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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RT - 노먼 록웰의 ‘기도’가 이뤄낸 기적

culture ART - 노먼 록웰의 ‘기도’가 이뤄낸 기적

미국 회화작품 사상 최고가 경매 기록 세워…구매자가 아직 안 알려진 가운데 미국인들이 이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을까에 관심 쏠려
‘기도’는 록웰의 그림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잘 알려졌다.



12월 4일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노먼 록웰의 삽화 작품 ‘기도(Saying Grace)’의 입찰이 진행됐다. 전화 응찰자 두 명이 거의 10분 동안 열띤 경합을 벌였다. 장내에 모인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과정을 지켜봤다. 1400만 달러! 2500만! 3500만!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의 미래와 한 미국 가정의 화해 여부가 걸린 경매였다. 4600만 달러에서 마침내 낙찰봉 소리가 울렸다. 록웰의 작품뿐 아니라 미국 미술품 전체 경매가 중 최고 기록이다. 록웰이 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에 그린 그림들은 20세기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다.

물론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등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미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은 더 비싼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기도’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세상을 휩쓸기 이전 미국 미술가들이 그린 ‘미국 미술(American Art)’ 작품으로는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

소더비는 ‘기도’의 구매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등 열성적인 록웰 수집가 몇몇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도’ (당초 낙찰 추정가는 1500만~2000만 달러였다)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독자 참여 투표에서 1951년부터 이 신문의 표지에 등장한 그림 중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뽑혔다. 이 작품엔 한 식당 안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인과 금발의 어린 소년(여인의 아들이나 손자로 보인다)이 머리 숙여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노동자 차림의 젊은 두 남자가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록웰의 그림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잘 알려졌으며 록웰 전문가들이 그의 걸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록웰의 전기 작가이자 미술 비평가인 데브라 솔로몬은 “이 작품은 작가의 선언(manifesto)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 록웰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가족 붕괴(Breaking Home Ties)’로 2006년 1540만 달러에 팔렸다. ‘기도’의 경매가는 그 액수의 거의 세 배에 이른다.

‘기도’는 또 미국 회화 작품 중에서도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는 1999년 소더비 경매에서 2770만 달러에 팔린 조지 벨로우의 ‘폴로 관중(Polo Crowd)’이 최고가였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폴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들의 크림색 의상은 불길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쪽빛 하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날 경매에서는 ‘기도’ 외에 ‘소문(The Gossips)’이 약 800만 달러, ‘교회 가기(Walking to Church)’가 320만 달러에 낙찰되는 등 록웰의 세 작품이 총 6000만 달러 가까이에 판매됐다.

이들 그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규모 법적 소송 두 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록웰의 그림을 담당했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편집자 겸 미술감독 케네스 스튜어트 1세와 이 신문의 출판사가 작품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소송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스튜어트 1세가 사망한 뒤 줄곧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싸워 온 그의 세 아들 사이에 벌어진 소송이었다.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스튜어트 형제들은 최근 둘째 윌리엄이 병에 걸린 이후 화해 모드로 돌아섰다. 그들은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조정해 록웰의 그림들을 팔기로 결정했다. 가족간의 오랜 불화에 종지부를 찍고 집안의 재산을 현금화하기 위해서다. 개인 부스에서 경매장 안을 훑어보는 이들 형제의 모습은 서로 예의를 지키는 듯했지만 그다지 다정해 보이지는 않았다. 윌리엄과 막내 조너선은 부인과 친구들을 대동하고 와서 경매 과정을 지켜봤다.

장남 케네스 2세는 자신의 개인 부스로 가서 이 중대한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초대한 많은 손님들(합의를 중재한 변호사들 포함)과 합류했다. “우리 형제는 친척의 결혼식과 장례식에서나 서로 얼굴을 보는 사이”라고 케네스 2세가 말했다. “인간적으로 공통점이 별로 없다. 단지 형제라는 핏줄로 맺어졌을 뿐이다.” 그들은 작품이 누구에게 팔릴지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비평가 솔로몬은 ‘스타워즈’의 감독 루카스가 12월 2일 소더비 경매사를 방문해 작품들을 자세히 보고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지만 소더비 측은 이와 관련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 미술관을 열 계획인 루카스는 현재 열심히 작품을 사모으는 중이라고 알려졌다.

록웰 수집가로 알려진 또 다른 미국의 유명인사들도 입찰에 참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록웰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이 그중 한 명이다. 그밖에 월마트의 상속녀 앨리스 월튼과 텍사스주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 역시 열렬한 록웰 수집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중 누군가가 이 작품들을 사들였다고 인정하지 않는 한 어느 국제적인 미술품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더비의 미국 미술 책임자 엘리자베스 골드버그는 “경매를 앞두고 이 작품들이 아시아 순회전시에 들어갔을 때 홍콩에서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고 말했다.

미술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화 응찰을 통해 이 작품을 사들인 주인공이 누구일까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인 억만장자가 작품들을 휩쓸어갔으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국제적인 수집가들의 주목을 끌기엔 이 그림이 너무 미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림이 누구의 손에 들어갔든 모두가 뜻을 같이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록웰의 작품으로서뿐 아니라 미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그림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 그림이 한 개인이 아니라 어느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솔로몬은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그림은 앞으로도 마술 같은 힘을 계속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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