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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사 분쟁 백화점 된 어울림그룹

민·형사 분쟁 백화점 된 어울림그룹

“사장 탓에 회사 비리 백화점” vs “적대적 M&A 반란” … 체불·횡령·배임·분식회계·사기 망라



“이건 완전히 막장 드라마에요.” 잘 나가던 한 벤처기업 경영진과 전직 임직원이 1년 넘게 진흙탕 싸움 중이다. 벤처 1세대 보안업체, 그리고 국내 최초의 수제 스포차카 ‘스피라’로 잘 알려진 어울림그룹 얘기다.

전직 임직원은 현 경영진을 상대로 20건이 넘는 소송·고소·고발을 제기했다. 경영진은 한때 회사를 함께 키운 임직원을 “회사를 빼앗으려는 반란군”이라며 맞고소 했다.

횡령·배임·사기·분식회계, 관세법 위반, 대외 무역법 위반, 외국환 거래법 위반, 명예훼손, 근로기준법(임금 체불) 위반, 증거인멸 교사, 재산국외도피, 모욕죄, 가장 납입, 업무방해. 허위사실 유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그들이 다투는 죄목들이다. 전직 임원은 “기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막장 드라마”라고 했다.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5월 1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2호 법정. 64세의 한 여인이 피고인석에 섰다. 어울림정보기술·어울림엘시스·어울림네 트웍스 대표인 설진연씨다. 그는 이 회사의 실질적 사장인 박동혁(36) 대표의 모친이다. 약 10분 동안 열림 심문에서 설 대표는 “대표이사가 구속되면 직원과 거래처가 동요해 회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선처해주시면 체불된 급여·퇴직금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따르면, 설 대표는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가 4월 말 강제 추방돼 송환됐고, 5월 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앞서 설 대표는 직원 9명에게 임금 4억5000만원을 체불한 혐의로 성남지원(형사 2단독)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올 3월 22일 열린 재판에 설 대표는 출석하지 않았다. 그는 550억원의 횡령·배임을 하고 근로자 114명에게 42억원 상당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도 받는다.

박동혁 어울림그룹 대표는 “모친이 도피한 게 아니라 신병 치료 차 가족이 있는 말레이시아에 갔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전직 임원은 “박동혁 사장이 실제 경영을 했고 설진연씨는 자금 관리 정도만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송으로 경찰·검찰에 불려 다니느라 경영을 할 수 없어 대표이사를 모친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혁 대표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96년 인터컴소프트웨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2004년 어울림정보기술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어울림정보기술은 한때 국내 가상사설망(VPN)과 방화벽 시장 1위를 한 1세대 보안업체다. 박 대표는 넷시큐어 테크놀로지(현 어울림엘시스)와 전신전자(현 어울림네트워스) 등 상장사 2곳도 인수했다. 하지만 어울림그룹의 상장 3사는 지난해 9~11월 모두 상장 폐지됐다. 두 곳은 자본잠식률 50% 이상, 한 곳은 기업의 지속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였다.

이 회사가 내분에 휩싸인 것은 2011년 말부터다. 회사 관계자는 “2011년 말부터 주력 회사인 어울림정보기술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고 직원들이 동요하고 이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엔 계열사 사장 등 핵심 임직원이 회사를 나갔고 박동혁 대표의 최측근이던 전략기획실장이 박 대표를 고소했다. 가장납입으로 360억원을 횡령하고 분식회계를 했다는 내용이다.

고소를 한 J모씨는 “2003년 이후 박 대표가 사채시장에서 빌렸다가 상환한 돈만 1100억원이 넘는다”며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채를 갚기 위해 계열사 돈을 빼돌리고 가장납입을 하는 등 모든 계열사가 비리 백화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사채시장에서 빌린 돈은 200억~300억원 정도”라고 반박했다.



국내 최초 수제차 ‘스피라’로 유명박 대표는 홍콩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에 넥타이를 수출한 후 밀반입해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허위 계상한 혐의로도 고발당했다. 또한 사채업자 자금 106억원을 빌려 가장납입 수법으로 상환을 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수사 중이다.

올해도 박 대표에 대한 고소·고발은 이어졌다. 회사 자금으로 부동산을 취득(특가법상 배임)하고, 개발 장비를 구매한다며 받은 정부 출연금 1억원을 횡령(횡령·사기죄)하고, 체불 임금 7억2000만원을 고의로 지급하지 않은(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다. 신주발행 관련 사기 혐의로도 3건의 피소를 당했다. 3월에는 계열사의 재산 80억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으로 고발당했다. 이 사건들은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성남지청·경기 광주경찰서 등에서 수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26일 증권선물위원회는 이 회사 박동혁 대표가 명동 사채업자 자금을 동원해 3개 상장법인의 신주를 발행한 후 주식을 매도해 112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또한 회사 내부 직원에 의해 배임·횡령·분식회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자 정보가 공개되기 전 주식을 매도해 19억원을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또 같은 해 11월 증선위는 어울림정보기술·엘시스·네트웍스 등이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며 대표이사 해임 권고를 내리고 검찰에 고발했다. 박 대표는 계열사에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한 혐의 등으로 2011년 말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은 적이 있다.

현 경영진 역시 전직 임직원을 상대로 여러 차례 고소했다. 전직 임원이 수출 대금을 횡령했고, 제품을 헐값에 판매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어울림정보기술 김형률 사장은 “박 대표가 자동차 사업에 몰두하기 위해 계열사 사장·임원들에게 책임경영을 맡겼는데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상장폐지 되고 매출이 반 토막 나는 등 어려워진 것은 내부자들이 적대적 M&A를 위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장 폐지와 관련해 박 대표는 “금융감독원이 지정감사를 나온 회계법인을 압박해 우리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회계사가 자신들에게 실수로 보낸 e메일에 박 대표가 금감원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유출되서는 안 되는 문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회계감독2국 최경록 조사관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어울림이 상장 폐지 행정불복소송을 냈는데 소송 과정에서 그런 주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A회계사는 “7~8개월 동안 어울림에 시달렸고 나를 상대로 고소도 했다”며 “더 이상 어울림에 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만 했다.



주력 계열사 3곳 상장 폐지전직 임직원들은 “박동혁 사장이 시장성도 없는 수제차를 만들겠다며 나서면서 회사가 위기에 빠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스피라 판매 실적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스피라 제조·판매에 깊게 관여한 한 전직 임원은 “차대번호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판매 대수를 허위로 늘렸다”며 “실제 고객에게 팔린 것은 5대 정도인 것으로 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박동혁 사장은 “지금까지 스피라 제작에 500억원 정도를 투자했고 실제로 49대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 건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싸움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현 경영진은 “전직 임직원들의 해사 행위가 아니었다면 회사 이렇게 어려워질 리 없었다”며 “전직 직원들이 나가 회사를 차렸는데 알고 보니 우리의 최대 경쟁사인 넥스지가 지분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박동혁 대표는 “넥스지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임원은 “요즘도 직원들 월급도 못 주면서 무슨 돈으로 인수하겠느냐”며 “회사가 회생 불가능해지자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어울림정보기술의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어울림 제품이 업그레이드도 안 되고 유지보수가 어려워 정상적인 영업이 안됐는데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까지 당했다”며 “협력업체들이 모여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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