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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日 실버산업, 실패에서 배운다

Retirement - 日 실버산업, 실패에서 배운다

노인 구매력, 신체 특성, 소비 트렌드 면밀히 반영 … 큰 장 기대 어긋난 경험 반면교사
일본 도쿄 시내에서 지하철 승차 서비스를 받는 노인. 노인 고객의 눈높이가 한층 까다롭고 다양해지면서 단순한 노인 친화 상품과 서비스만으로는 이들의 지갑을 열기 어렵게 됐다.



‘디플레이션→인플레이션’. 일본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이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경기 회복은 물론 국가 폐색의 난국까지 돌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성장률이 올라가면 미증유의 장수사회 일본이 내포한 많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내수는 포화상태다.

교체 수요를 제외하면 새로운 신규 수요가 별로 없다. ‘제조업→서비스업’으로의 전환처럼 새로운 시장 창조가 필수다. 장수사회답게 이때 유력한 게 ‘시니어 시장’이다. 지갑이 두둑한 시니어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다양한 기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노인 자산 30%만 써도 나라 예산보다 많아그러자면 갈 길이 멀다. 오류를 경험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실버산업을 둘러싼 애초의 장밋빛 전망은 틀렸다. 노인 인구의 씀씀이는 애초 시장 기대를 한껏 받았다. 인구가 많을뿐더러 노후도 길어져 이들의 수요에 부응하면 큰 돈을 벌 것으로 봤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엇나갔다.

의외로 덜 쓰고 안 쓰는 노인이 태반이었다. 불확실성(장수 위기) 탓이다. 거액 자산을 가진 연금생활자도 비슷했다. 일본인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추계대로면 2055년엔 둘 중 하나가 노인이다. 작년부터 베이비부머인 1947~49년생이 65세를 맞아 숫자가 더 늘었다. 잠재 수요만 본다면 실버산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학습효과는 주효했다. 요즘 일본의 실버산업은 꽤 진지해졌다. 2000년대 중반 큰 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확인된 이후부터다. 요컨대 ‘2007년 문제’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60세 진입 시점이 실버시장의 성장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버시장=블루오션’의 등식이다. 다만 전인미답의 고령사회는 손쉬운 예측을 불허했다. 추정된 경제효과는 엇나갔다. 장은 서지 않았다. 넉넉한 시간, 건강, 자금을 갖춘 은퇴집단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은퇴 후 8만 시간을 뒷받침할 소비 지출은 이론에 그쳤다.

물론 근거까지 틀리진 않았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을 두루 갖췄다. 당장 부자 노인의 존재감이 고무적이다. ‘가계조사보고’를 보면 가구당 순금융자산의 평균치는 60대와 70대가 각각 2093만엔, 2145만엔을 기록했다(2010년). 이를 해당 가구로 곱하면 60세 이상이 약 500조엔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

부채까지 포함해 가계 금융자산(1500조엔)의 60~70%를 노인 인구가 독점하고 있다. 이 중 30%만 써도 150조엔이다. 일본 예산의 1.6배다. 이 정도 규모면 증세(5%→10%)조차 불필요한 대규모 시장이다. 일본 평균 노인(부부·무직)의 연금소득이 월 23만엔이다.

이미 노인 인구의 소비 지출은 일본 내수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2015년 기준 실버시장의 규모가 최소 72조엔(실버서비스진흥회)에서 최대 127조엔(덴츠, 50세 이상 기준)으로 추정된다. 100조엔 이상이란 게 중론이다. 이쯤에서 예측이 실제와 어긋난 다른 원인을 살펴보자.

사실 이 부분이 실버시장의 진면목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요컨대 기업 부문의 판단 착오다. 실버시장의 고전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시장 자체의 특성을 읽지 못한 점과 신사업으로서의 거대장벽이 그렇다. 두드러진 건 후자다. 이게 시행착오를 키웠다. 실버시장과 노인 고객에 대한 치밀한 접근 없이 낙관론만 믿고 뛰어든 경우다.

다양하고 까다로운 노인 고객의 성향 분석 없이 뭉뚱그려 접근했다는 지적이다. 고령사회와 노인 이미지는 복잡·다양하다. 사회보장·간병이 필요한 빈곤층과 해외 여행도 가능한 부유층으로 극단적으로 구분한 이분법에 매몰된 결과다. 실상은 훨씬 폭넓은 구분법이 필요했다.

위기는 기회를 낳았다. 요즘 일본 재계는 실버·시니어·고령자로 불리는 노인 인구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발빠르게 움직인다. 철저한 수요 분석이 바탕이다. 가령 노인 고객의 소비 행태는 자산 보유와 무관한 소득 비례라는 깨우침이 그렇다. 쟁여둔 돈보다 가처분소득만 소비한다는 걸 배웠다. 그러니 보유 자산에 기댄 실버시장이 묵묵부답이었음을 확인했다.

