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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동양그룹 부회장 - 실패 확률 99%라도 확신만 서면 저질렀다

구자홍 동양그룹 부회장 - 실패 확률 99%라도 확신만 서면 저질렀다

서울 여의도 동양종합증권빌딩 14층 집무실에서 인터뷰하는 구 부회장.

지난 10월 5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동양종합금융증권빌딩 14층을 찾았다. 부실기업 회생의 ‘마다스 손’으로 불리는 구자홍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업계에서 ‘행동주의 CEO’로 통한다.

“성공률이란 건 일단 저질러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높여가는 것입니다. 저는 실패할 확률이 99%라도 확신만 있다면 일단 저질러 봅니다.”

그가 꼽은 성공 비결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그는 옛 경제기획원 산업 3과장으로 일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1987년 14년의 공직생활을 접고 기업행을 택한다. 3만500원으로 시작한 공무원 월급이 시원치 않아서다. 활기 넘치는 민간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에게 경영법을 익히고, 95년 동양그룹 CEO로 스카우트됐다. 4개 계열사 사장을 거쳐 2007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이전에 그가 몸담았던 동양시스템즈를 제외한 모든 기업은 퇴출 직전의 적자 상태였다. 그는 15년여 동안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는 ‘핫 블러드’ 역할을 했다.



보험도 어찌 보면 사기 아닙니까?구 부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황당했던 어느 12월을 잊을 수 없다. 그는 98년 12월 28일 동양생명 CEO로 취임했다. 취임식을 마치자 업무보고가 물밀듯 쏟아졌다. 처음 올라온 서류는 회사가 지급여력 비율 미만으로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3일 만에 CEO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냈다. 이후 두 번의 구조조정으로 4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임금을 두 차례나 삭감했다. 남아있는 직원들도 사기가 떨어져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구 부회장은 아리송하면서도 독한 말로 직원들을 다독였다.

“보험도 어찌 보면 사기로 하는 거 아닙니까. 나도 제대로 사기칠 생각입니다. 내가 여러분 사기를 확 올려줄 테니 절대 당하지 마십시오.”

그는 석 달 동안 250개가 넘는 전국 영업소를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돌았다. 해당 지역 영업사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술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일일이 건네고 마신 소주가 3000잔이 넘는다고 했다. 많은 직원과 대적하고자 ‘1 대 3’ 건배를 청하기도 했다. 그가 한 잔 받으면 그 자리에서 세 잔을 돌려받는 형식이었다.

직접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 탓에 영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초코파이 만드는 회사에서 보험도 하느냐’는 조롱도 듣는다고 했다. 그는 고심 끝에 새로운 사명인 ‘수호천사’를 내걸었다. 고객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당시 모든 보험사는 사명을 걸고 영업하던 시절이었다. ‘수호천사’는 구 부회장이 업계 최초로 내놓은 보험 브랜드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쉽게 수호천사를 각인시킬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그는 베네통 루치아노 회장이 직접 자사 광고에 출연했던 게 생각났다. 누드 모델처럼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광고에 CEO가 출연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그 광고처럼 임팩트를 줄 게 없는지 골몰했다. 결국 자신도 수호천사 가입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최고라고 판단했다. 그는 신문 1면에 자신의 사진과 주민등록번호를 내걸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름과 얼굴과 생애를 걸고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라는 문구도 함께 내보냈다.

그는 로펌과 경찰에 본인 의사로 주민등록번호를 낼 경우 어떤 피해가 있는지 검토해 달라고 사전에 의뢰했다. 모두 선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이 광고 때문에 구 부회장이 피해를 본 것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누군가 그의 주민등록번호로 각종 포털사이트에 가입해 깜짝 놀랐다. 또 한 가지는 동갑으로 알던 학교 동기들이 발끈했다. 1월생이라 한 해 빨리 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이제까지 어린 놈이 반말을 했다’며 다그쳤다.



어려울 때마다 등판하는 구원투수그는 현재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대표이사를 맡지 않은 그룹의 부회장이다. 하지만 많은 임직원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를 찾는다. 세상 풍파를 모두 이겨낸 그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구 부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 산업 SOC 분야에서 부실기업을 가려내는 업무를 담당했다. 동양그룹에서는 한국 진출 10년이 넘도록 적자에 시달리던 아메리칸엑스프레스카드 한국 법인을 인수해 동양카드를 설립했다. 그가 취임한 첫해에 동양카드는 흑자 전환하면서 3년 만에 회원은 4배, 가맹점은 20배로 늘었다. 동양생명, 동양시스템즈, 한일합섬에서도 M&A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등판하는 구원투수였다. 요즘 CEO들이 직원 관리로 고민할 때마다 해주는 충고가 있다. ‘인재를 사자가 새끼를 키우듯 벼랑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끼는 인재일수록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그가 겪은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누가 나한테 왜 적자 나는 기업 CEO로만 갔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라고 그런 기업에만 가고 싶었겠습니까.(웃음)”

그는 구조조정 때 사람들을 내보낼 때가 가장 우울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붙잡고 싶은 사람을 붙잡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만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단다. 그럴 때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는 요즘처럼 마음이 편할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일본어 과외를 받고, 글도 쓰고, 필드에 나가 골프도 실컷 친다. 무엇보다 후배 경영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게 즐겁다. 그의 경영 스토리와 입담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가 회사 임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장한테 보고하라’는 것이다. 이는 그룹 오너가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구 부회장에게 믿고 맡겼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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