 단지에 새로 이사를 온 집이 있는데 오수관이 터지면서 갓난아기를 키우는 아래 신혼부부 집 천장으로 오수가 흘러넘쳤다고 하더라”며 “언제까지 이삿집 들어오고 내부 공사할 때마다 천장 열고 배관 뜯어 고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일산 지역주민 B씨는 “지금부터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시행한다고 해도 재건축은 최소 10년이 걸릴텐데 그 동안 누수, 균열 등 부실 아파트에서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전진단 ‘양호’ 분당 정자교 와르르…기반시설 안전성 적신호
최근 경기 성남 분당에서 발생한 대교 붕괴사고 역시 1기 신도시 기반시설 재정비에 시급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5일 성남 분당구 정자동에서 정자교 보행로가 무너져 내리면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치는 등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자교는 1기 신도시인 분당 신도시 조성과 함께 1993년에 지어진 왕복 6차로 교량이다. 지난해 이뤄진 정기점검에서 이 교량은 A~E등급 중 2번째 등급인 B등급(양호)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양호 판정을 받은 다리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하자 1기 신도시 주민들은 기반시설 안전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기반시설물의 안전성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성남 분당구 정자동 주민인 C씨는 “시설 노후와 불충분한 안전진단으로 정자교가 무너져 내렸는데 이와 유사한 상황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나”며 “분당 내 다리, 터널 등의 도시기반시설은 약 30년간 사용한 만큼 노후화와 내구성 저하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반시설뿐 아니라 분당 부동산 시장에서도 같은 시기에 지어진 아파트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주거환경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재건축, 재개발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위해 충분한 예산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당신도시 조성과 함께 탄천에 설치한 교량은 총 19개다. 정자교와 함께 1993년 이전에 조성해 준공한지 30년이 지났다. 이들 교량은 정기안전점검과 정밀안전점검에서 B등급(양호)과 C등급(보통)을 받았다.
일부 구간 침하 현상이 나타나 통행을 통제한 정자교 인근 불정교는 2021년 5월 정밀안전점검에서 B등급을 받았다. 보행로가 일부 기울고 난간 하단이 끊어져 있다는 민원으로 보행로를 차단한 수내교는 2021년 5월 정밀안전점검에서 C등급이 나왔다.
안양 평촌신도시에는 1993년 조성 당시 학의천을 중심으로 비산인도교, 내비산교, 수촌교, 학운교 등 4개 교량을 설치했다. 이들 가운데 학운교(B등급)를 제외한 3개 교량이 지난해 말 정기안전점검에서 C등급을 받았다. 안양시는 4개 교량을 올해 정기안전점검 우선 점검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고양 일산신도시에도 하천과 도로 등에 설치된 교량 중 30년이 넘은 곳은 18개였다. 이들 교량은 안전점검에서 B, C 등급을 받았다. 군포 산본신도시에는 도장교 상행선과 하행선 등 2개 도로 위 교량을 30년 전 설치했다. 부천 중동신도시에서는 29년이 경과한 도로 위 교량 1개가 지난해 정기안전점검에서 B등급을 받았다.
“주거시설 발맞춰 기반시설 확충 예산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30년을 맞은 1기 신도시의 새로운 30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거시설뿐 아니라 그에 맞는 기반시설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환 인하대학교 스마트시티연구센터장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는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를 조성했을 때는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발맞춰 도시 건설도 압축적으로 빠르게 진행했다”며 “지은지 30년이 된 1기 신도시를 다시 정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시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아파트만 10층에서 20층으로 새로 지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인구만큼 상하수도관, 도로, 교통시설 등 기반시설 이용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며 “1기 신도시 기반시설도 노후화가 심화하면서 정비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지자체들의 예산이 부족해 쉽게 손을 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1기 신도시 구역을 나눠 주거 및 기반시설 정비, 이주 계획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정책이 필요한 동시에 중앙정부의 충분한 예산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100만㎡ 이상의 택지지구를 개발하는데 정부는 이보다 부지 면적이 적은 곳들은 통합해서 재건축하는 방안을 권장하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통합재건축을 통해 인프라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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