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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은 필요 없다 쓰는 대로 입력된다

자판은 필요 없다 쓰는 대로 입력된다

2010년 11월 3일부터 사흘간 상하이 엑스포에서 전자전시회 CEF(China Electronics Fair)가 열렸다. 세계 각국 2200개 IT기업이 참여한 대형 전시회였다. 이 기간에 유독 한 중소기업 부스에 관객이 몰렸다. 시선을 끈 것은 펜 한 자루였다. 단순한 펜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바로 화면에 나타났다. 요술처럼 신기한 펜은 바로 한국의 펜앤프리(Pen and Free)가 개발한 디지털 펜이다.

이 펜은 전시기간에 중국의 대형 가전유통회사인 베이징디지털차이나에 연간 3만 대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터키 등 10여 개국 바이어와도 계약을 협의 중이다.

“빌 게이츠가 2008년 서울에서 열린 한 IT 행사에서 10년 후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PC 입력 방식에서 음성으로 직접 지시하거나 모니터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죠. 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앞으로 디지털 펜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것입니다.”

펜앤프리 김충기(46) 대표의 얘기다. 지난 11월 중순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본사에서 만난 그는 CEF에서 첫선을 보인 디지털 펜의 뜨거운 반응에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펜앤프리는 김 대표에게 도전이었다. 그는 2007년까지만 해도 ILM(정보수명주기) 솔루션 업계에서 인정받는 탑엔드정보기술 대표이사였다. 데이터를 압축해 저장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거나 컨설팅하는 회사였다. 연간 2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그가 2007년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전시회(IFA)에 참가했다 나비시스닷컴(현 펜앤프리)이 선보인 디지털 펜을 본 후 몇 달 지나서였다. 당시 디지털 펜의 기술은 모니터에 글을 쓰면 화면에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펜은 투박하고 커서 글자를 쓰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펜을 본 순간 ‘세계적으로 먹힐 제품’이라는 감이 왔다고 한다.

귀국하자마자 나비시스닷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기술자 중심으로 세워진 회사는 심각한 자금난으로 연구나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 대표는 회사 경영진을 만나 여러 번 설득한 끝에 2007년 12월 그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그는 제품 기능과 디자인 연구에 몰두했다. 2년 반 넘도록 개발에 매달린 끝에 지난 8월 스마트폰용 디지털 펜을 만들었다. 현재 대부분 스마트폰은 정전압 방식의 LCD화면을 택한다. 손끝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에 반응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터치감이 부드럽고 한 번에 두 가지 터치를 동시에 인식하는 멀티 터치도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자판이 작아 오타가 많다는 점이다. “저처럼 손이 큰 사람은 조그만 자판을 정확하게 누르는 게 스트레스예요. 번번이 키를 두 개씩 누르게 되죠. 추운 겨울 밖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보셨나요? 전기가 통해야 조작되니까 장갑을 벗어야 하죠. 한 줄이라도 문자를 보내려면 손이 곱아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의 문자 입력을 편리하게 도와줄 제품이 바로 디지털 펜이다. LCD 화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쓰면 화면에 그대로 나타난다. 초음파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다. “보통 번개가 친다고 하죠. 실제로는 번쩍이는 불꽃 현상이 일어난 후에 ‘우르릉쾅쾅’ 하고 소리가 납니다. 빛과 소리에는 이동 속도의 차이가 있어요. 펜이 번개라고 보면 됩니다. 펜이 움직일 때마다 초음파(소리)와 적외선(빛)이 동시에 나갑니다. 안테나 역할을 하는 수신부(동작인식장치)가 소리와 빛의 속도 차이를 계산해 화면에 디지털 펜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 1964년생 한림대 수학과 삼성SDS·한국휴렛팩커드 2003~2007년 탑엔드정보기술 대표 2007년 12월~ 펜앤프리 대표

▎ 1964년생 한림대 수학과 삼성SDS·한국휴렛팩커드 2003~2007년 탑엔드정보기술 대표 2007년 12월~ 펜앤프리 대표

사용자의 고유한 글씨체는 물론 화면 위에 쓴 글씨를 명조체나 고딕체 등 미리 입력된 다양한 글꼴로 변환도 가능하다. 특히 펜이 움직일 때 LCD 화면이 받는 압력도 인식해 복잡한 그림까지 정교하게 읽어낸다. “자판을 이용하는 것보다 문자 보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보통 문자 보낼 때 이모티콘이나 숫자를 쓰려면 한글 자판에서 이모티콘이나 숫자 자판으로 바꿔야 합니다. 디지털 펜은 메모장에 글을 쓰듯 바로 문자나 이모티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디지털 펜을 응용해 태블릿PC용 디지털 펜도 개발했다. 펜앤프리는 현재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화면에 글을 쓸 수 있는 디지털 펜으로 다수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펜엔프리는 지난 10월 시제품으로 갤럭시S용 디지털 펜 5000대를 만들어 SK텔레콤에 납품했다. 현재 국내외 여러 스마트폰 업체와 납품계약을 앞두고 있다. 한 업체에 단독으로 공급할지, 모든 제품에 쓸 수 있는 디지털 펜을 내놓을지 고민 중이다.

“요즘 스마트폰 이용자 500만 시대예요. 1년 사이에 10배로 늘어났어요. 앞으로 스마트폰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펜이 인기를 끌 것으로 봅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손 안의 컴퓨터입니다. e-메일·인터넷·문서작성 등 세 가지 기능을 PC에서 가장 많이 쓰죠. 앞으로 편리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디지털 펜이 키보드를 대체할 것입니다. 마우스·키보드 등 컴퓨터 주변기기로 연간 3조원 매출을 올리는 로지텍처럼 되는 게 펜앤프리의 목표입니다.”

김 대표는 디지털 펜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도 개발 중이다. 지난 9월 전자칠판 ‘u보드’를 선보였다. 기존 전자칠판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약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세계적으로 기존 칠판을 떼어내고 60~70인치 대형 사이즈의 전자칠판을 설치하는 추세다. 한 대당 가격은 1000만원이 넘는다. 반면 ‘u보드’는 제품 구조가 간단하다. 디지털 펜과 전자칠판용 수신부만 있으면 된다. 기존 칠판에는 빔 프로젝트를 쏠 수 있는 화이트보드용 필름만 붙이면 된다.

여기에 디지털 펜을 이용하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글씨 크기와 색상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칠판에 적은 내용은 바로 저장하거나 프린트할 수 있다. 수신부에는 인터넷 연결, 화면 저장, 프린트 기능 등의 버튼이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기존 전자칠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설치가 간단해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최근 교육기자재 판매로 유명한 키드넷에 1100대를 판매하기로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판매망도 뚫고 있다. 2010년 말까지 해외에서 약 7000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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