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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콘서트장' 같은 韓 야구장...'1000만 관객' 신화를 달성하다[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승부 중심 스포츠 아닌 팬덤기반 마케팅의 성공
KBO 문화혁신과 각 구단의 고객경험 개선이 핵심

지난 9월 17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경기 전 KBO 1000만 관중 돌파 기념행사로 이범호 KIA타이거즈 감독과 이숭용 SSG랜더스 감독이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 일간스포츠]

[허태윤 칼럼니스트] 2024 한국프로야구(KBO)리그가 '1000만 관중'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은 인구가 5000만명에 불과하고 경기장 규모도 작다. 다른 나라 대비 상대적으로 구단 수(10개 구단)도 제한적이지만 이런 환경을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또한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고 파리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이벤트도 열렸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이룬 성과라 더욱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운이 아니라 실력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야구 경기 승패에 비교적 무관심한 MZ세대와 여성 관객이 대거 유입됐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프로야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다.

'문화 놀이터'된 야구장

이제 야구장은 더 이상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야구장에 대해 "록콘서트장 같은 팬덤 문화를 경험하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젊은 세대에게 야구장은 하나의 문화적 놀이터가 됐다.

심지어 야구 규칙을 모르는 관중들도 맛있는 음식과 ‘떼창’ 응원이 만드는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이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팬덤 기반 마케팅'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KBO의 과감한 혁신이 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파격적인 디지털 전환 전략이다. KBO는 올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티빙'과 중계권 계약(1000억원)을 진행했다. 이 계약으로 티빙은 KBO의 제지 없이 모든 야구 영상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콘텐츠 통제권을 포기하는 대신,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확산을 선택한 것이다. 초기에는 중계 경험이 없는 제작진의 실수로 잡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KBO도, 채널도 ‘윈-윈(WIN-WIN)’한 잘한 선택이 된 셈이다.

이 결정은 성과로 이어졌다. 팬들은 자유롭게 경기 장면을 편집하고, 밈(meme)으로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만큼이나 재미있는 순간들, 선수들의 개성 있는 제스처나 표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프로야구를 대상으로 한 2차 창작물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새로운 팬덤 생태계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또한 불합리한 볼판정 때문에 경기 흥미가 반감되고 있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야구 인기에 장점으로 작용했다.
 
각각의 구단들은 이제 야구팀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운동선수를 넘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됐다. 일상을 공유하는 브이로그(VLOG),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은 선수들을 팬들에게 더 친근한 존재로 만들었다.

지난 10월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삼성 김헌곤이 2점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사진 일간스포츠]


구단별 캐릭터와 굿즈의 성공도 주목할 만하다. 각 구단은 독자적인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개발하고,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확장했다. 야구 경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러한 상품들이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단순히 스포츠 관람을 넘어 문화적 경험과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프로 스포츠가 더 이상 경기장 안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속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팬들은 이제 경기 결과나 선수 활약상 못지않게,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구단 캐릭터와 굿즈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프로야구의 가장 큰 성공은 전통적인 야구 팬층을 넘어선 새로운 관객의 확보다. 특히 MZ세대와 여성 팬들의 급증이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전통적인 스포츠 팬과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승패보다는 경험을, 기록보다는 문화를 중시한다. 경기 결과보다 선수들의 매력과 스토리, 야구장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각 구단의 야구장은 '치맥'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식문화, 응원 문화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했다. 각 구단은 경기장 별 특색 있는 먹거리를 개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키즈존, 포토존, 팬 이벤트 공간 등은 야구장을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응원문화의 진화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의 퍼포먼스, 구단별 응원가와 응원 동작은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됐다. 여기서 승패는 더 이상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많은 젊은 관객들은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야구장에서의 시간 자체를 즐긴다.

한화이글스 홈구장 전광판 모습.[사진 한화이글스]


디지털 소비자는 또 다른 생산자다

한국 프로야구의 혁신은 다른 브랜드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적 가치에 더해 브랜드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MZ세대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둘러싼 문화적 경험과 커뮤니티를 원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문화의 공동 생산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승패를 넘어 문화를 창조한 한국 프로야구의 성공은, 브랜드가 어떻게 팬덤을 구축하고 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1000만 관중 시대의 개막은 단순한 수적 성장이 아닌, 스포츠의 문화적 진화를 상징한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는 경기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디지털 시대, 팬덤 기반 브랜딩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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