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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프린터 업체 렉스마크코리아]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환골탈태

[Company 프린터 업체 렉스마크코리아]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환골탈태

서울 대치동에 있는 렉스마크코리아 본사에서 포즈를 취한 신현삼 대표.

7월 22일 오후 4시. 프린터 업체인 렉스마크코리아의 신현삼(46) 대표는 평소처럼 친홍쳉 아태지역 부사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비즈니스 콘퍼런스콜이었다. 신 대표는 이 통화에서 친홍쳉 부사장으로부터 귀를 의심할 만한 얘기를 들었다. “렉스마크코리아가 (본사에서) 반기마다 선정하는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아태지역 지사(Fast Start Challenge Country)’에 올랐습니다. 축하합니다.”

신 대표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럴 법도 했다. 렉스마크는 글로벌 프린터 기업이다. 세계 150여 개 지사가 있고, 1만4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한다. 본사의 연 매출액은 50억 달러(약 5조9700억원)가 넘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3% 안팎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2009년에는 매출이 35%나 줄었다. 본사 차원에서 한국시장을 버릴 수도 없었다. 한국의 레이저 프린터 시장 규모는 9000억원으로 세계 9위다.

2010년 11월 말. 렉스마크 본사에서는 ‘한국 CEO 교체론’이 나왔다. 신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올 2월 CEO에 취임했다. 그리고 단 8개월 만에 렉스마크코리아를 ‘침체’에서 ‘성장’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가 취임한 후 회사의 3분기 매출은 1분기 대비 85% 증가했고, 올 4분기에도 3분기보다 54% 늘어날 전망이다. 신 대표는 “생각보다 실적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김형진 차장은 “신 대표가 CEO에 오른 뒤 마법 같은 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웃었다. ‘신현삼 마법’의 실체는 무엇일까.



“발로 뛰지 않으면 관둬라”그는 한국HP(옛 삼성HP) 출신이다. 삼성이 잉크젯 프린터를 도입하는 데 일조했다. 2000년에는 36세의 나이에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한국HP에서 그는 ‘젊은 브레인’ 중 한 명이었다. 기업용 PC가 대세였던 시장에 ‘네티즌 PC’ 개념을 도입해 개인 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앞당긴 주인공이 그다. 한국HP가 선보인 ‘디지털 PC’라는 외국계 기업 최초의 한국 AS 및 판매 대리점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2007년 한국HP를 떠난 그는 비츠로젠 IT 컨설팅에서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그런 그에게 렉스마크가 영입을 제안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한국HP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친홍쳉 부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함께 일했으면 합니다. 렉스마크코리아가 위기에 빠져 있어요. 프린터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시는 IT컨설턴트로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였다. 렉스마크코리아의 경영사정도 내키지 않았다. 신 대표는 “렉스마크코리아는 인지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판매망도 넓지 않았다”며 “특히 한국에 지사가 설립(2004년)된 지 6년이 지났음에도 국내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수 차례 거절했음에도 친홍쳉 부사장은 영입제안을 계속했다. 그는 결심했다. “한번 도전해보자. 조직이 크지 않은 만큼 역전의 발판을 만들 수도 있다.”

렉스마크코리아의 내부사정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실적 부진으로 회사 규모가 축소되고 있었다. 직원들은 자신감이 없었고 팀워크조차 흐트러져 있었다. 신 대표는 ‘현장경영’을 펼쳤다.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조직 분위기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전남 장성군청에 납품한 프린터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3개월 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신 대표는 장성으로 곧장 내려갔다. 일부 직원은 수군거렸다. ‘100여 일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CEO가 나선다고 달라질 리 없다’는 것이었다. 속단이었다. 신 대표는 단 이틀 만에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일을 못하겠으면 말하라. 내가 직접 하겠다.” 렉스마크코리아에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긴장감이 흘렀다. 신 대표는 “그때는 극약처방이 필요했다”며 “현장경영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직에 불어넣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의 현장경영은 렉스마크코리아의 입지도 단단하게 했다. 그가 CEO에 오르기 전 렉스마크코리아는 본사에서 봤을 때 ‘애물단지’였다. 렉스마크코리아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본사는 “왜 한국만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기 바빴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농어촌공사에 납품한 프린터 문제였다. 이 프린터는 토너가 얼어붙는 하자가 있었다. 직원들이 수차례 확인했지만 기술적인 문제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본사는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렉스마크코리아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농어촌공사에 직접 내려가 문제를 확인한 신 대표는 본사에 ‘비즈니스 콘퍼런스콜’을 했다. 내용은 이랬다. “토너의 품질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라. 내 명예를 걸고 기술적인 문제가 있음을 확신한다.” 검사 결과 신 대표의 말이 옳았고 품질문제는 해결됐다. 그는 “우리의 문제제기가 옳다고 판단한 본사는 전 세계에 공급된 토너의 품질을 모두 체크했다”며 “이를 기점으로 렉스마크코리아의 위상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 대표가 바꿔놓은 건 또 있다. 고객경영이다. 렉스마크코리아에는 나쁜 관습이 있었다. 일단 총판에 제품을 납품하면 사후관리를 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영업팀’을 신설하고 발로 뛸 것을 주문했다. 렉스마크코리아가 공급한 제품이 어떤 고객에게 전달되는지, 또 문제는 없는지 실시간 체크하도록 했다. AS요청이 들어오면 제품을 무조건 교체하고 사후처리했다.

직원이 현장에 나타나고 AS속도가 빨라지자 총판 관계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렉스마크코리아의 제품을 팔아보겠다”며 찾아오는 총판 관계자도 있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47곳에 불과했던 판매처는 현재 73곳으로 늘었고, 올해 말까지 95곳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판매처가 늘어나니 선순환이 시작됐다. 판매량이 늘면서 재고가 줄고 매출은 향상됐다. 직원들의 자신감이 살아났고 무너졌던 팀워크가 회복됐다.



사후관리 강화로 신뢰 높여신 대표는 매주 두 번씩 직원들과 전체회의를 갖는다. 처음에는 고요했던 회의가 이제는 왁자지껄하다. 이런 변화는 직원들이 먼저 느낀다. 김형진 차장의 얘기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공식회의, 한 번은 티타임을 가져요. 처음에는 대표 혼자 말을 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직원들이 말하고 대표는 경청합니다. 조직 분위기가 이처럼 빨리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더 달라진 것은 본사의 태도다. “왜 한국만 문제를 일으키느냐”며 다그치던 본사가 이제는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다. 로널드 프레스티 남미·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올해 8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렉스마크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본사 차원의 마케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대표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그는 “렉스마크코리아는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고 말했다. “침체기를 벗어났을 뿐입니다. 모든 사업분야에서 혁신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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