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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어 바이오까지…미중 패권 경쟁 ‘확전’ 양상[스페셜리스트 뷰]

바이오 분야 중국 견제 법안에 중국 기업명 명시 이례적
중국 바이오산업 견제 확대될 가능성 높아 

미 대통령 조 바이든이 지난 3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미국 하원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미(美) 의회에서 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발의됐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 법안은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바이오산업에서도 본격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법안에서는 이례적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의 이름을 명시했다. 법안에 명시된 비지아이(BGI)·엠지아이(MGI)· 콤플리트 제노믹스(Complete Genomics) 등은 모두 중국 기업이다. 이 가운데 MGI는 BGI의 자회사, Complete Genomics는 MGI의 자회사로 모두 BGI 산하 기업이다. 법안의 조문에는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맥락, 미국인 유전자 정보가 중국 정부에 의해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이 나타나 있어 바이오산업뿐만 아니라 향후 미·중 갈등의 전개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지난해 12월, 하원에서 올해 1월에 각각 발의됐다. 하원 버전이 법안의 이름과 발의 배경을 포함하는 것을 제외하면 두 법안의 조문이 동일하다. 두 법안 모두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이 공동발의의 형태로 참여하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하원의 법안은 ‘중국 공산당에 관한 특별 위원회’ 구성원인 갤러거(Gallagher) 공화당 하원의원(위원장)과 크리쉬나무르티(Krishnamoorthi) 민주당 하원의원 등이 발의에 참여하였는데, 이를 통해 중국에 대한 미 의회의 인식과 전략을 짐작할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동 법안은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과 하원의 지지를 폭 넓게 받고 있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미 의회 생물보안법 발의…미·중 갈등 시사

발의 이후 상원에서 3월 6일 찬성 11명, 반대 1명으로 국토안보위원회를 통과했다. 상임위에서 많은 법안이 사장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안의 상임위 통과는 실제 입법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실제 입법에 이르기까지는 상원과 하원 각각에서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아있고 이 과정에서 법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상·하원에서 통과한 법안의 조문에 차이가 있으면 이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실제 입법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 다만,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과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를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안은 정부 기관이 우려 기업으로부터 바이오 장비나 서비스를 조달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 기관이 우려 기업의 바이오 장비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즉, 바이오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우려 기업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나 단체는 정부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다. 법안에 명시된 기업(계열사 및 자회사 포함) 외에 규제의 대상이 되는 우려 기업은 관리예산국장이 관련 기관장과 협의해서 결정한다.

이 법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다면 중국의 바이오 기업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더 넓게는 바이오 공급망 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이 발의된 이후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중국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 법안의 발의에는 중국 바이오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안은 중국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미래의 주요 산업으로 여기고 있으며, 인공지능(AI)을 통해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것을 강조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AI 기술은 빅데이터에 의존하는 만큼 대규모 유전자 정보의 활용을 통해 중국 바이오산업이 급격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생명공학 기술과 바이오산업의 발전은 인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지만, 이는 현재 기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미 바이오 업계에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예로, 규제 대상인 Complete Genomics는 일루미나와 함께 유전체 분석 분야의 최대 기업으로 꼽힌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Complete Genomics와 일루미나는 2010년부터 특허분쟁을 벌였는데, 결국 2022년에 일루미나가 이와 관련하여 3억2500만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해당 사례는 동 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잘 보여주며, 중국 바이오산업의 가능성 역시 보여준다. Complete Genomics는 원래 미국 기업이었으나 2013년 BGI 그룹이 인수했다. 일각에서 이러한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 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과 데이터가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한다.

법안은 미국인의 유전자 정보 등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중국 정부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미 정계의 국가안보 인식과 직결된다. 법안이 공급망과 관련한 함의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안에서 많은 지면을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사항은 바로 이 부분이다. 


미국 기업 인수해 기술·데이터 중국으로 유출 의심

법안이 정의하는 바이오 장비는 DNA 염기서열분석 장비 등 바이오 관련 연구·개발·생산·분석 등에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를 포함한다. 바이오 서비스는 연구·개발·생산·분석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저장과 전송 등을 포함한다. 또한 법안에서 규제 대상인 중국 기업 BGI가 중국 중국국립유전자뱅크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과거 Complete Genomics를 통해 미국의 유전자 정보를 구입했고, 현재도 자회사인 MGI와 Complete Genomics를 통해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타국에서 유전자 정보 수집에 관여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수집한 미국인의 유전자 정보를 궁극적으로는 중국 정부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의 바이오 기업, 궁극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미국인의 유전자 정보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미 정계가 경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민감한 개인의 정보에 접근함으로써 특정인을 식별하거나 표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등 바이오 정보는 민감한 정보임과 동시에 유전질환(genetic disease)의 위험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이러한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자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이러한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기업은 지원자가 동의할 때만 이러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으며 데이터는 익명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한 연구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자료를 통해서도 소수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는 비단 유전자 등 바이오 정보에만 국한된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바이오 정보는 특히 민감한 정보이므로 미 정계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의 배경에는 데이터와 관련한 중국의 법과 제도가 자리한다. 이 법안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민군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공공 및 민간 기업이 중국군의 현대화에 기여하도록 규정한다.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4개의 기업은 미국에서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군과 협력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미 정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자국 법률에 따라 기업이 정부에 데이터를 넘기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 정계에서는 자국민의 민감한 개인 정보가 중국 정부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바이오산업에 기여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라 증폭되고 있다.

미국인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동 법안은 최근 압도적인 표결로 하원을 통과한, 이른바 틱톡 금지법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미 정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틱톡이 미국인의 개인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수집하고 있고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중국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틱톡의 사용을 금지했고, 지난해 의회에서 틱톡의 CEO를 대상으로 하는 매우 공격적인 청문회가 개최된 바 있다.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틱톡 금지법과 생물보안법은 서로 다른 분야를 대상으로 하므로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으나 미국인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는 빅데이터의 유출과 인공지능(알고리즘)의 활용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또 다른 전개 양상을 보여준다.

올해 2월 말,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인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우려국(countries of concern)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행정명령의 대상에는 유전체·생체인식·개인 건강 데이터 등의 신체와 관련된 데이터 및 위치·금융·개인 식별이 가능 데이터 등이 포함된다. 이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담은 데이터가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로 흘러 들어가 활용 또는 악용되는 사태에 대한 정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생물보안법이나 틱톡 금지법의 취지와도 상응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3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옆자리의 리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규제 대상 지목된 중국 기업들, 중국군과 협력 부인

한편, 동 법안에서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중국의 기업들은 입장문을 통해 중국군과의 협력을 부인하고, 민감한 개인정보의 관리와 관련하여 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어떤 국가의 안보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또한 이러한 입법의 배후에는 경쟁사를 제거하려는 미국 기업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항변이 미 정계의 인식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바이오협회도 법안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동 법안의 규제 근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초당적인 대(對)중 강경 기조가 자리 잡은 미 정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와 상관없이 중국의 바이오산업을 견제하는 입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원 법안을 발의한 갤러거 공화당 하원의원, 크리쉬나무르티 민주당 하원의원은 바이오 공급망과 관련하여 외국인 투자 및 해외 투자 규제, 수출 통제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중 일부는 기존의 법률을 통해서도 시행될 수 있으므로 중국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견제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논란이 계속되겠지만, 앞서 미국이 실시한 대(對)중 반도체 수출통제에도 나타나듯이 이러한 조치는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동 법안은 이미 장기화하고 있는 미·중 기술패권경쟁이 바이오산업으로 확산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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