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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연구가 곧 유전 연구…제도와 규제 개선 필요”

[생로병사 마지막 퍼즐 Y염색체] ④ 최정민 고려대 의과학과 교수 인터뷰
Y염색체 염기서열 해독, 유전자 분석 기술 개발 덕분
유전자 특성 분석 하려면…정확한 해독 데이터 필요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희귀질환의 대다수는 유전성 질환이다. 80%가량의 희귀질환이 유전성 질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유전자 분석이 새로운 치료의 길을 여는 희망이 되는 이유다. 유전자 분석은 환자가 병명을 진단받기도, 적절한 치료제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의 질환이 왜 발병했는지 알려주는 지침이 된다.

지난 10월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있는 고려대 제1의학관에서 만난 최정민 고려대 의과학과 교수는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환자의 수가 많지 않은 희소한 질환”이라며 “환자의 대다수가 질환의 원인을 모르는 것은 물론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거나 치료 방법 등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런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 유전자 분석이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20여 년 전 첫 유전체 지도가 나왔고, 이후 유전자의 기능과 특성을 알아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알아내기 위해 전장 유전체 해독(WGS) 기술이 쓰인다. WGS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방법으로, 생물의 염기서열 전체를 온전히 해독한다.

최 교수는 “지난 8월 Y염색체의 염기서열이 해독된 것도 최근 들어 유전자 분석 기술이 새롭게 개발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는 1000개의 염기쌍을 읽었다면 이제는 수백만개의 염기쌍을 읽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반복 구간이 많은 Y염색체도 한 번에 해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희귀질환 알아야 유전자도 안다”

Y염색체는 23쌍의 염색체 중에서도 분석하기 까다로운 염색체로 꼽혔다. 겹치거나 반복되는 구간이 많아 기존의 기술로는 해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Y염색체의 염기서열이 해독된 만큼, 다른 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 교수는 특히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에 주목하고 있다.

최 교수는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의 수가 많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는 희귀질환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며 “암이나 치매 등 다른 질환의 치료제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연구비용과 연구 인프라는 다른 질환과 비교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희귀질환을 연구하면 특정 유전자의 다양한 특성을 밝혀낼 수 있다”며 “희귀질환은 보통 단일 유전자, 쉽게 말해 하나의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질환이 발생하기 때문에,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것이 곧 유전자를 연구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유전자 분석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이 기술이 적용될 희귀질환 분야도 넓다. 사람의 세포에는 2만여 개의 유전자가 들어있는데 여기에서 4000개 유전자의 유전자형 상관관계만 밝혀진 것이 대표적이다. 유전자는 눈과 코, 입 등 얼굴의 모양과 색, 키, 체형 등 표현형(Phenotype)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표현형은 유전자가 상호작용해 만들어진 여러 특성을 말한다. 문제는 유전자형(Genotype)에 따른 표현형이 밝혀진 것은 일부라는 점이다.

최 교수는 “표현형은 사람의 생김새 등은 물론 여러 증상과 질환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며 “유전자를 잘 이해한다면 이런 질환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단초를 마련하는 셈”이라고 했다. 또한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것이 곧 유전자의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는 일”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희귀질환 연구를 위한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역설했다.

“질 좋은 데이터가 핵심…연구 환경도 중요”

정부는 국내 유전 분야 연구가 발전할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바이오뱅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방의학과 맞춤형 의학이 중요해지면서 희귀질환을 진단하고 유전질환을 예측하는 데 바이오뱅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바이오뱅크는 사람의 유전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질병을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데 쓰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바이오뱅크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사업을 통해 50만명의 유전정보를 수집했다. 미국은 올 오브 어스(All of Us) 사업을 오는 2026년까지 수행해 100만명의 유전정보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내 국가들도 수십만명 규모의 유전체 분석을 추진해 맞춤형 의료 인프라 구축에 한발 다가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오는 2024년부터 2032년까지 한국인의 유전정보를 본격적으로 수집·분석할 계획이다. 희귀질환 환자도 이 바이오뱅크에 자신의 유전정보를 등록할 대상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희귀질환 환자 4만7000명을 포함해 국민 100만명의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목표다.

최 교수는 “바이오뱅크를 통해 구축한 질 좋은 데이터를 연구자가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R&D) 빅데이터 사업들은 데이터를 수집했을 뿐, 실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 바이오뱅크 사업도 의료와 연구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바이오뱅크 시범사업에서 2만5000여 명에 대한 WGS 분석을 진행했고, 이 중 1만5000여 명은 희귀질환 환자”라며 “2만5000명을 대상으로도 간신히 유전자 분석을 했고, 클라우드 컴퓨팅 등 분석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사실상 분석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생명윤리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제도로 인해 좋은 데이터를 구축하고도 유전 분야 연구자들이 이를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제도와 규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바이오뱅크는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종에 따라 유전자의 다양성이 달라서다. 최 교수는 “한국인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유전자 해독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유전자의 다양성이 가장 높고 유럽과 아시아는 그렇지 않듯이, 지역에 따라 돌연변이의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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