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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REPORTAGE - 국제도시로 날갯짓하는 거제

Features REPORTAGE - 국제도시로 날갯짓하는 거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플랜트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경제 규모 커지고 외국인 늘어나



“사실은 있잖아… 서울이 너무 가보고 싶다. 니 서울 가봤나?” 소년이 뭐든지 해주겠다고 말하자 소녀가 한 말이다. KBS2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거제도’에서다. 방영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프로그램 코너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거제도’에는 1+1을 11로 알고 영어 11을 “텐 원”이라며 우쭐해하는 순박한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코너의 배경인 거제도는 우체부가 바깥 소식을 전해주고, 해녀복 차림의 엄마가 돌아다니는 영락없는 시골이다. 두 주인공 또한 세상 물정에 어두울 뿐 아니라 촌스러운 옷차림에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골 아이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고 거제도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거제도를 이루는 거제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산업도시 중 하나다. 지역내 총생산(GRDP)은 2010년 기준 9조8000억원이며, 이를 거제시 인구로 나눈 1인당 GRDP는 4300만원에 달한다. 서울(2400만원), 부산(1700만원) 등 대도시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GRDP는 해당 지역의 총생산액을 추계한 것으로 개별 지역의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통계지표다. 주민 1인당 소득도 2000년대 후반에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서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1인당 국민총소득 2만2708달러보다 1만 달러 가량 높다.

거제시 경제규모가 이처럼 거대한 것은 이 지역에 위치한 두 조선소 덕분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해양조선 옥포조선소다. 거제 시청 조선경제담당과 강영호 과장은 “두 조선소가 거제 경제의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근무하는 직원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약 3만9000명, 대우조선해양 직원은 4만2000명 가량이다.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인구만 거제시 전체 인구 24만5972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이 부양하는 가족들까지 고려한다면 조선소와 연관되지 않은 거제 시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두 조선소는 일손이 모자란다. 강 과장은 “밖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걱정이라는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불황에 빠진 조선업 대신 새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해양플랜트 산업 덕분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42억8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물량을 수주하며 조선업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는데, 전체 수주의 70%가 넘는 105억 달러를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채웠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10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한 것은 세계조선업계에서 처음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총 9기의 해양플랜트 건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업은 오래 해온 사업이다보니 경험이 축적됐고 숙련공도 많지만 해양플랜트는 그렇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양플랜트는 고용 창출 효과가 상선에 비해 매우 크고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한다.” 선박 건조에 투입되는 1일 인력은 200명 남짓하지만 해양플랜트에는 1500명 가량이 투입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1년 새에만 인력을 협력사 포함 9000여 명이나 늘린 이유다.

해양플랜트 산업이 활기를 띄면서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유입도 크게 늘었다. 거제시 외국인은 지난해 기준 9400여 명으로 전체 주민의 4%에 달한다. 2% 안팎인 타 지역의 두 배 수준이다. 이처럼 몰려드는 외국인들은 거제시에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미쳤다.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은 부동산 시장이다.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거제 거주 외국인들은 산업 특성상 거제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조선소에 일감이 생기면 수천명의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일을 한 뒤 귀국한다. 때문에 단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아파트 임대사업이 활발하다. 이런 임대사업을 ‘렌탈’이라고 부른다. 거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 소유자가 외국인에게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고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형태다. 30평대 아파트의 렌탈비는 월 2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거제시 30평대 아파트 시세가 2억 중반 정도이니 월세 220으로 계산하면 연수익률 10%가 넘는 셈이다.

거제시에서 아파트 렌탈은 10여 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익률이 높아지고 수요가 상승하면서 거제 주민은 물론 외부인들까지 렌탈에 뛰어든다. 장기 출장이나 이사로 집을 비우면서 매매 대신 렌탈을 택하는 주민들과 달리 외부인들은 투자 목적으로 유망한 매물을 구입한다.

