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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nterview]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주성엔지니어링 사장)

[Wide Interview]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주성엔지니어링 사장)



황철주 벤처협회장은 새로운 ‘벤처 르네상스’를 꿈꾼다.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인 그는 청년기업가나 작은 회사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도 열심히 뛴다. 수익을 올리는 데만 급급한 게 아니라 초보 벤처기업가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벤처투자자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으면서 창업·기업가 정신 확산, 벤처생태계 환경조성, 벤처기업 인력 양성·공급 지원, 상생협력 활성화를 포함한 8대 실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벤처기업은 한국 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여겨졌다. 특히 DJ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첨단 기술 등을 앞세워 지지부진한 굴뚝산업의 대안으로 주목 받았다. 기술 하나로 일약 갑부 대열에 오른 사람이 잇따라 나오면서 IT업계에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청년들은 말 그대로 모험 삼아 벤처에 뛰어들었다.

벤처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대학생들의 꿈은 대기업 사원에서 벤처사업가로 바뀌었다. 새로 나오는 기업치고 ‘벤처’ 아닌 곳이 드물었다. 새옹지마일까? 벤처에 대한 국민적 열기는 벤처 버블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식었다. 특히 벤처의 돈줄이던 코스닥시장은 허울뿐인 벤처가 줄을 이으면서 돈 넣고 돈 먹는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벤처업계에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을 동원해 주가를 올리는 작전세력이 판을 쳤고,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정부의 눈먼 돈이나 개인 투자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이 넘쳐났다. 그런 탓에 벤처 투자로 대박을 노리던 수많은 개인 투자자가 쪽박을 찼다.

급기야 2001년 1만1392개로 늘었던 벤처기업 수가 2003년에 7702개로 급감했다. 벤처 붐 초기 벤처산업을 이끌었던 1세대 벤처기업가도 하나 둘 사라졌다. 그나마 2006년부터 벤처 창업이 늘어 올해 10월 말 현재 벤처기업 수가 2만6361개로 늘었다. 숫자는 벤처 열풍 때보다 훨씬 많지만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MB정부 들어 IT업계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부의 벤처 지원은 예전 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주춤하는 IT시장 아쉬워”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인 황철주(52) 주성엔지니어링 사장(벤처기업협회장)은 벤처업계를 다시 살려낼 방법을 고심 중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부터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만들어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황 회장이 경영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장비회사로 코스닥 상장사다. 지난해 매출은 4234억원, 순이익은 367억원에 이르는 탄탄한 기업이다.

황 회장이 벤처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한국경제 발전에 벤처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는 벤처기업에서 한국경제의 희망을 찾고 있다. 벤처기업이 나서 새로운 기술이나 영역에 도전해야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뜻에서다. 이들이 고루 커야 기업 생태계가 더욱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지난해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으면서 창업·기업가 정신 확산, 벤처생태계 환경 조성, 벤처기업 인력 양성·공급 지원, 상생협력 활성화를 포함한 8대 실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벤처업체 간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하기 위해 선도 벤처업체와 초보 벤처업체를 연계해 지원하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11월 8일 경기도 광주의 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난 황 회장은 “요즘 한국경제를 보면 성장의 단초가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부터 늘어놨다. 무엇보다 한국경제의 핵심인 IT 시장이 주춤하고 있어서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혁신적인 IT제품이 등장해 한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요즘은 다음에 뭐가 나올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사·철 겸비한 젊은 벤처인 나올 것

4세대 통신 방식이나 스마트폰, 애플의 아이패드 등의 밑그림은 이미 1990년대 초반에 나와있었다. IT개발 로드맵에 들어 있다.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나 둘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다음 로드맵에 등장할 미래 제품과 기술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는 상황이어서 당분간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다”며 “더구나 미래 청사진을 만들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가 말하는 ‘청사진을 그릴 사람’은 엔지니어라기보다 새로운 문화를 제시할 산업문화 사상가를 뜻한다. 산업지도를 확 바꾸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기업가는 기술이나 제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철학과 문화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좋은 예다.

