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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감정평가법인, ‘실적 평가 방식’ 두고 도마 위

조합원 재직 중인 감정평가업체 입찰
업체 선정 후 조합원은 조합임원 승격
정비업계 “감정평가사 정비사업 비리 관리 강화해야”

2월 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 일대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최근 전세사기 주요 수법 가운데 하나로 꼽힌 감정평가사의 ‘감정가 부풀리기’가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도 팽배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세사기뿐 아니라 정비사업에서도 감정평가사들의 부조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의 한 재건축 사업지에서는 국내 최대 감정평가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A감정평가법인의 감정평가사가 사업실적을 부풀려 입찰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A감정평가법인이 해당 조합의 입찰 지침에 따른 실적이 아닌 제멋대로 부풀린 실적으로 입찰을 따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조합은 2020년 4월 감정평가사 선정 입찰을 실시하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시행한 2003년 7월 1월 이후 종전·종후 평가 업무수행 실적’을 제출하는 조건으로 입찰을 진행했다. 같은 해 A감정평가법인은 참여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업실적을 제출해 해당 사업지의 1위 감정평가업체로 선정됐다.

A감정평가법인과 경쟁업체가 감정평가업체 선정 입찰과 관련해 재건축 사업지에 제출한 사업실적 비교표. [제공 독자]


A감정평가법인의 ‘실적 부풀리기’ 의혹은 입찰 마감 후 서류 개찰 과정에서 비슷한 시기 감정평가업체 선정 입찰을 진행한 다른 업체의 사업 실적과 차이를 보이면서 시작됐다.

A감정평가법인이 두 재건축사업 입찰에 제출한 사업실적을 살펴보면, 이 업체의 전체 재건축사업 수행실적은 1081건, 도정법 시행 이후 종전·종후평가 업무수행 실적은 1029건으로 실적 차이는 52건에 그쳤다. 경쟁 감정평가업체의 전체 재건축 사업수행 실적(1202건)과 도정법 시행 이후 종전·종후평가 업무수행실적(807건) 차는 395건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A감정평가법인의 종전자산 감정평가·종후자산 감정평가 실적이 최소 300건 이상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체 실적이 많더라도 종전·종후평가 업무수행실적은 더 깐깐한 기준이기 때문에 많이 줄어야 하는데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실적을 부풀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A감정평가법인은 수십년의 긴 업력을 쌓은 곳인 만큼 정비사업에서도 많은 실적을 자랑하기 때문에 실적을 부풀릴 경우 업계에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도정법과 국토부 유권해석, 조합의 입찰지침서 등을 종합하면 종전평가 실적은 출자자산과 관리처분 시 감정평가 실적을, 종후평가 실적은 관리처분 시만의 감정평가 실적을 명백히 정의하고 있다”면서도 “A감정평가법인이 사업 수주를 위해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풀린 것”이라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감정평가 실적을 부풀릴 경우 조합의 지침 제11조 3항에서 입찰 무효로 정의하는 ‘평가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 변조, 허위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작성해 제출한 업체’에 해당한다.

반면 A감정평가법인은 일각에서 제기한 실적 부풀리기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해당 재건축 조합이 제시한 입찰지침서를 기반으로 주어진 절차와 양식에 충실하게 작성해 입찰에 참여한 결과 감정평가업체로 선정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A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입찰지침서의 용역업무 수행실적을 준비하면서 종전‧종후 자산 평가업무 수행 실적의 범위가 넓은의미(광의)인지 좁은의미(협의)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를 재건축 조합에 문의했다”며 “조합에서는 재건축 관리처분계획 수립을 위한 종전자산, 종후자산뿐 아니라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면서 실시하는 감정평가 항목들(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을 위한 용도폐지, 신규 정비기반시설 감정평가, 법인세 과표산정을 위한 출자자산 감정평가, 기타 현금청산 감정평가 등)을 포함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건축 조합은 해당 지자체에 감정평가 입찰 진행에 대한 실태 조사를 의뢰했다. 해당 지자체의 주거정비팀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내부 결제를 받고, 점검단을 꾸리기 위해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가를 섭외하고 있는 중”이라며 “한달 정도 후에 본격적으로 점검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감정업체 선정' 입찰 참여에 조합 운영 개입까지

감정평가사의 정비사업 비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B감정평가법인의 감정평가사가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는 재건축단지 감정업체 선정 입찰에 참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해당 조합의 임원으로 조합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평가사법 25조 2항에는 감정평가법인 등은 자기 또는 친족 소유, 그밖에 불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토지 등에 대해서는 그 업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인의 설립인가를 취소하거나 2년 이내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B감정평가법인은 앞서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사업지에서도 정비사업전문관리 업무를 수행하면서 감정평가 업체 선정입찰에 참여를 시도하다가 불공정 민원이 쏟아지면서 입찰 자체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이에 정비업계에서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 사업지에서도 감정평가사에 대한 관계당국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세사기에 연루된 감정평가사들에게는 영구퇴출이라는 첫 중징계가 내려지고 관련 법령 강화가 추진되고 있다”면서도 “정비사업 입찰비리와 관련해서는 관리·감독과 처벌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해이는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조합원과 그 가족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감정평가사는 특정 개인의 재산뿐 아니라 사회성과 공공성이 큰 재화인 부동산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이해 조절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 자격사로 높은 도덕성과 직업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금지사항도 마땅히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공공 정비사업의 경우 한번 감정평가업체로 선정이 되면 해당 지자체의 다음 사업에는 마이너스(-) 점수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재가 가능한데, 민간 정비사업은 각 사업마다 1회성이기 때문에 이같은 제재가 어렵다”면서도 “업력, 업무 실적이 많은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정 수준의 실적을 보유하면 입찰 참여가 가능하도록 허들을 낮춰야 업력이 오래된 업체의 독점 체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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