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 일변도’ 국내 증권사 리포트 여전한 이유는
[멀고 먼 독립리서치센터] ①
증권사-기업 간 영업환경·수익 구조 한계
애널리스트에 힘 실어주는 하우스 문화도 필요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올해 증권사가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제시한 종목 보고서 대부분이 ‘매수’ 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매수 일변도의 증권사 리서치 관행을 개선하도록 촉구했지만 뚜렷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6월 20일 기준 올해 발행된 기업 보고서 8662건 가운데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는 단 2건(0.02%)에 불과했다. 사실상 매도 의견에 가까운 ‘비중 축소’는 4건(0.05%)이었다. 반면 매수 의견은 8012건(92.5%)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보유’는 636건(7.34%), ‘강력매수’는 8건(0.09%)으로 집계됐다.
올해 기업 분석 보고서를 발행한 국내 증권사 30곳 중 28곳(93.3%)은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가 한 건도 없었다.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하나증권·메리츠증권·신한투자증권·키움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매도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는 한화투자증권, BNK투자증권 2곳(6.6%)이었다. 여기에 비중 축소 의견을 낸 유진투자증권 1곳을 더해도 3곳(10%)에 불과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2월 카카오뱅크 매도 의견을 냈다가 4월에는 보유로 투자 의견을 상향 조정했다. BNK투자증권은 지난 5월 한진칼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는 같은 기간 매도 의견을 제시한 비중이 대체로 10%를 넘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은 올해 제시한 투자 의견 중 매도가 16.7%였다. 매수와 보유 의견은 각각 48.2%, 35.2%였다. 그 외 매도 의견 비중은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22.8% ▲모건스탠리증권 서울지점 16.4% ▲노무라금융투자 15.6% ▲JP모건증권 13%, 맥쿼리증권 9.1% 순이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국내 증권사들의 매수 편향 보고서 관행에 대해 일침을 놓았지만 정작 큰 변화의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7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갖고 올바른 리서치 문화 정착을 위한 증권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공개 지적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당시 “그간의 관행에 대한 자성 없이 시장 환경만 탓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리서치부서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예산배분, 공시방식 개선 및 독립리서치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기업 ‘눈치 보기’…제도·문화 바뀔까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지적 이후에도 매수 일색 보고서 관행에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많은 하우스들이 코스닥 기업이라 할지라도 기업공개(IPO)나 사후 증자, 법인 영업 등이 기금과 연결된 부분들이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매도 보고서를 많이 못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의 매수 편향 보고서는 최근에야 떠오른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인 원인 중 하나로 애널리스트들이 해당 기업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점이 꼽힌다. 국내 기업은 실적 가이던스(예상치)를 거의 내지 않는데, 가이던스를 직접 산출해야 하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기업과 척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를 낼 경우 기업설명회(IR) 등에 참여 제한이 생기거나 기업 분석 과정에서 해당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부정적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기업 방문도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증권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소속 증권사 법인영업본부가 자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기반으로 국내외 기관 투자자 등에게 세일즈하는 환경이 대표적이다. 증권사는 기업금융(IB), 신용공여, IPO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분석 대상이 되는 기업이 증권사 고객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법인 영업과 함께 업무를 하는 리서치센터 입장에서는 중립·매도 의견을 내기가 힘들다”며 “운용사나 국민연금 등의 매니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주문을 받으면서 수수료를 수취하는 게 그들의 수익 내는 루트”라고 말했다. 이어 “매도 보고서를 작성하면 해당 업체의 현황을 그들에게 업데이트해 주기 힘들기 때문에 위치가 축소된다”며 “실제로 최근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애널리스트가 해당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개미 투자자들의 이차전지 대표 종목이었던 ‘에코프로’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냈던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관련 항의가 빗발치며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소신 의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2023년 대한민국 베스트 리포트’에서 대상(금융감독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어떻게 소신 있는 보고서를 낼 수 있었을까. 이러한 보고서가 늘어나려면 국내 하우스 문화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가장 많은 종목을 커버하고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상당수 배출되고 있는 하나증권의 경우 회사 차원에서 리서치 조직에 대해서 투자도 많이 하고, 자유롭게 연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인 것으로 안다”며 "매도 보고서의 경우 시장 파장이 꽤 크기 때문에 애널리스트가 용기 있거나 하우스 문화가 안 되면 나오기 힘든 보고서”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리서치부서의 분리 독립, 보고서 제공 유료화, 애널리스트의 성과 평가 방식 개선 등도 제시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리서치라는 게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을 접하고 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첫 관문 같은 것”이라며 “돈이 안 된다고 안 하는 것은 대형사들의 직무유기 성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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