소비 방법이 동질적일 것으로 전망한 것도 수정했다. 노인 고객 내부에서의 이질적인 소비 트렌드가 목격된 결과다. 즉 단순 연령이 아닌 신체 변화에 주목했다. 결국 실버시장은 대분류로 나눌 범용 마켓이 아닌 새로운 가치관이 체화된 다양한 미시시장의 집합체로 규정된다. 미시시장의 집합체로 ‘업그레이드’된 실버인구의 성향 분석은 인기 절정의 관심대상이다. 이들의 소비 트렌드를 알고 배우려는 세미나·연구회가 자주 열린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높은 구매력을 가진 변화된 고령 인구의 특성을 몇 가지로 분류했다. 건강과 환경 중시, 가치관에 따른 뚜렷한 브랜드 선호 현상, 고령자 전용 상품에 대한 저항감, 구매 과정에서 편의성 추구, 정보기술(IT) 활용에 우호적인 이미지, 아낌없는 가족 소비 등이 그렇다. 실버시장의 진화 스토리가 최전선에서 반영되는 업종은 간병·의료·로봇·식품·소매·여행 등이다.

최근 일본의 주요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다. 무게 중심을 노인 고객에게 맞춰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미래 시장의 주인공이 누군지 인구 변화로 확인했으니 기업 전략도 여기에 맞춰 전환하겠다는 움직임이다.

대상은 광범위하다. 대표적인 게 편의점의 변신이다. 그간 청·장년 고객에 맞춘 포인트를 점차 고령 손님에게 옮기는 추세다. 진열 전략을 바꾸고 노인 입맛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대거 확충했다. 백화점·할인점은 전담 직원을 배치했다. 게임센터·테마파크는 노인 우대에 나섰다.

제조업은 고령 고객의 신체 특징을 반영한 제품 출시에 나섰다. 핵심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다. 악력 저하(스위치·손잡이 등), 근력 저하(휠체어·로봇 등), 시력 저하(조명기구 등), 지각능력(가전제품 등) 등을 요인을 반영했다. 의료·간병 분야가 돋보이지만 이미 전체 산업에 실버 개념이 반영됐다.

‘AD(Accessible Design)’도 또 다른 포인트다. 단순한 장애 제거 설계나 공용(Universal) 디자인에서 한발 진보된 형태다. 장애·연령에 무관하게 누구든 사용하는 공용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휠체어가 통과하는 넓고 큰 출입구라든가 앉은 채 요리가 가능한 낮은 조리대 등이 대표적이다. 영상기기·현금인출기·엘리베이터 등에 도 AD개념이 적용된다. 이미 일본의 AD 보급비율은 최고 수준이다.

‘고령 친화사업’으로 불리는 실버시장의 한 축은 정부 지원이다. 노인 복지를 유력한 성장 에너지로 삼으려는 정부 의지는 민주당 정권 때의 ‘제3의 길’에서 확인된다. 늘어나는 노인 복지를 민간시장과 결합시켜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키운다는 육성계획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전부터 고령대국답게 실버산업의 씨앗은 뿌려졌다. 발전 기반은 1963년 노인복지법 시행부터다.

노인 대상의 재화·서비스를 제조·판매하는 시장 형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1985년 후생성이 ‘실버산업진흥지도실’을 꾸렸고 정부 지원이 가시화됐다. 연이어 골드플랜(1990년)·신골드플랜(1995년)·골드플랜21(2000년) 등 노인 복지를 총괄하는 로드맵도 내놨다. 최종적인 단일 창구인 ‘고령사회대책회의’는 1995년 설치됐다. 조사연구부터 자금 지원까지 포괄적으로 실시된다.



전체 산업에 실버 개념 반영비약적인 발전 계기는 2000년 시작된 개호(간병)보험부터다. 한국의 장기요양보험과 같다. 개호보험으로 엄청난 자금이 시장에 풀리면서 일순간에 급팽창했다. 필요 정도에 따라 7단계로 구분·지원되는 개호보험이 시행되면서 각종 재화·서비스의 공급이 늘었다. 주도 시장은 간병을 위한 복합시설이다.

입주 노인의 건강상태에 맞춰 종합적인 의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급격히 발전했다. 실버산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애정은 각별하다. ‘일본 부활 시나리오’라는 부제의 ‘신성장전략(2010년)’에서는 축적된 실버 노하우의 아시아 공략 진출까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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