황 회장은 그러나 낙담하진 않는다. 머지 않아 벤처업계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껏 경기가 불안하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 벤처업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벤처기업이 한국 IT산업 나아가 한국경제의 기술적 토대”라며 “한국 주식시장도 벤처기업이 없었다면 다시 살아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를 사랑하는 젊은층이 새로운 그림을 그릴 것”이라며 “미래를 바꾸겠다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림은 빨리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랫동안 산업계에 발을 담근 지식인층이나 많은 정보를 가진 미래학자가 아닌 혁신의 의지를 가진 젊은층이 일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근거는 간단하다. 지식인층이나 미래학자는 대개 과거 50년 동안 ‘우주시대가 열린다’, ‘전기자동차가 나온다’처럼 지엽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어떤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룰 것이냐’와 같은 커다란 논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황 회장은 이들의 지식을 ‘그림을 그리는 기술’로 비유했다. 그는 “그림을 잘 베껴서 팔아봤자 얼마 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혼을 담은 그림은 명화가 된다”면서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지식)이 아니라 어떤 사상, 철학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은 과거의 것이자, 다른 사람도 아는 것이다. 그런 지식만을 강조해서는 의지·창조·의식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황 회장은 인문학을 강조한다. 공학을 배운 학생이 인문학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길 권했다. 공학과 인문학을 섭렵한 젊은이가 새로운 벤처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미래사회에 대한 큰 그림이 작은 기업에서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대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을 가진 기업은 구조적으로 혁신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 뿐만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황 회장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 ‘창업하는 사람’, ‘벤처인’ 등 작은 기업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기대와 달리 현재 국내 벤처기업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이끌 혁신 제품을 내놓기는커녕, 주목 받는 벤처기업조차 별로 없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의 벤처기업을 넘어 새로운 벤처기업, 새로운 벤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벤처문화 아래서는 청년사업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벤처정신으로 도전하는 사람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황 회장은 “기득권이 대중에게 희망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망과 기회가 없으면 수많은 능력 있는 사람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벤처기업 발전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은 투자자다. 황 회장은 흔히 ‘엔젤’로 불리는 벤처투자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국 벤처산업의 미래가 달라진다고도 했다. 요즘 황 회장이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올바른 엔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다.

벤처 버블이 꺼진 직후 서울 테헤란로에서는 “한국의 벤처기업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실패를 감춘다는 말을 비꼰 것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벤처산업 초기 창업자에게 돈을 대고는 원하는 수익률을 이끌어낼 때까지 창업자를 끊임없이 압박한 사례가 많았다. 벤처기업이 상장하면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값이 오른 주식을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고 빠져나갔다. 그런 방식으로 껍데기 밖에 없는 수많은 벤처기업이 설립과 상장을 거듭했고, 그것이 벤처 버블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니 투자자 입장에서 실패한 벤처는 없다. 황 회장은 “과거 20년 동안 벤처 투자자는 ‘내가 투자했으니 너는 나를 위해 돈을 벌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며 “벤처기업이 성공하는데 가장 기여한 사람은 투자자가 아니라 바로 핵심 인력”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 때문에 ‘철학 있는 엔젤’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단순한 금융 지원 수준을 넘어 창업자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 역할까지 바라는 것이다. 그는 “벤처 버블은 언제든 생길 수 있는데 투자자가 지금처럼 생각한다면 예전 같은 도덕적 해이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엔젤은 1년에 10명 이하만 투자해야 한다”며 “엔젤이 기업화·기관화 되면 더 이상 엔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돈을 잘 버는 엔젤보다 성공시켜줄 수 있는 엔젤’, ‘벤처인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엔젤’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강조하는 리더십은 ‘공정과 정의’다. “지금까지 공정과 정의는 힘 있는 사람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며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런 기준을 갖고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두목’과 ‘리더’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그는 “두목은 내가 이 자리까지 오는데 20년 동안 수없이 밤을 새우면서 고생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고생하라는 식으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리더는 내가 열 번 실수를 했으면 너는 열 번의 실수를 바탕으로 실수하지 마라, 내가 100시간 걸려서 한 것을 가르쳐 줄 테니 넌 1시간 만에 성공하라고 알려준다”고 말을 이었다.



리더는 남이 하지 않는 1%를 한다그는 “가장 훌륭한 리더는 부모와 같은 철학을 가졌다”고 표현했다. 황 회장은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면서 “그는 직원에게 뭘 하라고,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본인이 나서서 새로운 걸 만들었다”면서 “리더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1%, 다른 사람이 안 한 걸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목처럼 CEO가 직원들을 닦달하면 조금 더 싼 제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명품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주성엔지니어링에서 권위주의적인 기득권에 매달리지 않는다. 예컨대 경영실적을 직원에게 모두 공개한다. 이익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자 직원의 불만도 확 줄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는 위에서 아래에게 창조·혁신을 강조하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창조와 혁신은 그에 따른 리스크도 큰 만큼 CEO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처업계에서도 그런 CEO가 많이 나와야 벤처기업과 벤처기업 CEO의 평판이 달라질 것이란 주장이다. 벤처로 성공한 사람을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 벤처기업인이나 벤처기업에 도전하려는 사람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는 “벤처 버블 붕괴 후 벤처기업인은 ‘나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강해 젊은 사람들이 요즘 벤처를 꺼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벤처산업 초기 테헤란로의 벤처기업들은 모토로라 만큼 성장하려는 교만에 빠져 무너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서 개발한 기술과 인프라가 삼성과 LG 등을 자극해 이들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본의 IT, 구체적으로 워크맨을 죽인 게 한국의 MP3플레이어라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 전자산업이 기반을 다진 건 벤처기업이 워크맨을 죽이면서부터다”며 “대기업 전자회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벤처가 성장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선생님처럼 조근조근 말하는 스타일이다. 목소리 톤의 변화도 없어 마치 책을 읽는 듯했다. 그러나 말에는 힘이 느껴졌다. 특히 벤처기업이 한국의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고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금 새로운 벤처 붐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처럼 쉽게 부풀었다 꺼져버리고 마는 벤처 붐이 아니다. 정직하고 탁월한 기술자와 철학이 있는 엔젤이 만드는 새로운 벤처문화를 빚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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