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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넘겼지만 경영권은 그대로…한미약품과 라데팡스의 기묘한 동거

한미 최대주주 등극한 라데팡스
공동보유약정 통해 송 회장 경영권 유지
경영참여형·재무적투자자 중간 성격
“통상적 행동주의 아냐…사업 재편 예정”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인수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다만 기존 최대주주인 송영숙 회장은 공동보유약정을 통해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한미약품(128940)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11.8%를 인수하며 새롭게 최대주주에 올랐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송영숙 회장 지분율은 11.66%에서 2.6%로 낮아지지만, 공동보유약정을 통해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라데팡스는 향후 한미약품그룹의 사업재편에 나서는 한편 ‘한미약품 2세’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9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라데팡스는 지난 2일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이 보유한 지분 11.78%(438만1590주)를 32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SPA)을 체결했다. 라데팡스와 라데팡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코러스유한회사가 각각 6.26%(438만1590주), 5.52%(380만527주)를 인수한다. 이달중 프로젝트 펀드 결성을 마무리 짓고 거래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거래가 완료되면 송영숙 회장 지분율은 11.66%에서 2.6%로, 임주현 사장 지분은 10.2%에서 7.4%로 줄어들어 라데팡스가 최대주주에 등극하게 된다. 다만 경영권 공동보유약정을 통해 송 회장의 경영권은 유지될 전망이다. 라데팡스 측은 “송 회장의 백기사이자 조력자로서 법률적으로 명확한 공동보유약정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통상 사모펀드 운용사는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인수하는 바이아웃(Buy-out) 전략을 추구하거나 소수 지분 투자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FI)로 합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번 거래는 일종의 공생 형태여서 업계에서도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기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모펀드는 사업·지배구조 재편과 재무전략에 의견을 제시하는 구조다. 

이같은 구조에 대해 라데팡스는 ‘프렌들리 인게이지먼트 펀드(Friendly Engagement Fund·우호적 행동주의 펀드)’의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경영권을 가져가는 경영참여형 펀드와 투자금만 대는 FI의 중간 개념이다. 실제 라데팡스는 SPA를 체결하면서 공동보유약정을 맺고 의결권도 공유하기로 했다. 추후 경영권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드물지만 과거에도 사모펀드와 경영진의 공생을 추구한 사례는 있었다. 2015년 티켓몬스터(티몬)은 모회사인 미국 그루폰에서 독립하면서 콜버스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코리아 등 KKR컨소시엄에 지분 51%을 넘겼지만, 경영권은 기존 신현성 대표가 그대로 가져갔다. 

2012년 웅진그룹은 당시 웅진코웨이를 KTB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당시 최종 매각처가 MBK파트너스로 결정되면서 지분과 경영권이 모두 넘어가긴 했지만, 2019년 웅진그룹은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손잡고 코웨이 경영권을 다시 사들인 바 있다. 

일각에선 라데팡스가 행동주의펀드로 이름을 알린 KCGI 출신이라는 점에서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또다시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21년 라데팡스를 설립한 김남규 대표는 KCGI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한진칼의 3자 연합을 주도했다. 신민석 라데팡스 부대표 역시 KCGI 출신이다. 

라데팡스 측은 이에 대해 “이번 지분 투자는 통상적인 행동주의 투자와는 전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이어 “가족간에 충분히 협의됐고, 가족간에 이견은 없다”며 “라데팡스를 선정한 배경은 대주주와 김남규 대표 간 오래된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다. 김 대표가 가지고 있는 산업과 금융에 대한 경험을 통해 한미약품그룹이 지배구조 재편과 신성장동력에 대한 전략적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사이언스의 개별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의 협의 및 협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라데팡스 관계자는 “신동국 회장은 송영숙 회장과의 오랜 인연으로 최대 우호 투자자”라며 “송 회장과 체결한 공동보유약정을 통해 신 회장을 포함한 모든 주주와 협의 및 협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지분 거래로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전망이다. 현재 한미약품그룹은 고(故) 임성기 회장의 별세 후 송 회장과 임주현·종훈·종윤 삼남매가 임 회장 보유 지분 34.29% 가운데 일부를 각각 분할 상속했다. 송 회장의 상속세는 약 2000억원, 삼남매는 각각 1000억원 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데팡스 관계자는 “향후 송 회장과 협의 하에 추가적인 사업 인수와 통폐합을 포함한 사업재편에 나설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은 그룹 내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주요주주들과 이사회 등에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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