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 생의 첫 차’…이젠 “경차를 왜 사나요?”
[경차의 종말]①
신차 부진에 다시 고꾸라진 경차 시장
높아진 가격·큰 차 선호도 상승 등 원인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 중인 직장인 강모씨(32세·남)는 최근 보유 중이던 경차를 처분했다. 그는 아내, 반려견과 함께 주말마다 나들이 떠나는 게 삶의 즐거움이다. 강 씨는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돈이 없어 경차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한두 해가 지나니 불편함이 많았다”면서 “준중형 세단으로 갈아탔는데, 삶의 질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인천시 계양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임모씨(34·남)는 기아 레이와 현대차 아반떼를 고민하던 중 아반떼를 선택했다. 옵션이 어느 정도 있는 경차보다 ‘깡통 모델’(최하위 옵션 모델) 세단을 타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 씨는 “결혼 이후까지 생각했다”고 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경형승용차를 외면하고 있다. 높아진 가격과 부족한 제품 라인업, 경쟁력 없는 상품성 등으로 경차를 구매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대형차 선호도까지 증가하면서 경차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또다시 주저앉은 경차 시장
지난 2012년 연간 판매 대수가 20만대를 넘어선 경차 판매량이 10년 만에 반 토막 났다. 한때 ‘내 생의 첫 차’로 사랑받던 경차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2019년 11만대를 웃돌던 경차 연간 판매 대수는 2020년 9만여 대로 떨어졌다. 이듬해(2021년)에도 하락세를 이어간 국내 경차 시장은 2021년 9월 등장한 현대자동차 캐스퍼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캐스퍼는 문재인 정부 시절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탄생한 국내 최초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다.
그동안 없던 차종의 등장은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캐스퍼는 지난해 4만8002대가 팔리며 국내 시판된 경차 중 가장 많은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민 경차 기아 모닝은 2만9380대, 레이는 4만4566대가 팔렸다. 국내 경차 시장은 캐스퍼의 흥행에 힘입어 회복세로 전환됐다. 최근 5년(2018~2022년) 내 가장 많은 13만2911대가 팔렸다.
캐스퍼 등장 직전 연간 판매 대수가 9만대 수준으로 떨어질 때만 하더라도 업계에선 ‘경차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캐스퍼의 성공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도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과거 전성기 시절인 연간 20만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번졌다.
아쉽게도 이 같은 기대감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캐스퍼에 대한 관심이 예상보다 빨리 식은 탓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캐스퍼의 국내 판매 대수는 2만866대로 전년 동기 2만3200대와 비교해 10.1% 감소했다.
결국 현대차는 캐스퍼 살리기에 나선 상황이다. 현대차는 ▲중고차 잔가 케어(3년 이내 중고차 처분 시 중고차 잔가 보장) ▲차량 사고 케어(출고 1년 이내 차대차 사고 시 신차 교환) ▲운전 연수 지원(운전연수 매칭 서비스) ▲0.9% 초저금리 이벤트 등 각종 혜택을 내걸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반응이 예년 같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싸고 작은 차는 매력 없다
캐스퍼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급 차종인 모닝, 스파크 등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모닝의 국내 판매 실적은 올해 상반기 기준 1만2900대로, 전년 동기 1만4255대와 비교해 9.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스파크 판매 대수는 1419대로 전년 동기 5740대보다 75.3% 줄었다. 더욱이 스파크는 지난 4월을 끝으로 단종됐다.
경차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쟁력 없는 가격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경차의 크기가 커지면서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측면이 있다. 가격 또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과거 경차는 배기량(1000cc)과 맞물려 1000만원짜리 차로 불렸지만, 현재는 기본 가격이 1300만원부터 시작한다. 옵션을 추가하면 판매 가격은 2000만원에 육박한다. 이는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소형 SUV XM3(2000만원대), 현대차 아반떼(1900만원대) 기본 모델과 유사한 수준이다.
여기에 수익성 확보를 위해 큰 차 제작에 집중하는 제조사, 이로 인해 큰 차를 선호하게 된 소비자들도 경차 시장의 위축을 부추기도 있다. 이 교수는 또 “이는 전 세계 트렌드이기도 하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수익성을 고려해 차급을 계속 키우고 있다”고 했다.
최근들어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은 소형 세단 및 해치백 등을 단종하고, 중형급 이상의 SUV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도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최다 판매 대수를 기록한 차급은 중형급(38만9305대) 모델이다. 이어 준중형급(38만7368대), 대형(21만1818대) 순이다.
기술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기술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차는 하이브리드차보다 연비가 안 좋은 데 무슨 혜택을 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국내 시판된 경차의 복합 연비는 15km/L 수준이다. 하이브리드차는 18km/L 내외로 연료 효율이 훨씬 더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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