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culture film - 쿠아론 감독의 3D 걸작

culture film - 쿠아론 감독의 3D 걸작

우주 공상과학 스릴러 ‘그래비티’ 절제된 각본에 몰입적인 시각·청각 효과 뛰어나
숨 막히는 쪽은 블록이지만 저도 모르게 지켜보는 관객의 숨이 멎을지 모른다.



우주탐험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정보를 얻을지 모르겠다. 먼 우주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법의 체크리스트다. 러시아어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중국어도 배워라. 오랫동안 숨을 참는 법을 연마하라. 위 팔뚝의 힘을 길러라. 국제우주정거장에 대형 미국기 다는 걸 재고하라(이유는 여기서 말할 수 없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칠드런 오브 맨’ ‘이투 마마’)은 생존을 위한 냉혹한 단계별 투쟁 속에 삶의 거창한 의문들을 교묘하게 버무려 탄성을 자아내는 3D로 보여준다. 관객이 90분 동안 손톱을 물어뜯게 한다. 베테랑 우주인 매트 코왈라스키(조지 클루니)와 저명한 생물의학 엔지니어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록)가 주인공이다.

박사의 첫 우주비행이다. 일상적인 우주왕복 임무의 마지막 구간. 처음에는 휴스턴의 지휘본부와 유쾌하게 재치문답을 주고받는다. 곧 러시아 위성이 예기치 않게 폭발해 그들 쪽으로 파편이 날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파편과 충돌하면서 인명과 기기가 극적으로 파괴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궤도를 향해 파편이 계속 날아든다. 살아남은 우주 탐험가들은 우주 깊숙이 튕겨나간다. 지휘 본부와의 통신은 두절되고 두 사람은 우주 공간의 미아가 된다.

그들의 세상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됐지만 코왈라스키와 스톤은 상당부분 안정을 유지한다. 어쨌든 안정을 유지해야 살아남으니까. 코왈라스키는 따뜻하고 수다스럽다. 스톤은 완고하면서 동시에 자아에 대한 불신이 깊다. 둘 다 호의적이고 희생적이지만 코왈라스키에게 그런 성향이 좀더 강하다. 처음에는 함께 붙어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를 떠나야 살 수 있게 된다. 쿠아론은 묵직한 은유들을 자상하게도 최소한으로 억제한다.

하지만 영화 제목이 단순히 우주의 중력부재를 뛰어넘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는 암시가 곳곳에 깔려 있다.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해피 엔딩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강하게 든다. “예감이 좋지 않다”는 말이 다양한 어구로 변형되어 후렴구처럼 되풀이된다.

관객도 그런 예감을 갖는다. 하지만 낙천적인 코왈라스키는 당장 급박한 문제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갠지스강 위에 뜬 태양을 바라보며 탄성을 올린다. 관객도 그처럼 한없이 펼쳐진 우주의 아름다움과 미지의 미래가 주는 약속에서 위안을 얻을지 모른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는 내가 본 최초의 3D 영화다. 영화평에서 특수 효과가 짜증나고 스토리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불평했었다. ‘그래비티’의 경우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맥스 스크린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진다. 최소한으로 절제된 각본은 몰입적인 시각·청각 효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때로는 우주 미아가 되어 빠르게 산소가 떨어져가는 여성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숨 막히는 쪽은 블록이지만 저도 모르게 지켜보는 관객의 숨이 멎을지 모른다. 스크린으로부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위성 파편을 피해 저도 모르게 몸을 숙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맥스 영화관의 스크린은 전혀 스크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비티’의 진정한 장관은 정적의 순간들에 있다. 우주인들이 오로지 우주를 동반자 삼아 침묵의 행성 수km 위를 떠다니는 순간이다.

지구 대기권을 넘어가 본 적이 없는 우리들, 아니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쿠아론이 보여주는 외계가 진짜라고 철석같이 믿게 된다. ‘그래비티’는 우리의 지식에 기초한 상상력의 생생한 표현이라기 보다는 완벽히 합리적인 미래상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와 같은 미래는 예리하고 탁월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영화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에 포착된 우주여행을 우리에게 계속 허용할 듯하다(물론, 완벽한 합리성이란 말은 과장이다).

이밖에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그래비티’는 전혀 공상과학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외계를 배경으로 하는, 그리고 때로는 멜로드라마로 빠지기도 하는 모험영화다. 모든 멜로드라마성 모험과 마찬가지로 그럴싸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대부분 별 문제가 없다.

특히 우리 대다수가 물리법칙의 사소한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할 만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아론과 각본을 공동 작성한 그의 아들 조나스가 스토리를 마음대로 뜯어 고친 점은 용서한다. 하지만 일부 대화는 그냥 참고 들어주기가 어렵다. 스톤 박사가 혼자 말을 할 때 특히 귀에 거슬리며 감상적이다.

블록은 2010년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에서의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에 대해 박수를 받은 만큼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같은 해 ‘올 어바웃 스티브’ 연기로 최악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골든 래즈베리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그녀는 배역을 잘 소화해낸다. 내년 영화제 수상식장에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녀의 연기가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것이 그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블록 측은 항상 섹스어필보다는 이웃집 여자 같은 매력을 강조했다. 블록이 우리에게 자신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그런데 블록의 연기경력 중 가장 진지한 이번 배역에서 그녀의 관능미가 유독 부각되는 듯하다. 카메라가 그녀의 맨 다리에 이보다 더 애정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때때로 ‘그래비티’는 우리에게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감상하고, 그녀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헬스클럽·요가센터에서 보내야 하는지 알아주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클루니는 여느 때 모습과 다름이 없다. 편안하고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더라도 우주와 저승간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쿠아론은 그것을 부인하려 하지도, 우리에게 그러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천국 비슷한 개념이 자명한 이치인 듯 비쳐진다. 그럴 만도 하다. 중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중국차, 낯설지 않아”...이젠 집 앞까지 파고든다

2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3민희진 vs 하이브 '노예 계약' 공방...진실은 어디로

4‘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5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

6이부진 표 K-미소…인천공항 온 외국 관광객에게 ‘활짝’

7목동14단지, 60층 초고층으로...5007가구 공급

8시프트업, ‘니케’ 역주행 이어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9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6월 26일 출시 확정

실시간 뉴스

1“중국차, 낯설지 않아”...이젠 집 앞까지 파고든다

2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3민희진 vs 하이브 '노예 계약' 공방...진실은 어디로

4‘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5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