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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혹은 동상이몽…‘우호적 행동주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지분 넘겨도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기도
라데팡스-한미약품 오너일가 등 대표사례
지배구조·재사업 재편 등 사실상 차이없어
“대주주 상대로 이자 장사하나” 비판도

한미약품그룹 오너가의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지난 5월 지분 인수 계획에 대해 ‘우호적 행동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진 한미약품]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이번 거래는 기업 경영인과 기업가치 증대를 위해 행동하는 재무적 투자자의 ‘우호적 행동주의(Friendly Engagement)’ 펀드로서 기업가치 극대화를 기대한다”

한미약품(128940)그룹 오너가의 지분 인수를 추진 중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지난 5월 지분 인수 계획을 밝히면서 ‘우호적 행동주의’라는 개념을 차용했다. 통상 행동주의펀드는 배당 확대, 이사회 교체 등 적극적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오너가 등 대주주를 압박하고 경영권에 위협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반면 우호적 행동주의는 대주주와 동행하면서도 회사의 사업 재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독특한 전략을 취한다. 국내에선 사례도 흔치 않다. 

쉽게 말하면 사모펀드와 대주주가 오랜 기간, 깊은 관계(Engagement)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지분을 넘긴 후에도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는 등 우호 세력으로 공생하는 형태다. 통상 사모펀드 운용사는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인수하는 바이아웃(경영권 거래) 전략을 추구하거나 소수 지분 투자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FI)로 합류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우호적 행동주의의 경우 그 중간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모펀드는 사업·지배구조 재편과 재무전략에 의견을 제시하는 구조여서다. 

라데팡스와 한미약품그룹의 지분 거래 계획을 보면 우호적 행동주의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라데팡스는 지난달 2일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이 보유한 지분 한미사이언스 지분 11.78%(438만1590주)를 32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SPA)을 체결했는데, 이달 중 프로젝트 펀드 결성을 마무리해 딜을 종료할 계획이다. 

거래가 완료되면 라데팡스는 새로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송 회장 지분율이 기존 11.66%에서 2.6%로 줄어들면서다. 거래에 참여한 임주현 사장 지분은 10.2%에서 7.4%로 줄고, 차남 임종훈 사장(10.56%), 장남 임종윤 사장(9.91%) 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 라데팡스가 최대주주에 오르는 구조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사모펀드의 경영권 인수와 같은 구조로 보이지만, 양 측이 체결한 경영권 공동보유약정이 변수가 됐다. 라데팡스는 SPA를 체결하면서 공동보유약정을 체결하고 의결권도 공유하기로 했다. 추후 경영권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조를 한 셈이다. 라데팡스 측 역시 “이번 지분 투자는 통상적인 행동주의 투자와는 전혀 다르다”며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와 한미약품 대주주와의 오래된 신뢰 관계를 기초로 이번 거래가 이뤄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에서 희박했던 개념이라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도 나온다. 무엇보다 라데팡스는 기관 투자자(LP)들의 자금을 출자받는 운용사로서 향후 엑시트(자금 회수)는 필수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라데팡스는 내부수익률(IRR) 2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 사업 재편 등 체질 개선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라데팡스는 2021년부터 한미약품그룹 자문을 맡으면서 회사 내외부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 라데팡스는 지난해 이번 딜을 추진하면서 송 회장에게 오너를 보좌하는 독립조직인 전략기획실 신설을 제안했고, 삼성전자 출신인 배경태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의 합류를 이끌었다. 배 부회장은 현재 전략기획실에서 재무·기획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그밖에도 라데팡스 추천 인사 다수가 전략기획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사모펀드가 대주주를 상대로 이자 장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너 일가의 상속세 재원을 빌려주는 대신 높은 금리의 이자를 챙기면서 추후 엑시트를 위한 발판도 마련할 수 있는 구색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우호적 행동주의라고 하지만 결국 일반적인 주주 행동주의랑 다른게 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20년 8월 고(故) 임성기 회장의 타계 이후 송 회장과 삼남매는 임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9%를 상속받은 바 있다. 이들은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5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 중인데, 상속세 규모는 송 회장 2000억원, 세 자녀가 각 1000억원 등 총 5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번 지분 거래 역시 상속세 재원 마련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송 회장과 삼남매가 상속을 받은 2021년 당시 2~3%대였던 주식담보대출 이자율은 올해 6%대로 뛰었다. 이들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기존에 받은 5000억원 규모 주담대 중 올해 상반기에 3550억원 어치의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서 이번 지분 거래가 사실상 대출 상품 갈아타기인 ‘대환 대출’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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