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고장 안동에서 만난 ‘수졸당 유두차사’…가족의 안녕을 위한 제사 [E-트래블]
퇴계 이황의 방계 종택 ‘수졸당’… 경북도 민속자료 제130호로 지정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종부 앞에 ‘제알못’(제사 알지 못하는) 기자는 주눅이 든다. 종부의 설명은 외래어처럼 들려 남의 얘기나 진배없는지라, 눈치를 보다 그 뜻을 물어보니 돌아오는 것은 헛웃음뿐이다. 종부의 낯빛은 회초리보다 매서웠다. ‘앗~ 뜨거워.’
예의 고장 안동에선 치이는 게 종부라는 데, 풍상을 이겨낸 이리도 엄혹한 종부가 예의범절을 강조하니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날도 푹푹 찌는 마당에, 낯부끄러워 식은땀이 났고 폭염에 진땀까지 범벅이 됐다.
최근 안동을 찾은 이유는 ‘수졸당 유두차사’를 취재하기 위함이다. 앞서 기자가 치도곤을 치른 일은 이 댁의 종부에 의함이 아님을 밝힌다. 이날 제사상을 준비한 종부는 하도 바빠서 유두차사에 앞서 만날 시간도 내어줄 형편이 아니었다.
고루한 누옥 ‘수졸당’?…알면 보인다
지난 1일 안동 도산면 하계마을의 수졸당 종택은 유두차사로 분주했다. 유두차사를 보기 위해 방문한 탐방객은 그늘을 찾아 대청마루에 참새 떼처럼 모여들었다. 너무 더운 탓이다. 이 날씨에 군소리 없이 그 제사상을 준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종갓집 사람들이 경외롭기까지 했다. 뼈대 있는 가문의 품격이 느껴졌다.
수졸당은 퇴계 이황(1502~1571)의 방계 종택이다. 퇴계의 셋째 손자인 동암 이영도(1559-1637) 선생의 ‘동암종택’으로, ‘수졸당’이라고도 불리는 데 동암종택의 오른쪽 작은 기와집이다. 수졸당은 ㅁ자형 본채와 정자·사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재사는 대문채와 본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후손들이 이영도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사(齋舍)다. 수졸당 본채는 17세기에, 재사는 18세기에 지어졌다.
애초 수졸당은 현 위치에서 낙동강 쪽으로 100m가량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안동댐을 만들면서 1975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이영도는 임진왜란 때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면서 군량미도 조달했다. 앞서 수졸당은 이영도의 아들 이기(1591~1654)의 호 ‘수졸’에서 따왔다. 수졸은 ‘항상 겸손하고, 고개를 숙여라, 나서지 말라’는 의미다. 택호 동암종택과 자호에서 따온 수졸당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졸당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면서 그리 칭해졌다. 수졸당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130호로 지정됐다.
민망한 이름 ‘유두차사’?…보면 끄덕인다
유두차사는 유둣날, 그러니까 음력 6월15일 복중에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따온 말이다. 폭염을 머리 감기로 이겨내자는 뜻인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로 이어졌다. 제사상에는 한여름 수확한 곡식과 잘 익은 과일이 올려지고, 술이 아닌 차로 치러진 데서 유래한다. 차례(茶禮)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과거 제사상의 중심은 차였다. 하지만 요즘은 술이 올려진다. 여기 제사를 친견하려는 이유는 밥 대신 국수가 제삿밥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동이라도 국수로 제사를 올리는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종가는 많지 않다. 손이 많이 가는 탓이다. 퇴계 직계 종택도 이젠 판매되는 국수로 올린단다. 세월은 변했고, 종부의 수고를 고려해 제사도 간단히 모셔지는 게 요즘 추세다.
이에 반해 수졸당은 여전히 고수한다. 그 대신 집안 행사였던 유두차사를 지난 2021년부터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문중의 어른만 참여하던 제사에, 어린 손자도 제사를 거들게 했다. 탐방객이 본채 안으로 들어와 제사상을 들여다보는 일도 허락했다. “여러분 덕에 시집온 지 30년 만에 제사상을 다 보네요.” 재사를 돌아보던 중 들려온 한 마디다. 이 덕에 집안 여인들도 제사상을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관습이 박제화되는 것을 막고자 한 통 큰 결정이다.
초라한 밥상 ‘건진국수’?…맛보기 어렵다
전통적인 제사는 제철 재료로 수박·사과·참외·옥수수 등이 오르는데, 국수는 이 시기 타작한 밀로 만든 것이라 제철 제사 재료다. 찬물에 씻어 건진 국수가 ‘안동건진국수’다.
수졸당 윤은숙 종부는 “안동의 건진국수는 반죽을 밀가루와 콩가루를 3대 1로 섞어 말랑한 상태에서 2~3시간 숙성시킨다. 숙성된 반죽은 홍두깨로 밀어서 얇게 해야 하는데, 한지에 쓴 글씨가 훤히 비치도록 미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차갑게 식힌 육수에 면을 부어 자작하게 잠기도록 해 먹는 게 특징이다. 지금은 양지머리나 닭고기로 국물을 내지만 몇십 년 전 만 해도 낙동강에서 잡아 올린 은어로 육수를 우렸단다.
국졸당의 국수는 가늘게 밀고 채 쳐져 소면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사각의 면에 정성이 꽉 차 있다. 면 위에는 고기·애호박·계란지단·참깨 등으로 양념한 꾸미(경상도식 양념)가 올려졌다. 예부터 이어져 온 제사의 전통을 지키려는 이 댁의 노력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뙤약볕에서 홍두깨로 국수 밀고 칼로 썰고 제사 지내고… 지금 생각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영원한 신위 ‘불천위’…돈 줘도 못산다
유교식으로 제사는 사대봉사(四代奉祀)가 기본이다.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다. 예외적으로 큰 공을 세운 조상은 계속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가 된다. 사자(死者)의 신위를 4대 봉사가 끝난 뒤에도 없애지 않고 계속 봉사하는 신위를 뜻한다. 퇴계가 이에 해당한다. 국불천위는 신라 설총을 비롯해 18위 밖에 없다.
불천위에는 국가적으로 지정한 ‘국(國)불천위’와 지역유림의 추대로 결정되는 ‘향(鄕)불천위’와 문중에서 뜻을 모아 정한 ‘사(私)불천위’도 있다. 수졸당은 불천위 조상이 두 명 이상인 경우다. 퇴계와 그의 손자인 이영도가 그들이다.
이날 제사상이 여섯 상인 이유다. 두 상의 불천위와 4대 봉사의 제사상이다. 마침 수졸당 뒷산에는 퇴계, 앞산에는 이영도의 묘소가 있어 두 사람의 묘제를 이곳 재사에서 모시는 의의도 남다르다.
퇴계도 일곱 형제 중 막내였다. 일반적으로 종가 10대(代) 이상의 조상을 모시고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이어야 한다. 장남이 아님에도 퇴계가 종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죽은 뒤 불천위 조상으로 추대돼 새로운 문중을 결성할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다. 퇴계의 셋째 손자인 이영도 역시 종가가 된 이유는 이 덕이다.
현재 수졸당에서는 ‘고택’에서의 하룻밤 체험을 운영 중이다. 최고 가문의 기가 이곳에 차고 넘치지 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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