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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TRAVEL - 스토리가 담긴 사파리 여행

culture TRAVEL - 스토리가 담긴 사파리 여행

야생, 스토리, 똥… 내가 잠비아 사파리에서 만난 것들



똥을 입 안에 털어넣은 뒤 문득 사파리 가이드가 거짓말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덤불멧토끼의 똥에 그가 말하듯 비타민 A나 E나 B가 들어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 똥이 아닐까. 하지만 가이드도 방금 그 풀이 잔뜩 묻은 덩어리를 입 안에 넣었다.

산토끼들도 자신의 배설물을 먹으며, 음식물이 내장을 통과하는 동안 생성된 비타민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눈에도 좋다”고 그가 말했다. 나도 그냥 삼켰다. 예상대로 마른 풀과 흙 맛이 난다. 내 안의 로커보어(locavore, 현지산 식재료만 먹는 사람)에 묘한 만족감을 준다.

당장은 가이드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그리고 구글에서 ‘토끼 똥을 먹을 수 있는지’ 검색한 뒤 어떤 끔찍한 답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6월 중순 잠비아에 있는 사우스 루앙과 국립공원에서 도보 사파리 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주에 걸쳐 사파리 가이드를 맡은 만다 치상가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에 점차 익숙해졌다.

가이드 경력 16년의 잠비아 원주민이다. 나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만다는 유머를 곁들인 사실적인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다. 사실을 신화 같은 이야기와 엮어 들려준다. 하늘의 별자리로부터 나무 뿌리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모르는 게 없다.

이번 여행은 음푸웨 산장과 고급 캠프 6개를 운영하는 부시캠프 컴퍼니의 후원을 받았다. 모두 9000여㎢ 가까운 공원의 외진 곳에 아름답게 꾸며졌다. 만다를 포함한 가이드들은 야간 드라이브, 그리고 아침이나 오후의 장거리 도보여행을 전문으로 한다.

오후는 사실상 해가 떠 있을 때까지를 가리킨다. 내가 상상했던 혼잡한 지프차 행렬이 아니었다. 우리 4명 말고는 다른 관광객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숙소로 쓰는 3개 캠프 중 하나는 친데니로 불린다. 공원을 에워싼 친데니 힐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리고 물론 그 이름에도 스토리가 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이 언덕을 오르려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멨던 그녀는 한 남자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을 때 감사히 받아들였다. 산을 넘어간 뒤 그녀는 남자에게 사례할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다면서 대신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거기서 친데니 힐스라는 이름이 생겼다….”

친데니는 잠비아 모국어 중 하나인 은얀자 말로 ‘밀통’을 뜻한다. 신혼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친데니 캠프의 독채 샬레(산장)는 높은 곳에 천막이 쳐져 있으며 해먹(그물 침대)이 설치돼 있다. 해먹에서 내려다보이는 우각호(牛角湖)에는 하마 두 마리가 산다.

우리는 이곳에서 전형적인 사파리 스타일로 생활한다. 날마다 일출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랜드로버에 올라타 아침 드라이브를 즐긴다(아침 식사로는 옥수수죽, 프렌치 프레스로 뽑은 원두커피, 시뻘겋게 달궈진 석탄 위에 구운 두툼한 빵, 현지산 땅콩버터가 나온다).

종종 안전하다 싶을 때는 만다와 함께 밖으로 나가 덤불 주변을 산책한다. 총을 휴대하고 훈련 받은 선발 요원이 앞장 서야 한다. 우리 선발 요원의 키가 183㎝라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프리스트(성직자)라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야생동물에게 물어뜯기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만다는 거의 1m마다 흥미로운 뭔가를 발견한다. 발길을 멈추고 조용히 권위 있는 태도로 말한다. “공원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고 그가 말했다. “항상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린다.” 그중 다수가 발 밑에 숨어 있다. 영화 ‘라이온 킹(그리고 그 두 편의 속편)’이 말해 주지 않은 한 가지 교훈은 포유동물 똥의 차이점이다. 사자 똥은 하얀 편이다. 놈들이 먹은 모든 뼈의 칼슘 때문이다. 물소 똥은 예상하듯이 깊게 주름진 커다란 건포도들 같다. 코끼리의 짙은 색 알갱이 똥은 배탈을 달래려고 흙을 먹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어느 날 오후 코끼리 떼를 만났다. 만다는 그들을 ‘엘리’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코끼리의 삶은 힘들다”고 그가 말했다. “하루 종일 덤불 주위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는다.” 우리의 생활 패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주 동안 오전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11시에 ‘아점’을 먹고, 오후 4시에 티타임, 그리고 8시에 저녁을 먹는다. 아기 코끼리들은 열심히 무리를 따라다닌다. “우두머리 암컷이 멈추면 모두가 멈춰선다. 우두머리가 움직이면 모두 따라 움직인다”고 만다가 말했다. “코끼리 세계에선 우두머리 암컷의 권위가 절대적이다.”

