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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 ‘철의 여인’ 세계 정상을 즐기다

Golf - ‘철의 여인’ 세계 정상을 즐기다

스테이시 루이스 청야니 밀어내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 척추측만증 딛고 일어서
스테이시 루이스(왼쪽)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RR 도넬리 파운더스컵 3라운드에서 캐디 트래비스 윌슨에게 퍼터를 건네고 있다. 트래비스 윌슨이 실수로 16번 홀에서 2벌타를 받았지만 루이스를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척추에 금속 막대기가 들어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골프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골프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내가 여기에 서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며,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청야니(24·대만)의 109주 독주를 끝내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스테이시 루이스(28·미국)의 말이다. 그는 11세 때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고도 일어선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다. 수술과 재활, 거듭된 역경을 딛고 20년 만에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루이스는 3월 1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RR 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 최종 4라운드에서 8언더파(버디 9, 보기 1개)를 몰아쳐 최종 합계 23언더파의 코스 레코드 기록으로 우승했다. 전날 미야자토 아이(28·일본)에게 4타 뒤져 있었지만 마지막 날 집중력을 발휘해 오히려 3타 차의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시즌 2승째이자 통산 7승째였다. 이날 우승으로 그는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8세 때 처음 골프채 잡아그의 유년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8세 때 골프 클럽을 처음 잡은 그는 세계 최고 프로 골퍼를 꿈꿨다. 하지만 11세 때 허리뼈가 휘는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10대 시절 7년이 넘도록 하루 18시간 척추보호대를 차고 지냈다. 그런 역경 속에도 틈만 나면 교정기를 풀고 골프 클럽을 휘둘렀다.

18세 때인 2003년 척추에 티타늄 고정물과 5개의 나사를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나사가 뼈를 쑤시는 고통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수술 뒤 6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낸 루이스는 일어설 수 있게 되자 곧장 필드로 돌아왔다. 루이스는 “막대와 다섯 개의 나사를 척추에 집어넣는 수술을 받아야했다. 겨우 10년 전의 일이다.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으며, 그런 일이 일어날 줄도 몰랐다. 내 얘기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의사가 다시 골프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미국 아칸소대에서 회계와 재정을 전공하며 골프 선수로 활동한 루이스는 2007년 LPGA 투어 아칸소 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했다. 하지만 폭우로 대회가 1라운드짜리로 축소되는 바람에 공식 우승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번에도 시련은 그를 단련시키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그 해 말 L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 응시해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프로 무대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2009년 정규 투어에 데뷔한 루이스는 상금랭킹 47위(29만8421달러)라는 평범한 성적을 냈다. 2010년에도 상금랭킹 21위(56만6400달러)로 주목 받지 못했다.

이쯤 되면 평범한 사람에게는 깊은 슬럼프가 찾아오기 쉽다. 루이스는 달랐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독종이었다. “척추측만증을 앓으며 투지와 인내를 배웠다”는 그는 “하루하루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성취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큰 가치”라며 조급해하지 않았다.

투병 생활에서 얻은 ‘기다림의 미학’은 2011년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이라는 첫 결실로 다가왔다. 당시 세계랭킹 1위 청야니를 꺾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루이스는 지난해 4승을 거두며 미국 선수로는 18년 만에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올 시즌에는 시즌 세 번째 대회인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 이어 네 번째 대회인 RR 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에서 연속 우승하며 청야니의 109주 천하를 무너뜨렸다.

2006년 2월 여자 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뒤 일곱 번째, 미국 선수로는 2010년 세 번에 걸쳐 5주간 1위에 올랐던 크리스티 커(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골프여제의 자리에 올랐다. “미칠 듯이 좋다. 세계 정상은 지난해 중반 이후로 일종의 나의 목표였으며, 정말 이렇게 빨리 이루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1위 자리를 즐길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청야니가 너무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1위 자리를 즐길 생각이다.”

루이스는 “이제 아프지는 않지만 아직도 내 척추에는 나사가 박혀 있다. 그러나 미국 최고의 선수, 나아가 세계랭킹 1위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다”며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루이스가 골프여제에 오른 건 ‘가족의 힘’이 컸다. 특히 그는 2011년 3월 31일 84세를 일기로 작고한 할아버지 알 루이스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로 투병한 할아버지 알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손녀 루이스에 대한 사랑만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투병 중에도 손녀의 경기를 수없이 반복해 봤다고 한다.

루이스는 “할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정신적 선생님이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곧장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다. 그럼 다음 날부터 샷이 좋아졌다”고 했다. 알은 2011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 소식에 충격을 받은 루이스는 대회 출전을 포기하려다가 가족들의 만류로 울면서 대회에 나섰다. 그리고 LPGA 투어 첫 우승을 할아버지 영전에 바쳤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아버지 데일 루이스(56)가 대신했다. 루이스가 프로로 데뷔하기 전까지 캐디백을 멘 데일은 루이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HSBC 위민스 챔피언스 우승을 함께 하지 못한 데일은 3월 18일 루이스가 RR 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 우승으로 세계 1위가 되는 순간을 함께 했다. 루이스는 “가족이 보는 앞에서 랭킹 1위에 올라 더 기뻤다”며 “가족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가족 사랑이 없었다면 힘들었던 순간을 즐겁게 기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척추질환 앓는 어린이 도와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루이스는 사랑을 나누는 데도 익숙하다. 루이스는 미국 척추측만증학회에 자신의 이름을 딴 기부 창구를 만들어 척추질환을 앓는 어린이를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루이스는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는 RR 도넬리 LPGA 파운더스컵 3라운드에서도 화제가 됐다. 캐디 트래비스 윌슨이 실수로 16번 홀(파4)에서 발로 벙커의 상태를 테스트하는 바람에 2벌타를 받는 불행이 찾아왔다. 단독 선두 미야자토와 2타 차였던 타수가 순식간에 4타 차로 벌어졌다.

하지만 루이스는 캐디를 탓하지 않고 “우리에게는 아직 역전 우승의 가능성이 살아있다”며 오히려 위로했다. 그는 “전날 나보다 윌슨이 더 상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스에서 불 같은 성격 때문에 ‘괴팍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마음만은 한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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