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회장님은 지금도 현역 연구자…‘韓 SW 자존심’ 티맥스, 슈퍼 앱 공개 [이코노 인터뷰]
박대연 티맥스그룹 회장
14년 공들여 개발한 슈퍼 앱 ‘가이아’ 공개…1조1000억원 투자
일흔 살에도 개발 진두지휘…박대연 회장 “평생 CTO로 남고파”
“기술이 ‘1등 국가’ 도달하는 유일한 길…공과대 설립이 꿈”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이립(而立·30세)과 종심(從心·70세). 티맥스그룹이 그리는 슈퍼 애플리케이션(앱) ‘가이아’(SuperApp GAIA)의 구상을 듣고 나온 뒤 떠오른 단어다. 티맥스그룹은 가이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를 열겠다”고 자신했다.
티맥스그룹은 1997년 설립 후 독자 기술력으로 기업용 시스템·미들웨어(운영 체제와 응용 프로그램 중간에 위치해 안정적인 시스템 작동을 돕는 프로그램)·데이터베이스(DB)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여 종의 국산 소프트웨어(SW)를 개발했다. ‘SW 불모지’인 한국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써내며 28년간 살아남았다. 이립, 뜻을 온전히 세운다는 서른을 2년 앞두고 티맥스그룹은 슈퍼 앱에서 “미래를 찾겠다”고 했다. 슈퍼 앱은 단일 기능을 제공하는 앱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플랫폼 하나로도 삶의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걸 목표로 한다. 그만큼 다양한 기능이 탑재된다는 의미다.
박대연 티맥스그룹 회장은 13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슈퍼앱데이 2024’를 열고 회사의 이런 변화를 직접 선언했다. 1956년생, 70세 종심을 바라보는 박 회장은 회사를 설립한 지 2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역’이다. 여느 ‘회장님’들과 달리 그의 직책이 최고기술책임자(CTO)에 머문 이유다. 이번 슈퍼 앱 개발을 진두지휘했을 정도로 지금도 ‘실무자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마음대로 행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나이인 박 회장은 “정보기술(IT) 대통합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슈퍼 앱 ‘가이아’는 이날 데모 버전(성능을 보여 주기 위한 체험판)으로 공개됐다. 가이아는 코딩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도 쉽게 앱을 설계·제작할 수 있는 ‘노코드’(No-Code) 기능을 장착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박 회장은 진정한 의미의 DT를 “프로그램 개발 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앱을 만드는 세상”이라고 정의했다.
회사는 일단 가이아를 올해 하반기 기업 간 거래(B2B) 솔루션 상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고객사가 인사·개발·금융 등 ‘부가적인 영역’ 모두를 가이아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구상이다. 회사는 고객사 담당자가 자바(Java)나 파이썬(Python)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가이아를 도입할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꼽기도 했다.
박 회장은 “화장품 제조사라도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재무·인사·온라인 서비스·재고 관리 등 IT에 기반한 다양한 업무가 발생한다”며 “화장품 제조사의 핵심(코어)은 화장품이다. 가이아는 직원들이 핵심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티맥스그룹은 가이아에 ▲문서·사무 기능의 오피스(Office) ▲통합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능의 웍스(Works) ▲사용자 중심 맞춤형 ‘클라우드올서비스’(CLAS) ▲웹·앱 구축 솔루션 ‘엠엑스’(MX) ▲앱 개발 기능의 ‘큐브’(Cube) 등을 통합했다. 티맥스그룹이 28년간 쌓은 모든 역량이 박 회장 제시한 ‘누구나 쉽게 앱 생성’이란 목표 아래 결집해 탄생한 결과물인 셈이다.
박 회장은 “28년 IT 한길을 걷고 있는 티맥스그룹의 지난 14년은 원천 기술에 집중한 시스템 구축의 시간이었다면, 이후 14년은 슈퍼 앱을 만들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쏟아온 기간”이라며 “수많은 역경과 시련에도 토종 IT 기업이란 자부심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 온 결과 마침내 슈퍼 앱을 공개할 수 있어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티맥스그룹은 가이아를 앞으로 소비자향(B2C) 서비스로 순차 확장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출시를 예고한 B2C 버전의 가이아는 ▲금융·검색·콘텐츠·쇼핑 등 생활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기존 ‘슈퍼 앱’ 개념에서 더 나아가 ▲B2B 형태로 제공되는 솔루션을 기반으로 모두가 자신만의 앱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까지 포함한다. 내년 하반기엔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 나이 일흔, 마지막 인생 불사르겠다”
박 회장은 “개발자란 말을 무척 싫어한다”며 본인은 물론 티맥스그룹 대다수를 ‘연구원’이라고 소개했다. “연구원”을 언급하는 목소리엔 자부심이 묻어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스스로 뱉은 말을 증명하듯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기자간담회 내내 전문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세계 IT시장 변화를 꿰뚫는 안목은 물론 비교적 최근 등장한 SW 기술까지 아울러 발표를 진행했다. 그의 나이가 올해 만 68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간담회 직후 “유명 개발자 중에서도 박 회장의 역량을 뛰어넘는 이를 찾긴 어려울 것”, “국내 IT 거목이란 말이 되레 축소된 평가 같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박 회장은 ‘토종 IT 기업인으로 28년을 지낸 이유’를 묻는 말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애국자는 못되더라도 매국노는 되지 말자고. 그런 마음으로 IT 연구를 해왔다. 나는 지금도 한국은 기술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고 본다. 기술은 한국이 ‘1등 국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하고 밤 10시에 업무를 놓는다. 365일 내내 이렇게 매진하니 놀랍게도 기술 국가가 되는 길이 보였다. 길이 보이는데 어떻게 포기를 하겠느냐. 우리 회사 연구자에게 미국 구글 본사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부터가 솔선수범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기술은 참 어렵다. 그렇지만 나이 아흔까지, 아니 평생을 CTO로 남고 싶다.”
