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표 갈치’, ‘마트표 과자’ 한번에...전통시장서 원스톱 쇼핑
[마트와 전통시장 ‘공존법칙’] 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2030 고객 유입
과일·수산물·건어물 등 판매 제외...‘윈윈’ 구조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한 팀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주변지역이 노후되고 상권도 축소돼서 빈 점포들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장 보러 오는 주부들뿐 아니라 젊은 남녀 고객들까지 찾아오는 장소가 됐죠. (웃음)”
과거부터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가깝지만, 먼 사이로 여겨졌다. 유통과 소비 흐름의 변화가 두 업태를 멀어지게 한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이 관계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대형마트들은 ‘전통시장 생존’이라는 명목 아래 2010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따라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보호구역에 3000㎡(907.5평) 규모 이상의 마트를 추가 출점할 수 없다. 또 매월 두 번은 문을 닫아야 하고 밤 12시 이후에는 어떤 영업활동도 할 수 없어 온라인 배송도 불가하다.
하지만 전통시장 관계자들은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고객을 유입시켜 시장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신관 2층에는 시장 상인의 요청에 문을 열게 된 ‘노브랜드 경동시장점’이 자리 잡고 있다. 노브랜드 경동시장점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동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상생스토어 사업 개발을 시작해 최종 모델로 낙점됐다. 기존 시장 상인들이 팔고 있는 과일, 수산물, 건어물 품목은 제외하고 가공식품 등 시장 내 구하기 어려운 상품들로만 꾸려졌다. 상품 생산업체의 70%가 중소기업으로 상생스토어가 지닌 의도와도 통했다.
박재학 이마트 경동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매장 점주는 “오픈 초기에는 시장 내 위치한 대형마트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의 순수성부터 오해받는 일이 허다했다”며 지금은 노브랜드 점포가 있어 2030세대의 새로운 젊은층 고객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브랜드 경동시장점에는 상인들과 고객들이 놀다 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매장 위층으로 올라가면 바리스타 교육, 매장 운영 컨설팅 지원 등 스타벅스가 운영하는 재능기부 카페 ‘숲’ (66㎡, 19.96평), 동대문구의 도움으로 약 2000권을 기증받아 운영하는 어린이 도서관 ‘작은 도서관’(208㎡, 62.92평)과 어린 자녀가 있는 고객 유치를 위한 신세계 이마트 어린이 희망 놀이터(155㎡, 46.88평) 등이 있다.
마트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고객들의 ‘시간을 사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비대면 소비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시장으로 끌어내려는 고민을 해결한 아이디어다.
“시장에서 마트 장보고, 쉼터까지 이용”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거주하는 김 모씨(38세)는 “매주 시장에 올 때마다 (상생스토어를) 꼭 들리는 편”이라며 “시장에 없는 물건도 사고 아이들이 잠시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고, 그 옆에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한두 시간은 더 머물다 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존한 지 약 5년 여. 성과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생스토어 오픈 전 경동시장은 방문자의 50%가량이 60대 이상으로 방문 소비자들의 고령화 현상이 뚜렷했다. 신관의 경우 공실률이 60%에 달할 만큼 영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었지만 오픈 초기 상생스토어가 들어선 2층 상인들의 매출이 평균적으로 20%가량 증가했다.
특히 장난감 놀이터 바로 옆에 위치한 미용실은 월 매출이 50%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전인 2018년 건물 2층에 함께 들어선 어린이 놀이터의 경우, 5월에는 총 이용 어린이 577명, 6월에는 931명으로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숫자는 60% 이상 증가했다.
“‘윈-윈’하는 선순환 구조 목표”
7월에는 총 이용 어린이가 996명까지 2개월 만에 70% 이상 늘었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20·30대 젊은 고객이 70%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2층 도서관(동대문구청 운영)도 코로나 전 월 대출 건수가 500여건에 달할 정도로, 절반가량이 공실이었던 2층에 신규 고객들이 모이며 활력이 높아졌다. 이마트 측은 전통시장과 노브랜드의 상생의 관점하에 많은 소비자들이 모여들어 전통시장과 노브랜드 모두 ‘윈-윈(Winwin)’할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전통시장 내부에 입점해 상가나 쇼핑몰에 고객을 끌어모으는 핵심 점포인 앵커테넌트(Anchor Tenant)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시장 내 젊은 고객, 아이가 있는 부부 등 신규고객 창출 및 재방문 유도를 통한 시장활성화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업계는 전통시장과 함께 상생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발성 사회공헌 차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이란 설명이다.
전문가들 역시 진정한 상생을 위해서는 주고 나면 끝나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미래를 공유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방법이 협력업체의 기술과 대형마트의 노하우를 활용해 상품 공동 기획·개발하는 방식”이라며 “협력사 및 전통시장 상인의 애로에 공감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역량향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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