더 많은 사실들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아프리카 들개(리카온, 우리 눈에 띄지 않았다)는 혈통상 개보다 자칼에 더 가깝다. 일곱 가지 색깔의 화려한 분홍가슴파랑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촬영된 새다. 하마는 8분 동안 숨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수컷들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만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다란 소변 장비”를 갖고 있다. 사파리의 한 독창적인 의사가 만들어낸 재치있는 완곡표현이다.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칵테일 파티에서 써먹어야겠다.



하지만 사우스 루앙과의 전선이 항상 조용하고 차분하지는 않다. 싸움과 부상투성이인 다른 스토리도 있다. 공항 근처에서 두 남성이 물소의 공격을 받아 2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때로는 동물들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하다. 흑멧돼지가 도로 한복판을 질주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만다에 따르면 놈들은 달리는 능력은 타고났지만 땀샘이 없기 때문에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며 죽고 만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땀샘의 고마움을 실감하게 됐다.

가이드와 캠프 매니저들은 동물에 관해 말할 때 “사람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종종 주의를 준다. 하지만 만다도 수컷 물소 무리와 마주치자 주변에 암컷이 없어 늙고 외로운 홀아비들이라고 부르며 웃는다. 거기서 우리 자신들을 거꾸로 동물에 비교하는 쪽으로 대화가 발전한다. “만일 동물이 된다면 무엇이 되고 싶어요?” 만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큰 독수리죠. 나는 꿈 속에서 항상 날아다니거든요.” 우리 그룹 모두를 동물에 비유해보라고 하자 그는 클클 웃으며 현명하게 사양한다. 하마에 비유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한 주 내내 동물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어슬렁거리는 기린, 도둑질하는 개코원숭이, 낮잠 자는 암사자, 셀 수 없이 많은 임팔라. 임팔라가 너무 많아 꼬리 주변의 털로 이뤄진 흰색 M자가 맥도널드를 가리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맥도널드처럼) 모든 길모퉁이에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똥이 더 많다. 어느 날 오후 산책 길에 만다는 몹시 딱딱한 원통을 양 손에 들고 굴리며 그것이 한때 쇠똥구리 집이었다고 설명한다. 쇠똥구리는 온갖 종류의 똥을 굴려 공을 만든다(은하수를 따라 방향을 잡는 유일한 곤충이라고 한다). 그뒤 깊게 구멍을 파서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부화된 유충은 1년 동안 집에 머물며 똥 뷔페로 영양을 보충하다가 날아간다. 삶의 다음 단계로 비약하기 위해 온갖 똥 속을 기어 다녀야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들은 곤충 세계의 밀레니엄 세대에 견줄 만하다.

식물, 동물 그리고 짝짓기 의식에 관해 수많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아직 메인 이벤트를 구경하지 못했다. 사파리에 가는 사람은 누구나 약간의 피를 보고 싶어한다. 야수와 야수의 싸움을 구경하고 밤이 되면 모기장을 치고 잠자리에 든 뒤 최고의 스토리를 간직한 채 돌아가고자 한다. 임팔라 무리를 미행하는 표범과 맞닥뜨린 그날 밤 내가 극도로 흥분해 비명을 지를 뻔한 까닭이다. 표범이 큰 키의 수풀 속에 웅크린 채,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임팔라를 향해 낮은 포복 자세로 서서히 다가간다.

표범의 눈이 손전등 불빛처럼 번쩍인다. 하지만 표범이 우리의 열렬한 기대를 감지했거나 아니면 쇼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던 모양이다. 45분이 지난 뒤 포기하고 만다. “어려서 경험이 없는 녀석”이라고 만다가 말했다. ”핑크색 코를 보면 알 수 있죠. 앞으로 더 배워야 해요.”

드라이브와 저녁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만다와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는다. 대화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증조모가 그와 동네 아이들을 비슷한 모닥불 주위에 모아 놓고 “놀랍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줬다고 만다는 회상한다. 그 대가로 그는 증조모의 커다란 금속 머그 컵에 찻잎을 가득 띄워야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급우들을 즐겁게 했던 스토리는 기억한다. 꼬리를 벨트인 양 허리에 감아 인간 행세를 했던 원숭이 이야기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컵의 차를 빚졌는지 모르겠다.

며칠 뒤 우리는 산장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음푸웨 공항에서 작별을 고했다. 그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비행기에 올라 남아공으로 이동한 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비행 중 하나를 시작하게 된다. 사우스 아프리칸 항공을 이용한 요하네스버그발 뉴욕행의 17시간 30분에 걸친 비행이다. 내 머리 속에 여전히 울림이 남아 있는 만다의 조언을 되새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는 절대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보면서 수풀 속에 위험한 동물이 있는지 살피라고 충고했다. 책상머리에 붙여놓기에 딱 좋은 인생 격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디서 오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그리고 어떤 똥을 먹게 되느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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