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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혁신의 주역과 그 적들

경제 혁신의 주역과 그 적들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그래도 희망을 갖게되는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혁신형 기업과 기업인이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호 포브스코리아에 소개된 판교 테크노밸리는 그들이 모여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아름다운 지역 공동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실리콘밸리를 부러워했던 한국인들로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자면 한눈에 들어오는 판교 테코노밸리를 보며 대견스럽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을 법하다.

판교뿐아니다. 옛 구로공단 일대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상암동의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등도 한국의 벤처 및 중소형 혁신기업의 요람으로 떠올랐다.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의 산실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혁신형 경제가 자리 잡으려면 기업가 정신과 아이디어만으론 부족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눈부신 성공은 여기에 대학과 금융의 역할이 더해진 덕분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여전히 입시 장사에 매몰돼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나 UC버클리처럼 산학 협력의 중심 역할을 하는 대학을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이를 표방해도 정부의 보조금을 따내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다. 한국 대학 이공계 교수들은 산업 현장과 연계된 실용적 연구는 뒷전이고, 재임용 통과 등을 위한 논문 편수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금융은 또 어떤가. 한국의 은행들은 담보나 보증 없이는 기업들에 돈을 대줄 생각을 않는다. 기술과 아이디어 등 무형자산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없고 그런 전문가를 키울 의지도 없다. 손쉬운 부동산담보 가계대출과 이미 성숙기로 접어든 기업들을 상대로 한 편안한 거래만 따라다닌다.

은행 경영진이 임기 내 단기 성과와 보너스 잔치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대규모 대출 부실이 터져 벌어놓은 돈을 한몫에 털어먹기 일쑤다. 길게 보고 기업의 창업단계부터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 컨설팅을 해주며 상생의 고수익을 올리는 중소금융 전담 은행들을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증권회사들의 현실은 더 한심하다. 말로만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투자은행(IB)이 되겠다고 십수년째 떠들고 있을 뿐, 여전히 하는 일이라곤 주식 단타매매를 조장하는 브로커리지가 거의 전부다. 주식투자자들이 밑천을 거의 다 털리거나 못믿을 영업행태에 염증을 내고 떠나버리자 증권사들은 뒤늦게 초비상이다. 회사별로 수백 수천 명씩 인력을 감축하고 지점을 폐쇄하느라 난리가 났다. 그렇게 사람을 줄이고 비용을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업 구조 자체를 확바꿔야하지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은 증권사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에는 여전히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 미래를 향한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기업가가 많다는 사실에 금융회사들은 주목해야한다. 양쪽이 서로 손을 잡으면 엄청난 기회와 부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에도 여유자금은 넘쳐난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예금과 국내외 채권에만 돈을 넣는 것은 국가적인 자원 낭비다. 전체 금융자산의 일부는 될성 부른 혁신기업들에 분산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 설계와 리스크 관리를 해주는 게 금융회사들의 소임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독일, 이스라엘 등에서 벤처·중소기업이 쑥쑥 크는 것도 바로 그런 금융의 역할 덕분이다.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규제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또 그 소리인가”하고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부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산업현장과 시장에서 이미 이권의 철옹성을 구축해 혁신 기업들의 싹을 자르는 일부 대기업과 이익집단들의 횡포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잠잠해지자 이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여전하다.

최근 홈쇼핑업계의 납품업체 괴롭히기는 또 어떤가. 수수료를 최고 50%나 받으면서 뇌물까지 챙기다 적발됐다. 이들처럼 독과점형 진입장벽을 구축하고는 이권 장사의 재미에만 푹 빠져 사는 업자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규제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혁신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기회를 박탈하는 악행에 대해선 이를 조준해 정밀타격하는 행위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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