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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북 주민 5년 먹일 돈 허공에 쏜다

Issue - 북 주민 5년 먹일 돈 허공에 쏜다

옛 소련 미사일 분해로 기술 익혀…3대째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집착



“과학자와 기술자를 사회적으로 우대하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서 이들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5일 이런 지시를 내렸다.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사망하기 이틀 전이다. 노동신문은 12월 3일자 기사에서 “간곡한 유훈(遺訓)을 우리곁을 떠나시기 전 바로 이틀 전까지 남기셨다”면서 “이런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과학자·기술자들은 장군님을 과학과 기술로 충직하게 받들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런 사연을 전하면서 ‘우리 조국을 핵 보유국으로. 인공지구위성 제작국, 발사국으로’라는 구호를 소개했다.

정부 당국은 노동신문 글이 주민들에게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기울인 김정일의 노력을 부각 선전하려는 의도 때문에 나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2월 1일 북한이 로켓 발사계획을 밝히면서 첫 대목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우리나라에서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게 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얘기다.



1990년대부터 이란·시리아에 역수출전문가들은 핵 개발 프로그램과 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위한 필요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기술과 자금,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의지다. 막대한 돈과 과학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특히 지도자의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끊임없이 추진해 온 건 부자세습을 통해 확고한 정책의지가 전수됐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함북 무수단 기지에서 첫 장거리 로켓인 대포동 1호(북한은 광명성 1호 위성을 실은 백두산 1호로 호칭)를 쏘아 올렸다. 발사 1년을 맞아 조선중앙방송은 이듬해 8월 3일 보도에서 “우리나라에서 인공지구위성 연구 분야에서 성과가 이룩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며 “수령님(김일성 주석)께서는 생전에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구위성을 쏘아 올릴 때가 되었다’고 교시하셨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처음으로 미사일 개발에 관여한 건 중국과의 설계 협력방식이었던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1976년 사거리 600㎞에 달하는 중국의 DF-1 미사일 설계에 참여했으나 중국 측이 이 계획을 중단함에 따라 무산됐다. 북한은 곧바로 중동 쪽으로 시선을 돌려 역설계 방식의 기술개발에 나섰다. 이집트에서 옛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들여와 분해·분석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북한은 이를 토대로 1984년 스커드A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사거리 300㎞짜리 스커드B도 제작했다. 이어 1986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2년 뒤에는 성능 개선과정을 거쳐 500㎞짜리 스커드C를 개발하는 성과를 이뤘고, 1991년부터는 이란과 시리아에 역수출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기술획득을 위해 외교채널과 해외 정보망을 통해 밀수·절취 등의 불법행위도 저질렀다. 대북제재가 시행되는 가운데 조총련을 통해 일본의 정밀전자 장비와 부품 등을 확보했다. 지난해 7월에는 북한 공작원 2명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사체 엔진 연료공급장치 개선과 관련된 비밀 문서를 훔치려다 체포된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돼 망신을 사기도 했다.

미사일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본격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에 나섰다. 옛 소련이 1950년대에 개발한 잠수함 발사 탄도탄 SS-N-4와 SS-N-5, 중국이 1960년대에 개발한 CSS-2 미사일을 토대로 사거리 1300㎞인 노동1호를 만들었다.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위협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1993년 5월 노동1호를 실험발사하고 97년 실전배치가 이뤄지면서다.

북한은 노동1호를 발전시킨 첫 다단계 로켓인 대포동 1호를 개발해 이듬해 8월 시험발사 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과 잇따른 수해로 인한 식량난 속에 대포동 1호 개발이 가능했던 건 역시 최고지도자의 의지 때문이었다. 12월 3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1995년 4월 국가과학원을 찾아 “설사 공장은 숨이 죽어도 과학기술 발전만은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당시 공장 가동률이 25% 수준에 불과하고 200만~300만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상황에서도 미사일 개발과 시험발사 준비에 매달렸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김정일 시대가 본격화 한 2006년 7월에는 대포동 2호를 시험발사 했다. 대포동 1호 발사 이후 8년만의 시도였지만 1단 분리에 실패하면서 발사 40여초 만에 공중폭발 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에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시도는 이어졌다. 2009년 4월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나란히 로켓발사 지휘소를 찾아 지켜보는 가운데 은하2호 로켓이 발사됐다. 3800여 km를 비행했지만 3단 분리에 실패했다. 김정은 집권 시 후계자 시절의 업적으로 삼기 위한 치밀한 우상화 선전작업이 준비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게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집권한 이후 첫 작품으로 4월에 은하3호를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100회 생일에 맞춘 이벤트였지만 460km를 날아가는데 그쳐 ‘강성대국의 꿈이 공중폭발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스타일을 구겼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2월 5일 “4월 발사 때의 결함을 일주일 만에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실패 8개월 만에 기술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북한은 지난 여름 이후에도 이란의 미사일 기술자를 불러들여 추가 발사를 위한 기술보완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우리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는 엔진성능 개선을 위한 연소 실험 등이 수 차례 진행된 정황도 드러났다.



발사에 13억 달러 들 듯김정은은 4월 발사 때 외신기자를 초청해 동창리 발사장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발사에 실패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다. 이번의 경우 해외 언론의 초청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고, 지난번과 달리 주민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제재를 공언한 상태다.

정부 당국은 북한이 동창리 발사장 건설에 4억 달러, 4월 실패한 것과 이번 장거로켓 개발에 6억 달러, 관련 설비 제작에 3억 달러 등 모두 13억 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 주민 전체가 4~5년 정도 먹을 수 있는 옥수수 400여만t을 살수있는 돈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개발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 권력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집착 때문”이라며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의 미망 속에 민생이 한계상황에 달하고 있어 결국 김정은 체제의 파국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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