은행 전산실부터 그룹 회장까지…‘IT 외길’
박 회장의 이런 신념은 삶의 궤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은 IT분야 취재 기자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전문성을 지녔지만, 처음부터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건 아니다. 박 회장은 1976년 광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근무했다. 그의 ‘IT 외길’은 유명 대학 연구실이 아닌 은행 전산실에서 시작됐다. 막내의 대학 졸업까지 본 뒤에야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30대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손에 쥔 건 사실상 퇴직금밖에 없었기에 학비가 저렴한 미 오리건대(The University of Oregon)를 택했다고 한다. 현지에서도 일을 하며 컴퓨터학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컴퓨터학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귀국한 박 회장은 대기업의 취업 제안을 마다하고 학계로 향했다. 한국외대 제어·계측공학과 교수를 거쳐 199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티맥스소프트를 설립한 건 1997년이다. 연구 활동 중 SW가 향후 한국 미래 경제를 이끌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업자임에도 그는 직책을 연구개발(R&D)센터장으로 표기했다. 독자 기술에 매진하겠단 의지에서다. 티맥스그룹은 현재 SW 불모지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산 기업과 경쟁이 가능한 토종 IT 기업으로 불린다. 박 회장을 대외에서 성공한 벤처 1세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SW 연구원으로 여기는 이유다.
다양한 성과 중에서도 티맥스 운영체제(OS)는 박 회장의 역작으로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배한 PC OS 분야에서 국산 SW란 꿈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또 티맥스소프트의 대표 제품인 미들웨어 ‘제우스’도 박 회장의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 2003년엔 티맥스티베로를 출범하고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체 기술을 앞세워 외산 기업이 국내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에 균열을 냈고, 현재는 세계 시장에 진출해 굴지의 IT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박 회장은 미들웨어와 DBMS를 중심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티맥스소프트의 2023년 연간 매출은 1409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607억원을 기록했다. 티맥스티베로는 지난해 연간 매출 746억원, 연간 영업이익 281억원을 써냈다. 국산 SW 기업 중 이런 규모의 실적을 내는 곳은 드물다.
이런 회사를 일군 박 회장이 이번엔 슈퍼 앱을 들고나왔다. 그는 “SW가 걸어왔던 길과 AI가 개발된 과정은 마치 합쳐질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IT 역량이 곧 기업과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는 이 시대에 티맥스의 IT 대통합은 대한민국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IT 대통합을 위해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효과적인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티맥스가 제시하는 IT 대통합은 시스템·데이터·앱·AI 등 네 가지 요소를 모두 합치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그간 슈퍼 앱이나 노코드를 표방한 숱한 서비스가 시장에 등장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가이아가 앞서 나온 앱들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대다수 슈퍼 앱은 서비스의 단순 연결에 그쳤다. 데이터와 플랫폼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며 “가이아는 지금까지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산돼 있었던 IT 기술 서비스를 하나로 제공해 자유로운 확장과 신기술 내재화를 추진할 수 있다. 운영체제로부터의 독립을 가능케 한다”고 자신했다. 시스템부터 앱까지 처음부터 끝(End-to-end)을 모두 통합하는 세계 최초의 아키텍처(Architecture·컴퓨터 시스템 전체의 설계 방식)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이미 가이아를 기반으로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사업 확장의 기반을 다졌다.
박 회장은 슈퍼 앱이 ‘마지막 과제’라고 했다. “14년 전 600억원 대 적자를 기록하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당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내 인생은 그때 끝이 났다. 그런데 토종 SW 기업을 응원하는 마음에서인지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워크아웃 돌입 다음 해에 600억원 대 흑자를 낸 이유다. 당시 ‘더 잘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슈퍼 앱에 도전한 거다. 작은 변화가 아닌 ‘세상의 성질’을 바꾸는 걸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흔이다. 마지막 인생을 슈퍼 앱에 불사르겠다.”
티맥스그룹은 2014년 7월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8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계약기간인 3년보다 1년을 앞당겨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워크아웃 졸업을 전후해 슈퍼 앱 개발에 나선 티맥스그룹은 14년 동안 약 1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초 계획보다 5년가량 정도 더 늦어졌지만 그만큼 완성도를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박 회장은 “빅테크·대기업 등 대규모 레퍼런스를 올해 10개~100개를 쌓아 B2B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며 “출시 후 1년 정도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티맥스소프트 재인수 절차대로 진행”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 언급이 어렵다”며 말을 아꼈지만, 박 회장은 이날 사실상 티맥스소프트의 재인수 의지를 드러냈다. 티맥스소프트의 재인수는 슈퍼 앱 안착과 함께 박 회장에게 남은 숙제로 꼽힌다.
박 회장은 지난 2017년 티맥스소프트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등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그러나 더딘 진척에 투자금 상환 압박을 받았다. 못 이겨 티맥스소프트를 매각했다. 2021년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가 티맥스소프트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스카이레이크는 박 회장의 지분 28.9%를 포함해 지분 60.9%를 사들였다. 티맥스그룹은 티맥스소프트 매각 당시 2024년 3월부터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 콜옵션 기한은 2026년 3월까지다. 회사 측은 이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일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최종 목표로 ‘대학 설립’을 제시했다. “결혼도 안 했고 가족도 없는데 이 많은 재산을 어디에 쓰겠느냐. 티맥스 공과대를 만들어서 한국이 기술 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뛰어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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