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품은 부안, ‘힘센’ 동네의 부활…소리 없는 역발산 기개에 끌리는 여심[E-트래블]
‘국보’ 된 족보 있는 내소사 고려동종…문화재청, 부안 첫 국보에 지정서 전달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꼬박 800년이 걸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30만 번 가까운 해를 맞아야 했다. ‘징하도록’ 오랜 기다림이다. 최근 전북 부안이 처음으로 국보를 품었다. 수장고에 갇힌 목소리 잃은 내소사 동종(銅鍾·구리로 만든 종)이 그 존재만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명예의 전당에서 내소사 고려동종은 호령하기보다 우아한 자태로 그 자리를 지켰다
부안은 그간 천혜의 자연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품었고, 곰소염전으로 생명을 지켰고, 내소사·개암사 창건 이후 백제 무왕이 부흥을 이끌었으니 국태민안의 발원지였다. 그 오랜 축원이 모여 드디어 부안에 국보가 섰다.
내소사 고려동종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보로 지정됐고, 문화재청은 지난 1월 9일 전북 부안군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동종에 대한 국보 지정식을 열었다.
가장 큰 고려 후기 동종, 국보 되다
국보로 지정된 전국의 동종은 5개다. 모두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것이다. 내소사의 것은 그 중 고려시대의 것으로 만든 이가 명확한 족보 있는 동종이다.
국보지정서 전달식 날, 내소사는 야단법석이었다. 동종은 한마디 벙긋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모여들었다. 부안 지역에서 국보로 지정된 건, 이 동종이 처음이다. 소리 자체로 중생의 깨달음과 구제를 이어온 고려동종이, 그 아우라만으로 국보의 위엄을 드러낸 셈이다.
내소사 고려동종은 섬세하면서도 균형 잡힌 조각 기법으로 만들어져, 고려 후기의 범종 가운데 제일로 꼽힌다.
종을 만든 내력이 담긴 주종기(鑄鍾記)에는 장인 한중서가 구리 700근(약 420㎏)으로 1222년에 제작했다고 적혔다. 높이 104.8㎝, 입지름(원통 모양의 지름) 67.2㎝인 이 종은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크다.
종 아래·윗부분에는 덩굴무늬 레이스가 밑자락과 탱크톱처럼 어깨를 촘촘히 감쌌다. 이에 더해 어깨 부분 위에는 연꽃 문양이 목도리처럼 입체를 이루며 휘감는다. 동종을 뚫고 나온 듯한 종 머리의 용두는 말 그대로 용뉴(용모양 고리)가 됐다. 그 종 걸이는 입을 쩍 벌려 눈을 부라리며 동종의 액운을 떨쳐내겠다는 의지가 단단히 했다. 이 용은 허릿심 하나로 내소사 고려동종의 700근 무게와 800년 역사를 더 받쳤다.
이 동종은 자리 잡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동종 몸체에 적힌 이안기(移安記)를 보면, 청림사에 있던 것을 1850년(철종 1) 내소사로 옮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몸체에는 삼존상(三尊像)이 장식성과 조형미를 더하고 있다. 삼존상은 부처와 양옆에 두 보살을 새긴 조각상을 뜻한다. 내소사 대웅보전엔 아미타불을 본좌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좌우로 협시한 삼존불이 있다. 그 절에 그 종이다.
이날 내소사에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내소사 주지인 월봉 진성스님에게 국보지정서를 전달했다. 이어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수장고에서 내소사 고려동종에 대한 설명회를 직접 주관했다. 사찰 소유 동종이 국보가 된 것은 화성 용주사 고려동종에 이어 60년이 꽉 차온다.
전나무 숲과 템플스테이 유명
기세등등해진 내소사는 치유의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약 500m의 전나무 숲이며 템플스테이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내소사를 품은 능가산은 개암사도 품었다. 석가모니는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에게 설법을 베풀었다. 능가는 ‘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그것을 ‘능가경’으로 묶어냈다 하니 질문·대답 배틀인 설법은 차고 넘쳤나 보다.
다행히 오늘날 능가산은 그 문턱을 낮춰 내소사는 관광사찰로 유명하게 됐다. 그에 비해 개암사는 조금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경기도 포천시 광릉수목원 숲길과 더불어 ‘전국 3대 전나무 숲길’이다. 겨울 눈이 쌓여도 좋고 봄·여름 우거져 하늘을 가려도 새롭다. 전나무 숲은 벚나무와 단풍나무로 이어지고, 여행객의 마음은 번뇌를 벗고 번잡을 접는다. 물아일체 체험 코스다.
