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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했다면…‘최선을 다했다’라고 다독이길 [이코노 헬스]

통상 부정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
정신건강 관리하려면 자책 떨쳐내야

부정성 편향이 생겨난 맥락에 주목하면 정신건강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욱 원장] 세상엔 신경 쓸 일이 참 많다. 진료실에서 들리는 이야기만 모아봐도 그렇다. 물건 수량을 책정·발주하는 일에서부터 깨알 같은 일정으로 가득한 달력에 빈 시간을 찾아 관리하는 일까지. 까딱 마음을 놓았다간 ‘실수할 거리’들이 곳곳에 도사린다.

특히 실수가 ①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해 ②결과까지 좋지 않다면 마음고생을 한층 심하게 겪는다. 평소처럼 마음을 제대로 다잡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 탓이다. 일종의 책임감이자 자책이다.

의류 업체 대표 A씨도 마찬가지다. A씨는 내담 직전까지 불안과 초조로 시간을 보냈다. 가을·겨울 시즌을 맞아 의상을 새로 출시했는데, 부하 직원이 공장에 옷 치수를 잘못 전달해서다. 평소 자신이 수치를 다시 확인하는데, 이번 시즌은 바빠 수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실수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치수를 정정하려 했지만, 공장에서는 이미 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물량 전체가 불량품이 될 상황이라 예상 손실은 막대하다. 직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A씨는 “직원을 잘못 뽑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배치한 내 탓”이라며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실수하지 않도록 제대로 신경 쓸 것”이라고 한탄했다.

A씨와 같은 상황에서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일 듯하다. 사람은 대체로 부정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서다. 이른바 ‘부정성 편향’이다. 10년간 사업을 잘 운영해도 1번의 실수 자체에 괴로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문제 상황을 잘 인식하는 일은 강점이지만 정신건강의 측면에선 좋지 않다.

부정성 편향이 생겨난 맥락에 주목하면 정신건강을 관리하기 쉬워진다. 진화심리학에선 위험한 상황을 빠르고 민감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불안과 초조 등 부정적인 감정을 활용해 여러 위기에서 벗어났다면 지금의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져야 한다. 먼저 실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라. 사람은 선택의 결과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후 확증편향’이다. 이는 사람이 실패할 때 자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패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A씨도 그랬다. A씨는 사업으로 바빴지만, 중요한 순서대로 해야 할 일을 잘 처리했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수치를 잘못 입력해 문제가 발생했던 적이 없다. 상담하는 A씨의 모습에서도 그가 철저한 성격이라는 점이 엿보였다. A씨는 이번 시즌 유달리 바쁜 탓에 부득이하게 실수했을 공산이 크다. 같은 상황에서 A씨가 아닌 다른 사람도 같은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핵심은 A씨도 이런 생각을 통해 문제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는 부담을 덜어내는 일이다.

실수를 핑계로 문제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 B군이 그랬다. B군은 모의고사만 보면 실수를 남발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소에 하지 않는 실수를 반복한다고도 호소했다. B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B군은 정해진 시간 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참지 못했다. 평소에도 문제를 천천히 풀었지, 시간 내 문제를 푸는 연습은 하지 않았다.

B군은 시험에 대한 불안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증상도 호소했다. 여기에 시간 압박이 더해지니 시험시간이 부족할수록 검산 없이 문제를 대충 풀었던 셈이다. B군은 시험이 끝난 이후 문제를 다시 풀면 종종 제대로 된 답을 계산했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모의고사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도 떨치기 힘들었다.

B군에게는 실수를 줄이기보다 시간 압박에도 긴장하지 않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의고사처럼 정해진 시간 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다. 상담 이후 B군 이전보다 실수가 확연하게 줄었다고 고백했다. 시험 점수도 자연스레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A씨는 업무의 과정을 ‘실수’라고 표현했다. B군은 ‘실수’를 핑계로 문제의 원인을 찾기를 회피했다. 두 사례 모두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하고 실수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자책을 떨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방식이다.

실제 A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치수 검수 체계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B군은 치료약제를 적절히 사용하며 시간 내 시험 문제를 푸는 방법을 연습해 긴장을 이겨낼 수 있었다. 방법을 찾기 어렵다면 전문가를 찾는 것도 좋다. 인지 치료를 받거나 치료 제재를 사용하면 자책으로 인한 불안을 떨쳐내기에 도움이 된다.

자책에서 벗어나는 습관을 만드는 일도 도움이 된다. A씨의 습관이 좋은 사례다. A씨는 실수했을 때 자신을 탓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최근 “내 탓은 당연히 한 번 하고, 남 탓도 한 번씩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책은 자연스러우니, 억지로라도 남들 탓을 한다는 뜻이다. 마음에 여유를 찾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다. 이는 좋은 ‘자가인지행동치료’이기도 하다. ‘내 탓’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상황에 따라 한 번쯤 남 탓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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