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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흐른 시간…GS그룹의 신사업 발굴 현장 [가봤어요]

제2회 GS그룹 해커톤 대회…“벽을 부숴라”
GS그룹이 마주한 문제 능동적으로 발굴
‘무거운’ GS의 변화…시작된 조직 혁신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11일 열린 ‘제2회 GS그룹 해커톤’ 대회 전경. 무박 2일간 신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상대성이론으로 규명된 법칙이다. 그러나 지구에 붙어 사는 인류가 이를 체감할 수 있는 건 ‘우주 현상’을 관측할 때를 제외하곤 극히 드물다.

11일 오전 10시부터 12일 정오까지.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보낸 하루는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했다. 물론 이 시간이 물리적으로 달랐단 의미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의 밀도가 평소보다 농밀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GS그룹 해커톤’ 대회에 참가한 약 300명이 한곳에 모여 몰두하는 분위기가 시간을 그렇게 느끼게 했다.

공간 역시 다르게 여겨졌다. 여기에 모인 이들의 관계가 그랬다. GS그룹 19개 계열사에서 모인 이들은 해커톤 대회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대회를 준비하며 온라인으로 두어 번 소통한 적은 있지만, 직접 머리를 맞댄 건 이 자리가 처음이다. 사실상 ‘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의 거리가, GS그룹 소속이란 공통점으로 묶여 빠르게 좁혀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계열사 벽 허물고 틀을 부숴라”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마라톤처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 특정한 목표를 단시간에 달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GS그룹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한 이번 해커톤의 주제로 ‘장벽을 깨다’(Break The Wall)를 내걸었다. 사업 관행이나 일하는 방식, 나아가 회사 간 장벽을 깨고 고객을 위한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 GS그룹 해커톤엔 19개 계열사에서 412명이 자발적으로 참가를 신청했고, 이 중 300명을 선발해 대회를 진행했다. 팀은 5인 1조로 꾸려졌다. ‘벽을 부숴라’란 주제에 맞게 모두 다른 계열사 직원들로 팀이 구성됐다.

서로 다른 업무를 수행하며 쌓은 각자의 역량과 관점을 한 공간에서 충돌시키고, 치열하게 논의해 ‘GS그룹 내 문제’를 정의하는 게 일차적 목표다. 12일 오후 5시까지 스스로 정의한 문제를 해결할 신규 서비스나 신사업 모델을 프로토타입(Prototype·상품화에 앞서 성능을 검증·개선하기 위해 간단히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으로 제작해 제출한다.

온라인에 올라간 60개 팀의 결과물은 GS그룹의 모든 직원이 확인할 수 있다. 직원들의 투표와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거쳐 상위 10팀을 선정한다. 상위 10개 팀은 다시 오는 6월 1일 결선을 치른다. 우승팀과 상위 10개 팀에게는 노트북·태블릿PC 등이 부상으로 지급된다.

무박 2일간 진행되는 본선 대회 현장은 ‘벽을 부숴라’라는 대회 취지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2022년 초 LG아트센터가 서울 마곡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생긴 빈 공간이 혁신을 발굴하려는 열기로 가득 찼다.

허서홍 ㈜GS 미래사업팀 부사장은 11일 제2회 GS그룹 해커톤의 개회사를 통해 “환경에 대한 투자가 되레 사업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며 “현재 GS그룹은 어떤 기업보다 기후 변화 기술에 관심이 많은 곳이고, 이를 통해 미래 사업에 대한 기회를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해커톤에서 좋은 신사업 모델이 나온다면 투자하겠다. GS그룹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자”며 웃었다.
허서홍 ㈜GS 미래사업팀 부사장이 11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열린 ‘제2회 GS그룹 해커톤’의 개회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정두용 기자]

무거운 GS?…“해커톤은 변화의 일환”

2004년 LG그룹에서 분사한 GS그룹의 주력 사업 분야는 에너지·유통·건설이다. 안정적인 사업 분야로 평가받지만, 이는 GS그룹이 상대적으로 무겁다는 대외 이미지가 만들어진 이유가 됐다. GS그룹의 조직적 분위기도 사업의 특성상 다소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GS그룹은 이 같은 지적을 외면하지 않았다. 무겁고 경직된 조직 분위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성장 저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변화를 이끌기 위한 혁신 조직도 구성했다. 2020년에 소규모 커뮤니티로 시작한 52g가 GS그룹 변화의 중심에 있다. 52g는 오픈이노베이션 GS(5pen 2nnovation GS)의 줄임말이다. ‘GS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혁신 조직’이란 뜻을 담고 있다. 52g가 만들고 있는 문화는 ㈜GS에서 시작해 각 계열사로 번지는 중이다. 사내 동아리처럼 시작한 52g는 현재 약 40명이 소속된 조직으로 확장됐다. 지주사는 물론 각 계열사에서 디지털전환·ESG 등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제2회 GS그룹 해커톤은 52g로부터 시작한 GS그룹의 변화가 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김진아 52g 선임매니저는 “GS그룹은 물론 일반적인 기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점’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같은 조직 문화를 탈피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가 해커톤 대회”라고 말했다.