내소사나 개암사를 찾은 여행객을 보고 있자면, 그들은 수묵화로, 때론 수채화로 빠져든다. 세상만사는 잠시 내려놔도 좋다. 결국 여심은 원근감에 어깨를 빼앗겨 점묘화 속 점 하나가 된다.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떨쳐냈으니, 그 역발산은 기개세로세.
그 힘 뻗쳐 채석강에 이르면, 여행객에 앞서 삼라만상의 힘이 바위로 만든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 절경을 만들었다. ‘해넘이 채화대’에서 본 칠산바다 노을이 ‘물랭루주’에 뒤질 텐가. 채화대 아래 암반에 여심 빼닮은 ‘노을 공주’란 별명의 여인상을 훔쳐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지형을 7000만 년 전 백악기의 유물이라 하는데, 억겁의 지친 숫자놀음에 기겁하기보다 ‘도봉순’이든 ‘강남순’이든 ‘힘쎈여자’ 전설의 개양할미 설화에 기꺼이 빠져보면 어떨지. 이 할미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인근 바다를 휘저으며 평탄화 작업을 손수 하셨단다. 그 기세를 몰아, 후세는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이란 당집을 지었다. 공치사를 위함이다. 적벽강 해안 길을 따라 북쪽으로 2㎞ 지점에 있다. 그 옆으로는 채석강이 맞닿아 귀엣말을 나누는 듯하다. 이 당집은 개양할미에 대한 제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음력 1월 14일이 제삿날이다. 4세기 중반부터 제의가 이루어진 곳이란 사실이 유적 발굴을 통해 1994년 확인됐다.
이곳 설화가 빈틈이 없는 것은 곰소 인근 ‘둔벙’(늪·웅덩이) 이야기다. 해난사고를 막고 풍어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간척 작업을 하던 개양할미가 치마가 젖자, 화가 치민 할미가 치마에 돌을 담아 둔벙을 메웠다고 한다. 결국 그곳은 곰소염전이 됐을 테고, 곰소의 소금은 오롯이 곰소젓갈의 베이스가 돼 전 국민의 입맛을 평정 중이다. 아쉽지만 전국 각지에서 곰소소금을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는 곰소젓갈용으로 선판매되기 때문이란다.
한반도 절경 프랜차이즈…소금강 직소폭포
부안의 명소는 바다에만 있지 않다. 대표선수는 직소폭포다.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직소폭포는 변산 8경 중 2경의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다.
높이만 30m에 달하는 바위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는 장쾌하다. 물줄기가 연못으로 바로 떨어져 직소(直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직소폭포는 다랑논처럼 그 아래 새끼 폭포를 키우며 층층시하의 우리네 가족 관계를 웅변하는 듯도 하다.
금강은 부안에도 ‘한반도’ 인증을 남겼다. 금강 프랜차이즈는 이곳에도 있다. 직소가 숨어든 이곳 내륙을 ‘소금강’이라고도 부른다. 직소폭포는 봉래구곡의 제2곡으로 꼽히는데, 내변산에서 약 20㎞에 이르는 신비로운 하천 지형 아홉 곳이 봉래구곡이다.
명승 제116대인 이곳은 곡소리에 탄성(?)이 절로 난다. 상류부터 1곡 대소, 2곡 직소폭포, 3곡 분옥담, 4곡 선녀탕, 5곡 봉래곡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후 6~9곡은 1996년 부안댐 완공으로 물에 잠기며 감탄까지 수장됐다. 형체가 짐작되지 않으니, 곡소리마저 무용지물이다.
직소폭포의 못 아래에는 용소가 있다. 말 그대로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내소사 고려동종 용뉴처럼 국보급 용틀임이 언젠가 벌어졌을 터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와 암벽이 용꿈을 현실에 실사했을지 누가 알리오.
이 트레킹 코스는 새침데기가 아니다. 누구도 터부시 않는 ‘관종’이랄까? 입구부터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다. 길이는 약 2.3㎞이며 계절마다 풍광을 달리하니, “다음에 또 오겠다”다는 허튼 언약이라도 해야 미안하지 않겠다. 이를 두고 ‘부화뇌동’ 아닌 ‘부안뇌동’이라 해야 할까.
부안 사람만 먹으면, 안돼요~
부안 맛집은 바다가 신선마트다. 청정 바다에 지역 아낙의 손맛이 더해지니 입안은 매 끼니 환상특급이다. 그렇다고 바다에만 빨대를 꽂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부안의 질곡한 토양에 기댄 새로운 먹거리도 지역민은 물론 여행객의 눈길을 피해갈 순 없다. 부안 먹거리로 한끼줍쇼.
