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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HEALTH - 에이즈 백신은 왜 개발되지 않나

FEATURES HEALTH - 에이즈 백신은 왜 개발되지 않나

HIV가 발견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혁신적 치료법은 나오지 않아…현재로선 당뇨병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의 단계에 머무른다



“에이즈 백신이 곧 나온다”는 말은 그 동안 귀에 익을 만큼 들었다. 그 스토리의 최신판이 9월 중순 ‘네이처’지에 과학자들이 게재한 논문을 통해 다시 공개됐다. 그 백신 전문가들은 HIV와 유사한 SIV라는 유인원 바이러스에 감염된 붉은털 원숭이들에게 새로운 백신을 주사했다. 그 결과 16마리 중 9마리의 증세가 전례 없이 호전됐다고 보고했다.

흥분할 만한 결과다. 추가 실험을 통해 그 결과가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입증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그러나 그 뉴스에는 큰 ‘물음표’가 따른다. 그것은 유인원 바이러스를 억제한 결과다. 사람이 아닌 원숭이를 대상으로 했다. 게다가 9마리에 불과하다.

그 뉴스는 32년에 걸친 에이즈 역사에서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 힘든 HIV ‘의료혁명’이다. 실상 백신을 이용한 HIV 억제는 대단히 희망적인 출발을 보였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HIV가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로 확인된 1984년 마거릿 헤클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2년 이내에 예방 백신이 나온다고 발표했다.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려 애쓰는 관계자들의 긴 행렬에서 낙관론자는 그녀뿐이 아니다. 1991년 권위 있는 ‘뉴 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미국 과학자들이 유망한 백신을 발표했다. 초기 HIV 보균자 30명에게 새 백신을 주사했더니 절반가량에서 CD4(항원) 세포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추가 실험에서 똑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10년 내에 효과적인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과학자들에게 던져줬다. 그의 우상인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과학자들에게 달에 미국인을 올려 보내라며 정해준 기간과 같았다.

클린턴의 압박(그리고 수반되는 자금)으로 HIV 백신 분야에 아연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흥분은 2007년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스텝 실험이라고 불린 그 연구에서 가장 유력한 백신 후보의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신 접종자들의 감염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실험은 황급히 폐지됐다. 하지만 연구는 계속됐다. 스텝 실험 실패 이후의 어둠 속에서 태국의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또 다른 실험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널리 광고되지 않고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듯한 RV 144라는 백신이었다. 약간의 효과가 있었다. 결과를 계속 검토했더니 임상적 반응을 예고하는 듯한 특정한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어쩌면 마침내 과학자들이 실마리를 찾았는지도 몰랐다. 그 발견은 의학계에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의 예측이 모두 터무니 없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까지 진짜 HIV 백신이 세상에 나오리라고 호언하는 무리도 있었다.

에이즈 백신에 이르는 길이 그토록 길고 험한 이유가 뭘까? 갈수록 많은 의학자들이 줄기차게 그 문제에 달려든다. 그리고 실패한 개발 노력만큼이나 많은 해석이 제시된다. 그러나 지금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다른 감염병과 HIV 간에 중요한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가령 홍역과 달리 HIV를 퇴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그 감염병을 안고 살아가며 아무도 약의 도움 없이 그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다. 골수이식으로 치료된 듯한 몇몇 눈에 띄는 사례는 있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한 다른 HIV 감염자는 모두 고질적이고 지속적인 감염병을 안고 살아간다. 항바이러스제 투여를 중단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거의 즉각적으로 혈류 전체에 바이러스 수치가 다시 높아진다. 반면 (이형홍역이 아닌) 자연홍역의 경우는 대부분 회복이 가능하다.

우리 신체는 자연스러운 경로를 통해 완전히 효과적이고 지속성 있는 면역에 이른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자연스러운 면역으로부터 어디서 어떻게 효과적인 백신을 찾을지 실마리를 얻었다. 그러나 HIV의 경우 자연스러운 면역통제 모델이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덧붙여 ‘에이즈 백신’은 사실상 판이한 두 종의 백신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감염을 예방하는 전통적인 백신이다. 홍역·간염·독감 백신과 마찬가지로 명백하게 예방이 목표다. 감염되지 않은 수십 억 명을 위해 개발된다. 하지만 또 하나의 ‘에이즈 백신’은 현재 3500만 명에 달하는 감염자를 위한 종합적인 치료 시스템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 같은 전혀 다른 용도는 근래 들어서야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졌다.

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는 물론 활동성 광견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광견병 백신을 개발했다.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도 이미 결핵을 앓는 사람들의 결핵균을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백신을 개발하려 했다. 그러나 HIV의 경우는 백신으로 면역 시스템을 조작해 이미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자연반응을 강화하려는 최초의 현대적인 시도다. 흥미롭게도 치료 목적의 예방접종은 요즘 종양학에서 뜨는 분야이기도 하다. 똑같이 백신을 이용한 환자의 면역체계 강화법이 전립선암·유방암 및 수많은 다른 암에 시도되고 있다.

태국의 RV144 백신은 예방적 백신이다. 반면 이번에 9마리 원숭이에서 효과를 보인 최신 백신은 치료적 백신이다. 이 치료적 백신은 상당히 지능적이다. 유인원 바이러스 DNA 조각을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 CMV)의 등에 결합시킨다. CMV는 신체의 구석구석에 이르는 경로를 잘 안다. CMV의 타고난 재능을 이용해 SIV를 지속적으로 억제할 수 있게 됐으며 나아가 어쩌면 퇴치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대다수 과학자는 감정을 억제하고 관망하는 중이다. 과학적 신중함과 인류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절박한 필요 간의 싸움은 의학계에서 역사가 아주 길다. 침소봉대하는 과학자들은 동료들로부터 허풍선이라고 손가락질받는다. 반면 너무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비관주의자, 나아가 어쩌면 약간 잔인하게까지 보일지도 모른다. 환자와 의사가 최신 의학발전 뉴스에 비례해 희망을 유지해 나갈 만한 손쉬운 중간지대가 없다.

그러나 항상 비관적인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1990년대 중반 HIV 치료약 분야에서 실패로 판명됐던 ‘의료혁명’ 퍼레이드가 이와 상당히 비슷했다는 점이다. 그뒤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protease inhibitor) 약품군이 등장하면서 큰 분수령을 이뤘다.

치명적인 결과가 뻔했던 감염병 에이즈를 한 순간에 당뇨병처럼 일상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으로 바꿔놓았다. 언젠가는 이들 수많은 백신 ‘의료혁명’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약, 세계적으로 HIV의 확산을 억제하는 약으로 판명될 것이다. 지난 32년 동안 그 병으로 3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우리 수중에 있는 약품들 중에는 새 역사를 쓸 만한 유망한 제품은 없다.

- 필자 켄트 셉코위츠는 뉴욕의 감염병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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