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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배상해야 하나” 홍콩 H지수에 속 타는 은행권

우리은행부터 홍콩 ELS 배상안 수용키로
배상비율 높은 일부 은행 ‘1조 손실’ 가능성
“배임 문제는 과도한 우려” 시각도

홍콩 H지수 ELS)피해자 모임이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과 관련한 배상비율 산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판매사의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한다는 입장이라 은행권의 자율 배상비율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은행 “금감원 분쟁조정안 수용”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홍콩 H지수 ELS 자율배상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당국의 분쟁조정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4월에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된 고객의 배상비율을 정하고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배상비율에 대해 투자자 별로 고려할 요소가 많아 개별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고 했다. 

우리은행의 홍콩 H지수 ELS 판매액은 은행권에서 가장 적은 415억원이다. 각 은행의 이 상품 판매 규모를 보면 ▲KB국민은행 7조8000억원 ▲신한은행 2조4000억원 ▲NH농협은행 2조2000억원 ▲하나은행 2조원 ▲SC제일은행 1조2000억원 등이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배상비율은 35~40%, 배상액 규모는 100억원대로 예상된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예상한 배상비율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앞서 금감원은 홍콩 H지수 ELS 판매사가 배상해야 하는 비율이 최저 0%에서 최대 100%까지라며 차등배상 기준안을 내놨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3월 11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 배상비율은 다수 사례가 20∼60% 범위 내에 분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상품의 특성상 고객이 위험성을 알고 투자했을 경우가 있고, 이에 따라 투자자책임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특히 2019년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와 달리 홍콩 H지수 ELS는 금융소비자법에 따라 은행권에서 녹취를 의무적으로 시행한 가운데 판매됐다. 이 때문에 은행 직원의 위험성과 손실가능성 고지, 고객동의 등이 있었는지가 DLF 때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적 판매 외에는 100% 배상비율이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 부원장은 “DLF 사태 때와 비교해서 상품 특성이나 소비자환경 변화 등을 감안할 때 판매사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렵지 않겠나 본다”면서 “DLF 때보다는 전반적인 배상비율이 높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조원 규모 배상액 지급할 수도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다른 은행들은 배상비율을 결정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우리은행이 배상비율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은행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큰 상황이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이 자율 배상비율을 높게 들고 나올 경우, 이 비율이 업계 기준으로 작용하며 투자자 합의 과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 평균 배상비율을 보고 다른 은행의 홍콩 H지수 ELS 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며 “우리은행보다 낮은 배상비율이 나오면 투자자들이 반발해 법정 다툼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과의 다툼 외에도 높은 배상비율이 업계에 정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실적 악화도 감당해야 한다. 평균 배상비율이 50%가 되면 1조원이 넘는 배상액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다. 특히 KB국민은행은 판매액이 7조8000억원에 달해 배상비율이 커질수록 수익성 악화 수준도 높아진다.

KB국민은행에서 판매한 홍콩 H지수 ELS 중 올해 상반기에 만기를 맞는 규모는 4조7000억원으로 알려졌다. 투자자 손실률을 50%로 가정하고, KB국민은행이 손실 배상비율을 50%로 잡으면 배상해야 할 금액은 1조1000억원이 넘는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홍콩 H지수 ELS 누적 손실률은 53.5%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이미 은행마다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았기 때문에 당장 1조원의 배상금이 수익에 반영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은행들이 쌓아둔 충당금은 대출 자산 부실 우려에 대비한 것이다. 홍콩 H지수 ELS 배상을 위해 충당금을 사용할 경우 줄어든 충당금을 이유로 당국이 추가 충당금 적립 압박에 나설 수 있다. 장기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배임, 문제 안 될 것”

우리은행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홍콩H지수 ELS 투자자에 대한 자율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 우리은행]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도 각각 오는 27일, 28일에 이사회를 열고 자율배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 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들 역시 조만간 ELS 배상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과 비교하면 다른 은행들의 홍콩 H지수 ELS 판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내부 검토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나올 우리은행의 배상비율을 참고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 제기된 배임 문제는 은행권 내부에선 큰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DLF 사태 당시에도 금감원이 자율 배상을 권고했고 이에 은행들은 평균 58% 배상률로 투자자들에게 배상했다. 홍콩 H지수 배상비율이 이보다 낮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다, 은행들이 경영의 자율 판단의 원칙에 따라 배상비율을 결정하면 DLF 때와 마찬가지로 배임이 문제로 커지기 어렵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 법원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어 지금 배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며 “은행이 고객 신뢰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배상안을 결정한다면 배임은 문제가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3월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금감원이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배상 문제를) 처리하자는 건데 왜 배임 문제가 나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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