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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댄싱퀸> - 웃음과 눈물 속에서 싹트는 희망

영화 <댄싱퀸> - 웃음과 눈물 속에서 싹트는 희망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언제던가.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꿈을 꾸는 시간보다 현실에 치이는 시간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1월 19일 개봉하는 ‘댄싱퀸’은 어느 사이에 ‘꿈’이라는 단어조차 가물가물해진, 중년을 코앞에 둔 부부가 뒤늦게 각자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2006년 코미디 영화 ‘방과 후 옥상’으로 데뷔한 이석훈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다.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박장대소하다가 눈물을 쏙 빼는 시나리오’에 반해 제작자로 나섰다.

지난해 100억 원대 제작비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퀵’과 ‘7광구’를 제작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둔 ‘제작자’ 윤제균이 소소한 코미디 드라마 댄싱퀸으로 ‘흥행 귀재’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다.

시사회에서 영화의 베일이 벗겨지자 “제대로 웃기고 제대로 울린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웃음과 눈물을 적절히 조율한 시나리오와 ‘생활연기의 달인’ 엄정화 황정민의 사람 냄새 사는 연기 덕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과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같다는 것. 엄정화 황정민이 연인으로 출연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본 이석훈 감독은 “황정민의 촌스러운 듯 진솔한 인간적인 매력과 엄정화의 톡톡 튀는 건강한 에너지가 내가 구상하던 주인공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아예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댄싱퀸 시나리오를 썼고, 이름도 그대로 빌려왔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엄정화 황정민 두 배우의 고유한 이미지가 댄싱퀸에 오롯이 녹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다. 황정민(황정민)은 7전8기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부와 명예는커녕 만날 무료 상담하기에 바쁜 가난한 이혼전문 변호사다. 인정 많고 털털한 성격 때문에 동네 주민들의 시시콜콜한 고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통에 아내 엄정화(엄정화)의 바가지를 묵묵히 견디며 산다. 한편, 정화는 한때 ‘신촌 마돈나’로 이름을 날렸던 화려한 과거가 있지만, 초등학교 동창 정민을 만나 결혼해 지금은 평범한 아줌마가 됐다. 왕년의 춤 실력을 밑천삼아 동네 헬스클럽의 에어로빅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댄스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남편 몰래 ‘슈퍼스타 K’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명랑한 아줌마다.

소소한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정민과 정화 앞에 예상치도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한 정민이 일약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자, 그를 향한 대중적 인기에 구미가 당긴 정치권에서 입질이 온다. 정민에게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권유한 것이다. 동시에 정화에게는 정말 댄스 가수가 될 기회가 찾아온다. 섹시한 ‘성인돌 그룹’을 기획하던 연예기획사에서 “가수 해 볼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자, 정화는 고민에 빠진다. 남편의 꿈을 따라 서울시장 후보 아내로 살 것인지,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댄스 가수의 꿈을 이룰 것인지.



윤제균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이 영화의 첫 번째 재미는 ‘서울시장 후보’와 ‘섹시 성인돌’이라는 도무지 공존할 수 없는 꿈을 꾸는 부부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남자에겐 야망이 있어야 하는데, 나한텐 그런 거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얘기를 딱 듣는 순간 뭔가 가슴이 벌렁벌렁 뛰면서 설레더라고.” 생전 처음, 남자로서 인간으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설렘’에 가슴이 뛰는 남편에게 차마 “난 댄스 가수가 될 거야”라고 말하지 못하는 정화는 이중생활을 결심한다.

낮에는 예비 정치인의 조숙한 아내로, 밤에는 화끈한 섹시 댄스를 추는 성인돌 ‘댄싱 퀸즈’의 멤버로 스파이 뺨치는 이중생활을 벌이는 정화의 고군분투는 웃음을 준다. 한편, 처음엔 이른바 ‘얼굴 마담’으로 정치계에 발을 디뎠지만, 점점 시민을 위한 ‘좋은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민의 행보는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권력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윗분들이 정해 놓은 법안은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시민들과 함께 생각해 보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정민을 보며, 많은 관객들이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낄 법하다.

만약 엄정화와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빤한 ‘도덕 교과서’ 같은 드라마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배우와 가수로 성공적인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엄정화는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스크린 속에서 내공을 뿜어낸다. 평소엔 수더분하고 털털한 모습이지만 무대에 오르면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모습이나, 좀 과하다 싶은 코믹한 상황에서도 현실에 발을 착 붙인 생활 밀착형 연기를 보여줄 때는 ‘배우 엄정화’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황정민 역시 최근 영화에서 보여줬던 비장함을 털어내고 특유의 진솔한 인간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이미 세 번이나 부부와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배우의 ‘10년은 산 듯한’ 현실적인 부부 연기도 영화에 쫀득한 재미를 더한다.

이석훈 감독은 “극중 황정민의 캐릭터가 몇몇의 실존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질문에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삼은 건 아니다”라며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긴 뒤, 다시 현실이라는 냉혹한 세상을 향해 극장 문을 나설 때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그만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댄싱퀸은 정색하고 봐야하는 정치 영화는 아니다. 물론 정민과 정화는 소시민들에게 일종의 ‘영웅’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 역시 꿈을 향해 움직이기 전까지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엄정화는 “꿈을 잃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영웅 아닐까”라고 말했다.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기에 보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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