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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바뀌면 세상도 변화…신년사로 본 산업·유통가 ‘현재와 미래’

‘본원 경쟁력’ 강조한 삼성전자, 반도체·AI 도약 추진…초격차 속도
10대 그룹, 위기보단 ‘성장’에 집중…유통가 ‘저성장 탈출’ 과제 지목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가 지난 1월 2일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디지털 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2024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이혜리 기자]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 되도록 하자.”(2023년)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추진하자.”(2024년)

국내 최대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신년사다. 한종희 대표이사(부회장)와 경계현 대표이사(사장) 공동명의로 발표된 신년사 메시지만 보더라도 회사의 변화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2023년을 ‘신(新)환경경영전략의 원년’이라고 선언했던 삼성전자는 최근 1년간 다양한 제품에 친환경 기술을 접목해 왔다.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과 같은 소재를 스마트폰 제작에 적용하거나, 친환경 냉매를 사용하는 냉난방 시스템(EHS) 제품을 고도화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세계적으로 거세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강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단 전략을 차근히 실현해 낸 결과다.

신년사는 이같이 ‘앞으로의 1년’을 엿볼 수 있는 메시지로 꼽힌다.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신년사에서 ‘초격차 기술’ 강화를 내세운 점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역대급 반도체 불황에 실적이 곤두박질친 삼성전자가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다는 점만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반도체 사업과 관련해 “경쟁사와의 격차 확대를 넘어 업계 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자”고 당부했다. 최근 전자·IT 업계 최대 화두에 오른 인공지능(AI)과 관련해선 “생성형 AI를 적용해 디바이스 사용 경험을 혁신하는 것은 물론, 업무에도 적극 활용해 일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가자”고 말했다.

신년사에 묻어난 韓 산업계 변화

기업이 바뀌면 세상이 변화한단 말이 있다. 기업에서 만들어 내는 상품을 통해 경제적 가치가 창출되는 것은 물론, 제품·서비스를 사용하며 개인의 삶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변화는 최고경영자(CEO)로 대변되는 의사결정권자들이 이끈다. 이들이 어떤 사업을 선택하고 집중하는지에 따라, 좁게는 기업의 생존이 넓게는 세상의 변화가 정해지는 셈이다. 국내 산업계를 이끄는 10대 그룹의 신년사는 그래서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지표가 되곤 한다.

10대 그룹을 이끄는 이들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성장·세계·미래’를 강조했다. 고객·변화·가치 등 매년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 반면 최근 3년간 키워드로 꼽히지 않은 AI·조직 등이 등장한 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최근 국내 10대 그룹의 ‘2024년 신년사’에 쓰인 단어들의 빈도수를 조사해 발표했다. 신년사에 ‘성장’을 언급한 빈도수는 최근 3년 ▲2022년 공동 5위(28회) ▲2023년 3위(39회) ▲2024년 1위(38회)로 지속해서 높아졌다. 반면 지난해 글로벌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로 신년사 키워드 4위에 올랐던 ‘위기’는 19위로 밀려났다. 국내 산업계를 이끄는 이들은 2024년을 ‘위기 극복’보단 ‘성장 도모’의 시기로 진단한 셈이다.

포스코는 특히 10대 그룹 중 ‘성장’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곳으로 꼽혔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친환경 성장 비전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혁신하고 역량을 키워 나간다면 성장의 기회는 우리가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룹별로 강조한 단어 역시 신년사를 통한 향후 1년을 가늠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해현경장’(解弦更張·거문고 줄을 고쳐 매다)이란 사자성어를 내걸었다. 그는 “느슨해진 거문고는 줄을 풀어내어 다시 팽팽하게 고쳐 매야 바른 음(正音)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며 “경영 시스템을 점검하고 다듬어 나가자”고 주문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일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기아 오토랜드 광명을 찾아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지속 성장해 나가는 해로 삼자”며 “고통 없이는 결코 체질을 개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신년사를 발표한 장소는 1973년 한국 최초의 컨베이어 벨트로 생산되는 일관 공정 종합 자동차 공장으로, 올해 상반기 한국 최초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일찍이 신년사를 내고 2024년 화두로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을 제시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글로벌 챔피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는 그레이트 챌린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2024년은 침체의 시작이자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뎌야 할 기회의 시기”라며 “그룹 전반이 경각심을 가지고 비상한 대응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장 변화의 특히 민감한 이동통신 3사(SKT·KT·LG유플러스)에선 AI·디지털전환(DX) 등을 공통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유영상 SKT 사장은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의 자세로 ‘글로벌 AI 컴퍼니’ 성과를 거두는 한 해로 만들자”고 했다. 국내 양대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카카오는 평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별도의 시무식이나 신년사 발표 없이 갑진년을 시작했다. 카카오는 다만 그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CA협의체 공동 의장을 맡는 변화로 2024년을 출발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이사 내정자와 함께 조직 쇄신을 이끌겠단 의지다.

‘저성장 위기 탈출’ 과제로 제시한 유통가

올해 유통가 수장들은 신년사에서 저성장 기조 속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당부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는 압도적 우위의 핵심 역량을 가진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며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사업 구조도 과감히 개편해 줄 것”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AI 트랜스포메이션’(AI Transformation)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사업 혁신도 당부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신세계가 1위 회사가 맞느냐는 물음에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며 “소비할 때 '단 한 클릭의 격차'가 고객의 마음을 흔들고 소비 패턴을 바꿨다. 사소해 보이는 ‘한 클릭의 격차’에 집중해 경쟁사와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주문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 각 사]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올해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사업 안정화를 추구하면서 ‘기민하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성장 메커니즘의 확립’ 최우선 목표로 노력해 나가자”며 “성장 메커니즘은 미래에 대한 폭넓은 구상을 통한 새로운 성장 기회의 창출과 고객가치를 중심으로 한 혁신이 지속되는 체계”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구상한다는 것은 다양한 미래를 보고 성장 대안을 폭넓게 고려해서 나온 가능치를 목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며 “계열사별로 처해있는 사업환경과 역량, 자원에 매몰된 통념을 버리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새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비즈니스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핵심 가치인 ‘온리원’(ONLYONE) 정신을 강조했다. 손 회장은 CJ그룹 내부의 문제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현실 안주와 자만심 등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더 심각하다”면서 “넷플릭스·쿠팡 등 새로운 혁신적인 경쟁자가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고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는 온리원 정신을 재건하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며 “임직원 모두가 1등을 하겠다는 절실함, 최고가 되겠다는 절실함, 반드시 해내겠다는 절실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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