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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 과잉 복지 논란 - 유럽은 복지개혁, 한국은 복지포퓰리즘

정치의 계절 과잉 복지 논란 - 유럽은 복지개혁, 한국은 복지포퓰리즘

‘선거의 해’에 들어서며 여야의 복지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 태어나는 순간 양육비를 주고 유치원부터 초·중등교육은 공짜다. 중소기업에는 취업 지원금을 준다. 창업하면 창업지원금을 받는다. 주거복지비, 무상의료, 노령연금과 요양보험 등 끝이 없다.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가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이야기인데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하자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추산만 있을 뿐이다. 앞으로 5년간 여당은 89조원이면 된다고 하고 야당은 165조원이 든다고 한다. 정부는 340조원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당은 세입 확대로 40조원, 세출 축소로 49조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야당은 재정개혁으로 62조원, 복지개혁으로 32조원, 조세개혁으로 71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직성 예산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을 고려하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안보 관련 예산을 줄이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 아니면 증세 밖에 길이 없다.



재원 마련 대책은 제각각4대 공적연금 중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적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두 공적연금의 적자는 2조7438억원을 기록했다. 당연히 국고지원을 받았다. 건강보험 역시 2010년 1조2994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향후 5년간 25조원 정도의 국고지원이 필요할 전망이다. 고용보험과 기초노령연금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면 세수의 원천인 잠재성장률은 3%대 중반으로 하락하고, 10년 후에는 2%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주장대로 세율과 조세부담률을 올리면 기업의 해외 이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투자심리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복지 선진국하면 유럽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이 아니라 중부지역과 북유럽 얘기다. 영국은 복지의 고전인 ‘베버리지보고서(1942)’를 토대로 전후에 추진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유명하다. 국가는 국민의 안락한 집과 같은 존재라는 ‘국민의 집(1928)’ 개념에 바탕을 둔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연금·실업보험 등 완벽한 사회보험제도로 잘 알려진 독일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1950년대 도입기를 거쳐 1960~1970년대 복지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복지제도 개혁을 시작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유가 뭘까. 첫째는 각종 복지정책을 감당하기 위해 높은 세금을 부과했음에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인플레이션 상황에서 1979년 2차 석유파동이 발생하자 스태그플레이션을 더 심각해졌다. 복지국가의 기본 틀은 이때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도 서독 복지제도를 적용한 독일은 더 큰 어려움에 빠졌다.

둘째는 세계화 열풍이다. 기업이 세금과 임금이 낮은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이 어느 나라에 투자하느냐가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높은 법인세를 매기는 일이 어렵게 됐다는 의미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진전도 한 몫 했다. 고령화는 연금수급 기간을 길게 하고 저출산은 새로운 세대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종래의 연금보험료로는 연금기금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기업이 해외로 떠나는 형편에 기업부담금을 올리기도 어렵다. 결국 연금수급연령을 늦추고 연금수령액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

여건이 나빠지자 과도한 전통적인 복지제도로는 안 된다는 반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대두되면서 중도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정치 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정치철학적 기초가 된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독일 사민당 정부의 ‘신중도노선’, 스웨덴 사민당의 ‘제3의 길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 하는 새로운 복지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영국은 1979년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복지제도에 대한 개혁을 시작했다. 20년이 흘러 1997년 노동당 정부가 정권을 잡았지만 종래의 좌파적 복지제도로 회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3의 길’에 토대를 둔 중도적인 복지제도를 추구했다. 그 방향은 1999년 6월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 수상과 공동으로 발표한 ‘슈뢰더·블레어 공동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공동선언문은 “지난 20여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적인 방임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1970년대처럼 적자재정과 대규모 국가개입을 부활시키는 것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시에 “구좌파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성장을 기초로 재정건전성이 유지하는 ‘일하는 복지정책’을 천명했다.

그럼에도 개혁은 철저하지 못했다. 현재 근로능력계층의 약 25%인 500만 명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데 근로 인센티브가 미약한 탓에 이들 중 140만 명이 9년 이상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고 있다. 복지의존성이 높은데다 복지의 종류와 전달체계가 복잡해 부정수급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캐머런 보수당 정부는 3월에 여러 복지급여를 하나로 묶어 통합 급여를 신설하고, 구직활동 의무를 채우지 못하면 실업급여 제재를 가하는 복지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생활수준 보장을 목표로 하는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이 발달한 독일 역시 1980년대 이후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1984년에 보험료율을 조정하고 지출을 줄여 연금재정 안정화를 시도한 데 이어 1992년에는 연금개시 연령을 종전의 60~65세에서 65세로 늦추고, 수급액을 줄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1997년에는 연금 수준을 종전의 임금 70%에서 64%로 낮췄다. 2003년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어젠다 2010’을 발표해 전통적인 사회시장경제에 시장적 요소를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동시에 2000년부터 ‘하르츠 개혁’이라 불리는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그 핵심은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한편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종전의 최장 32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는 것이다. 고용중개소의 직업 알선에 응할 의무, 직업훈련 참가의무 등 조건도 강화했다.

메르켈 정부는 최근 들어 고령화에 대응해 연급수급 개시연령을 다시 67세로 연장하고 투자촉진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했다.

과도한 복지 탓에 1960~1970년대 국가부채가 급증해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스웨덴 역시 개혁을 시작했다. 1991년 대대적인 세제개혁을 단행했는데 75%에 이르던 소득세는 50~55%로, 57%의 법인세는 26.5%로 인하했다.



‘퍼주는 복지’ 아닌 ‘일하는 복지’로 가야상속세와 부유세도 폐지했다. 1992년에는 노령복지 축소 등 복지제도에 손을 댔다. 1999년에는 소득에 비례해 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연금제도 개혁에도 나섰다. 이처럼 경제논리가 사회정책을 포용하는 개혁의 결과는 달콤했다. 재정적자는 흑자로 전환했고 정부 부채 줄어들었다. 지속가능한 복지제도가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은 높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를 추구하는 성장친화형 복지제도로 전환했다. 성장이 훼손된 탓에 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정교한 제도가 여야와 노사정 등 모두의 폭넓은 참여에 의해 도입됐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의 복지개혁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 복지는 결국 저성장과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 하는 성장친화형 복지제도를 채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퍼주기식 복지보다는 근로촉진적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45% 정도의 취업자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등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는 만큼 이를 개선해 세원을 넓혀야 한다.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전반적인 세율 인상을 자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복지전달체계를 구축 역시 시급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야가 투쟁을 지양하고 국가 장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바탕으로 고성장·고복지 제도를 모색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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