거제시 소재 대산공인중개사의 김채화 실장은 “분양 중인 인기 아파트들은 대부분 외부인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집 선호도가 뚜렷하다. 일터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은 웬만해선 택하지 않고,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한다.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조건을 갖춘 아파트는 프리미엄(분양권을 넘겨 받을 때 지불하는 추가금)이 3000만 원 이상 붙을 정도로 경쟁이 심하다.” 융자를 안고 집 수십 채를 렌탈 운영하는 개인도 있다고 김 실장은 말했다.

아예 렌탈을 목적으로 지어지는 아파트도 있다. 대우건설이 거제시 아주동에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거제 마린프루지오 아파트’는 렌탈 중개업체와 손을 잡고 모델 하우스 방문객들에게 수익률을 설명하는 등 렌탈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최근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원룸도 렌탈이 활발하다.

옥포에 위치한 펍 ‘트랙스’에서는 라이브 밴드 공연을 즐길 수 있다(왼쪽). 옥포국제학교는 늘어나는 외국인 자녀를 수용하기 위해 확장·이전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외국인은 주로 고급 인력들이 많아 아파트 렌탈이 주로 이뤄졌는데 해양플랜트 산업 활황으로 일손이 달리자 저임금 노동자들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김 실장은 분석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인근은 크고 작은 빌라들로 가득한 ‘원룸촌’이다.

외국인이 많다 보니 외국인 대상 서비스업도 발달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실부터 식료품점, 음식점 등 업종도 다양하다.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옥포 일대에는 이태원을 방불케하는 외국인 거리가 조성됐다. 옥포1동 옥포 국제중학교 인근에는 약 1㎞에 걸쳐서 서양식 술집과 클럽, 식당이 즐비하다. 오후 6시가 넘어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퇴근하기 시작하면 이 일대는 영어 네온사인으로 가득찬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내국인보다 외국인과 더 많이 마주칠 정도다.

그러나 이태원과 달리 이 지역 외국인 술집은 내국인에게 개방적인 편은 아니다.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써붙인 업소가 적지 않고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업소를 들어가봐도 한국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옥포의 한 외국인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김신영 씨는 “나는 고현동 주민인데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이곳에 외국인을 상대하는 술집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거제 시민들조차도 이 외국인 거리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외국식 음주문화를 즐기러 옥포를 찾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끔 보이는 한국인은 대부분이 옥포 주민이라고 김씨는 덧붙였다. “손님의 대부분은 영국, 노르웨이 등 서양인이다. 동남아인도 종종 오지만 한국인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문제점도 있다. 이곳 외국인 술집 대부분은 여성 종업원이 손님의 술시중을 들어주는 소위 ‘착석바’다. 손님이 종업원 몫의 술 값을 지불하면 종업원이 옆에 앉아 함께 술을 마셔준다. 3월 초 노르웨이에서 출장으로 거제를 방문한 이겔 솔라 씨는 “남자 손님이 들어가면 여성 종업원들이 술을 사달라며 접근하는 업소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업소에서는 손님 허벅지에 손을 올리거나 팔을 쓰다듬는 등 스킨쉽 장면은 물론, 블루스를 연상시키는 끈적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외국인이 종업원을 일으켜 세워 허리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지역 외국인 술집에서 여성 고객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종업원은 “이곳 클럽이나 바는 외국인 남성만 대상으로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작은 바 몇 곳을 제외하면 남녀가 함께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내국인 출입이 불가능한 술집에서는 필리핀 여성을 종업원으로 쓰는데, 그런 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들밖에 모른다고 이 종업원은 귀띔했다.

최근에는 옥포 외국인 거리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강 과장은 “밤에 젊은이들이 놀만한 곳이 없다 보니 주말이 되면 대부분 부산으로 빠져나간다”며 “옥포 외국인 거리를 이태원 같은 명소로 만들면 거제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길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2010년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된 이래 거제시 상권은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관광객들도 낮에 와서 거제를 둘러보고 저녁에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옥포 외국인 거리가 ‘거제의 이태원’으로 거듭나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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