‘찐빵집’이 ‘찐’ 빵집이 된 슬지네제빵소
부안에 토속음식만 떠올리면 오산이다. 술 서서 먹는 빵집인 ‘솔지네제빵소’가 그곳이다. 젓갈과 소금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곰소항은 염전으로도 대중에게 각인된 곳이다.
검은 지붕과 바닷냄새 물씬 풍긴 곰소염전 맞은편에 자리한 슬지네제빵소는 2017년 문을 열었다. 빵집으로 원래는 부안 읍내에서 유명한 찐빵집이었다. 2000년 김갑철 대표가 둘째 딸의 이름(슬지)을 내걸고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며 ‘슬지네찐빵’이 상표가 됐다. 이를 상표등록 하면서 오색 찐빵을 만들어 특허 출원 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찐빵의 인기가 높아지자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연일 밀려드는 손님에 빵집 대표의 아내가 과로로 건강이 악화됐다. 할 수 없이 김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둘째 딸에게 빵집 운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딸은 기왕 하는 장사, 제대로 하겠다며 중앙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경영 공부까지 하며 큰 그림을 그렸다. 공부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슬지씨는 상호를 ‘슬지네 찐빵’에서 ‘슬지네제빵소’로 바꾸고 가게도 읍내에서 떨어진 곰소염전 옆 넓은 부지로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딸의 판단은 주효했다. 지역 주민보다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빵집이 문을 열자 이곳을 찾은 여행객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이 빵집은 곰소항에 문을 연 지 3년 만에 신관을 건립하며 부안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연간 30만~40만 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 제빵소에서 연간 사용하는 팥만 30t, 밀가루는 30t, 찹쌀은 1t에 달한다.
대부분 부안과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어 제빵소 매출이 늘어나면 동시에 지역 농민 소득도 늘었다.
오색 찐빵이 대표 상품이었지만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개발도 진행 중이다. 직접 이곳을 찾은 날 오색 찐빵은 이미 동난 상태였다. 대신 국산 밤과 우리 밀에 국산 팥을 넣어 만든 찐팥밤빵, 인절미 빵, 크림치즈 찐빵 등 다양한 제품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주말과 휴일이면 색다른 분위기를 원하는 지역 주민과 여행객이 들르는 필수코스다.
빵집의 성공에 힘입어 김슬지 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해, 부안 출신 최초 여성 도의원이 됐다.
갯벌에 핀 꽃 ‘백합’, 그 맛 또한 어여뻐라
백합은 부안 아니면 신선하게 만나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구이·전·찜·탕 등으로 해먹을 수 있어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부안에서는 예전부터 결혼식 음식으로 백합요리가 빠지지 않았다. 입을 잘 벌리지 않는 백합이 백년해로를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에 넣으면 담백하고 개운한 것은 물론 과음으로 인한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찜으로 만들면 쫄깃한 살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그런 백합으로 죽을 만들면 ‘엄지척’이 절로 나온다.
부안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갯벌에서 나는 식재료가 풍부하다. 2010년 군산·김제·부안을 이어주는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갯벌에 나가 손을 뻗기만 하면 백합·바지락·가리비·피조개가 잡혔을 정도다고 한다.
‘조개 여왕’으로 통하는 백합은 식감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다. 몸체인 껍데기 안에 개흙(갯바닥에 있는 고운 흙)도 많지 않아 지저분하게 씹히는 것이 없다. 조개 식재료 중 고급으로 통하는 이유다.
백합에 들어 있는 비타민B는 해독은 간 기능 활성화에도 도움 준다. 철분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악성빈혈이 있다면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5∼6월이 제철이지만 이 시기에 부안을 찾으면 으레 주문하는 것이 백합류 메뉴다. 맛 좋은 백합의 크기는 5∼6㎝다. 너무 크면 질겨진다.
하나씩 포일로 싸 손이 많이 가지만 ‘백합구이’는 백합 맛의 극강을 보여준다.
▲ 찾아가는 길
내소사 차량
①서해안고속도로 줄포나들목→보안사거리(영전검문소)에서 좌회전→곰소→내소사주차장
②호남고속도로→정읍나들목을 빠져나와 김제·부안 방면→(국도)→고부~→줄포→보안사거리(영전검문소)→위와 동일
대중교통
①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동서울터미널→고속버스로 부안읍 도착→내소사 행 300번 군내버스를 갈아탄 뒤, 종점인 내소사 입구 하차
② 부안읍 시내버스 아침 6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30분마다 출발, 약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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