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종말① 세입자·집주인 ‘윈-윈’ 전세의 탄생[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셋방살이’에서 출발한 전세, 부족한 주택·금융 공급원으로
역사 깊은 보증금 반환 분쟁, ‘갭투자’ 성행하며 심화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전세사기 사태가 심상치 않다. ‘사기’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가에 따라 피해자의 규모는 고무줄처럼 늘어날 것도 같다.
만약 전세사기를 ‘전세보증금 반환 불이행’이라고 넓게 규정짓는다면 이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전세입주자 보호제도 시급’, ‘전세금 몽땅 떼이고 쫓겨나도 속수무책’, ‘전세금사기 엄중처벌을’이라는 제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서울지검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게 해달라는 건수가 전체의 20%로 가장 많았다고 하며, 2016년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시행한 임대차 분쟁조정의 절반 이상이 늘 보증금 반환과 관련된 이슈였다.
보증금 반환 불이행, 오랜 분쟁의 원인
도대체 그 동안 우리 정치권과 국회는 이렇게 빈도가 높은 민생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던 것일까. 1981년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1981년 3월 첫 시행)은 민법상의 특례법으로 억울하게 전세보증금을 떼인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알고 보면 어마어마한 법률이다. 임대차보호법 제정으로 임차인은 집주인의 협조와 비용투입이 필요한 등기신청 없이, 주택을 인도 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대항력을 부여받았다.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 받을 때까지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도록 하고, 소액보증금의 우선변제권을 인정했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대차 계약일 경우 보증금 전체에 대한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도록 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제도지만 40년 전만 해도 이러한 법률제정은 민법 체계를 흔드는 대전환이었고 혁명적 조치였다. 집주인의 협조가 필요 없는 주민등록과 확정일자가 사실상 등기를 대체한 데다, 기존에는 없던 물권(物權)적 효과를 가진 채권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후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남의 집을 빌려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확정일자의 효력을 도입한 이후 임대차보호법의 개정내용을 보면, 전세보증금 보호와 반환위험성에 대한 대책보다는 임대차 기간의 연장이나 임대료 상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1980년대에 특단으로 마련된 조치들이 전세보증금을 보호하는데 워낙 큰 기여를 했기에, 보증금 보호보다는 다른 조건들을 추가하는 게 시대적으로 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권과 정부가 놓친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40년 동안 집값은 엄청나게 올랐으며 덩달아 전세가격도 높아졌다. 화폐단위가 달라졌다. 이제 서울에서 ‘억’ 단위 이하의 전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뿐이 아니다. 집값의 70%를 넘어서는 전세물건이 과거보다 많아졌다. 40년 전에 없던 전세대출상품도 생겼다. 돈 단위가 커지고, 조달도 쉬워졌다. 그 빈틈을 파고드는 사기의 수법도 교묘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전세보증금 보호제도는 40년 전 ‘확정일자에 따른 우선권 부여’, 거기에 멈추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 도시화와 함께 발달해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외국학자들에게 설명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이 바로 ‘전세’라는 임대차 방식이었다. 일종의 돌려막기와 같은 이 위험천만한 계약방식이 한 국가의 임대차 계약의 주류라고 설명하면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전세를 영어로 표기할 때 ‘재벌’(chaebol), ‘갑질’(gapjil)처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전세’(jeonse)라고 쓴다.
전세제도 자체는 주택에 대한 임차계약이지만 동시에 임대인에게 비제도권의 주택구매자금 또는 무이자대출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196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서울과 대도시는 농촌으로부터 이주해 오는 인구로 인해 집이 부족했다. 지금은 한 주택에 한가구만 사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사는 사례가 흔했다. 그러다보니 한방에 3~4명이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주민들은 화장실도 아침마다 줄서서 이용해야 했다. 이 같은 거주 형태를 일명 ‘셋방살이’라고 했는데, 집주인은 방 하나 당 보증금을 얼마씩 책정해서 전세계약을 했다.
당시 세입자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집 구하기가 어려운데 소정의 보증금으로 방 한 칸이라도 구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고, 집주인은 자신의 집 한 켠을 빌려주면서 무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사채이자도 비쌌던 과거 상황에서 세입자 집주인 모두 ‘윈-윈’인 셈이었다.
점차 집 전체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전세제도가 옮겨갔지만, 이 역시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에게 유리했다. 세입자는 모아두었던 보증금을 활용해 무이자로 거주를 할 수 있어 월세를 사는 것보다는 전세가 저렴했고, 이렇게 아낀 돈으로 저축을 하면서 전세를 내 집 마련 전단계로 활용했다. 집주인은 일명 ‘전세를 끼고’ 사는 방식을 통해 집값의 전부를 지불하지 않고도 주택을 소유할 수 있었다. 소유하고 있는 집을 전세 줘서, 무이자로 대출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요즘은 이런 방식을 모두 ‘갭(gap)투자’라고 칭하는데, 사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전세 값이 주택가격의 50%정도 수준이라면, 전세금이 레버리지가 된 것은 맞으나 자기자본도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반면 갭투자는 주택구입자금의 대부분을 전세금으로 해결하고 자신이 부담하는 지분(equity)은 미미하거나 없는 경우에 속한다.
소위 ‘무(無) 갭투자’가 이루어지면 사실상 세입자의 자금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전세금이 구입자금보다 높아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전세금의 일부를 중개업자와 임대인이 나누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갭투자는 작금의 전세자기를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전세가 갭투자로 옮겨가게 된 시기는 과연 언제였고,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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