소속과 상관없이 모인 60개 팀. 각자의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마주했던 현상을 공유하고, 함께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만으로도 조직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단 설명이다. 감춰진 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11일 열린 ‘제2회 GS그룹 해커톤’ 대회 전경. 무박 2일간 신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사진 신인섭 기자]

김 매니저는 “무박 2일만으론 사실 ‘완벽한 해결책’을 만들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를 짚어내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60개 팀이 찾은 60개 주제는 GS그룹이 보완해야 할 지점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해커톤에 참가한 이들이 약 30시간 치열하게 고민한 경험은 결국 그룹사 전반으로 퍼져 GS그룹이 변화하는 씨앗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52g는 이 때문에 이번 해커톤을 진행하며 ‘팀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52g는 팀 구성을 위해 오픈AI가 챗GPT를 만들 때 사용한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활용했다. 참가자의 ▲관심 분야 ▲해결하고 싶은 문제 ▲전공 ▲업무 성격 등의 데이터를 취합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구성원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팀 구성만큼이나 눈에 들어온 지점은 해결책에 접근하는 과정이었다. ▲사용자환경·경험(UI·UX) 디자이너 ▲개발자 ▲투자심사역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코치 등 약 30명의 전문가가 각 팀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맞춤형 상담을 진행했다.

시대적 변화에 맞춘 문제 발굴을 장려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프로토타입 결과물에 ▲대화형 AI ▲간편개발도구(No-code) ▲클라우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데이터분석 도구 등이 반영되면 가산점을 부여한다. 디지털전환이란 시대적 흐름에서 GS그룹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 셈이다. GS그룹은 디지털을 통한 빠른 문제 해결 방식을 지원하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디자인씽킹·노코드 코딩 등 실리콘밸리식 해커톤 방법론을 접할 수 있는 교육도 진행한 바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쏟아진 현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 구성과 전문가의 조언. 해커톤에 참가한 300명의 GS그룹 인재는 이 같은 환경에서 자유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발굴했다.

멘토로 참여한 장병준 노코드캠프 대표는 “GS그룹이 가진 자산에 디지털을 접목,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많았다”며 “특히 발전소 송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투리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를 디지털기술을 접목해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아이디어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홍석현 GS벤처스 투자심사역도 “귀농 인구가 많아지면서 농사에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 생기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발굴해 낸 팀이 인상적이었다”며 “GS건설의 역량을 활용해 스마트팜을 모듈화하는 식으로 해결책을 만들려는 시도가 현실화하려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조언을 건넸다”고 했다.

이 밖에도 ▲반려동물 ▲조직 문화 ▲친환경 ▲ESG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GS글로벌 소속의 한 참가자는 “계열사의 벽을 허물자, 알지 못했던 GS그룹의 자산들이 보였다”며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팀원이 짚어줬는데, 어떤 의미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경험이 본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11일 열린 ‘제2회 GS그룹 해커톤’ 대회에 참여한 ‘J에게’ 팀이 ESG를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두용 기자]

60개 팀 중 기자와 만난 ‘J에게’ 조는 GS그룹 전체적으로 ESG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발굴했다. 계열사 ESG 정보를 모아서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해결책으로 설정해 논의를 진행했다. 이 팀은 ▲GS EPS ▲GS건설 ▲GS글로벌 ▲GS리테일 ▲GS파워 소속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정재훈 GS리테일 직원은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논의하는 과정부터 팀원 모두 ESG란 공통 관심사를 찾아낼 수 있었고, 각 사가 추진하는 친환경 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사별로 성과를 낸 ESG 전략을 공유하는 식의 접근이 이뤄진다면 좋지 않겠느냔 점에 집중해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경만 GS건설 직원은 “본래 업무를 진행하며 동료들과 의견 교류가 잘 이뤄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해커톤은 실질적인 소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가감 없는 논의가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느꼈고, 이를 본래 업무에 적용하려면 어떤 점이 변화해야 하는지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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